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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맘 Jun 23. 2023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왜 독일로 갔을까?

믿고 보는 최민식배우의 주연이라 거실에서 온 가족이 영화를 다시 보았는데 결말에 독일행으로 마무리가 되어 반가웠다.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포스터


학문의 본질적인 이유를 무기 만드는 것에 이용하는 북한에서 탈출한 천재 수학자 이학성은 가족의 잇따른 불행으로 자포자기하며 신분을 숨기고 한 자사고의 경비로 일하게 된다.


어느 날 힘든 가정환경으로 차별대우를 받으며 살아가던 학생 한지우를 만나게 되고 수학을 직접 가르치게 된다.

정답만 쫓아가는 그동안의 방법이 아닌 올바른 풀이 방법과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중요시하면서...


한지우의 담임인 수학 선생님은 기말고사를 대체한 교내대회의 문제를 상류층 학부모들에게 돈을 받고 유출한다.


하지만 유출되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갑자기 수학성적이 상승한 한지우가 범인으로 몰린다.


한편 이학성은 수학 난제 중 하나인 리만가설을 풀게 되면서 세상에 드러나며 북한의 소환위기와 우리 국정원에게 노출된다.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원치 않았던 이학성이지만 한지우가 본인을 위해 몰래 학교 컴튜터실에서 논문을 출력하던 것이 cctv에 찍혀 학교에서 쫓겨나가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자 결단을 내린다.


이학성은 모두가 모인 강당의 교단 위에 올라가 드디어 본인의 정체를 밝히고는 담임의 비리와 한지우의 무고함을 입증한다.


또한 수학이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한 도구로만 쓰이는 한국의 현실을 씁쓸하게 비판한다.


연구를 위해 탈북했지만 한국에서도 원하는 답을 찾지 못한 이학성은 이후 독일의 연구소로 간다.


그 후 몇 년의 시간이 흘러 수학과 학생으로 다른 학부생들과 함께 연구소로 찾아온 한지우와 재회한다.




그곳은 실제로 독일 oberwolfach에 있는 수학 연구소다.

독일 오버볼파흐 수학 연구소

왜 하필 독일이었을까 하는 물음인지, 아니면 더 드라마틱한 결말을 원하는 건지 아쉽다는 리뷰가 더러 있었다.


나도 결말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독일에서 만난 우리 아이들의 수학 선생님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해외에서도 수학은 역시 주요 과목이지만 수학을 전공해도 보편적으로 다른 전공자와 같이 취업을 한다.


그럼에도 수학 선생님이 된 분들은 다른 과목 선생님들보다 자부심과 개성이 강했다고 기억을 한다.


국제학교의 수학 선생님 :


국제학교에 다닐 때 잘 가르친다는 선생님으로 자리매김을 하던 분이 한국 학부모들의 항의에 학교가 발깍 뒤집어졌었다.


시험문제가 계산이 아닌 이해를 요하는 문제만 출제되어 상위권 성적을 받던 아이들이 40점 아래대를 받는 등 모든 한국 학생들의 성적이 바닥을 쳤기 때문이었다.


학부모 중에 수학을 전공한 사람도 몇 명이 있었는데도 문제를 이해하지 못했고 몇 번의 학부모 모임을 가졌다.


결국 수학 선생님과의 면담이 이루어졌고 선생님은 한국 학생 한 명이 100점을 받았으니 본인에게 문제가 없다고 못을 박았다.


그 100점을 받은 학생이 우리 아이였고 시험 점수를 묻지 않았던 나는 그제야 알게 되어 당황스러웠다.


그 일로 나는 엄마들 사이에서 적잖은 적이 생기고야 말았다.



국제학교에 다니는 학생들도 과외를 많이 받는다.


학교교재를 한국인 과외 선생님께 다시 수업을 받는 것이다.


그래서 영어로 수업하는 학교 수업에 아이들이 집중하지 않는다고 학부모 사이에서 나누는 말이지만 역시 자기 아이만 과외를 받지 않으면 불안하기도 한 게 사실이다.


당시 음대 진학을 목표로 둔 아이는 방과 후에 악기 연습을 해야 하니 과외를 받을 수 없어서 학교 수업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답을 찾는 방법을 잘 가르쳐주는 한국인의 과외 선생님의 지도보다 과정을 중요시하는 외국인 선생님의 수업에 익숙할 수밖에 없었고 배운 대로 시험을 친 거였다.


나는 수학을 못하니까 계산과 이해의 차이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잘 가르쳐주는 선생님에게 배워도 다른 방법으로 접근하는 문제는 풀지 못하는 걸 실제로 보았다.


그리고 우리 아이의 수학 선생님은 학부모들과 타협을 하지 않았다.



김나지움 수학 선생님:


아이가 중3학년때 독일 공립학교인 김나지움으로 전학을 갔다.


그 학교에는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주요 과목 선생님을 선택하는 제도가 있었다.


내가 원하는 선생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기 위해 아이들은 매우 전략적이었다.


그런데 우리 아이가 고른 선생님은 괴팍하고 점수를 주지 않는 걸로 유명해서 기피 1순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선생님을 선택한 이유는 공식만 알려주는 게 아니라 전반적인 이해부터 시켜줘서 그저 계산이 아닌 진짜 수학을 배우는 느낌이라고 했다.


본인의 수업방식이 최고라는 자부심에 교과서를 일절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칠판 하나로만 수업을 하셨다.


사교육이 없는 독일에서 수학 공부의 성공은 학교 선생님에게 달려 있다.


특히 우리 아이는 독어가 원어민에 비해 미숙하여 수학에서만큼은 만점을 받아야 하는 절실함이 있었다.


아이는 집에 오면서 운전하는 나에게 수학 선생님 이야기를 자주 해주었는데 엄청난 자부심에 웃을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이 너 수학 잘한다고 칭찬하냐고 물었는데 아이는 "아니"라고 하길래 왜?라는 나의 반문에

"나는 겨우 사람이래"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집중해서 듣고 잘 따라 하는 학생은 겨우 사람이고 그렇지 못하면 사람이 아니라고 대놓고 말씀하신다는 것이었다.



독일은 수업시간의 참여도가 성적에 많이 반영된다.


선생님이 던진 질문에 답한 발표의 질과 양을 매 수업시간마다 점수를 매긴다


근본적인 이해위주의 질문을 던지는 이 선생님의 수업에서는 발표를 하나도 못하여 0점을 받는 학생들이 수두룩했다.


학생들은 다른 수업시간은 발표를 안 해도 출석하면 0점은 안 준다면서 1점이라도 달라고 애원을 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교실 뒤쪽에 있는 큰 사물함을 가리키며


  "  저것도 매일 수업에 참석하지만 점수는 주지 않는다 "라고 하셨다.


한 번은 수학 노트가 필요하다고 해서 슈퍼에서 장을 보면서 세 권이 묶어진 싼걸 사서 줬는데 선생님이 난리가 났다고 했다.


100프로 주관식인 독일의 시험은 본인이 지참한 노트를 뜯어서 문제를 풀고 제출을 한다.


한 사람당 15장쯤 해서 모두 종이 뭉텅이를 제출하게 되는데 선생님은 많은 학생들의 것을 채점하다가 정리를 하려면 종이 뭉텅이를 책상에 세워두고 탁탁 치면 싼 노트의 낱장은 힘이 없어서 정리가 되지 않고 그냥 뒤로 넘어간다고 했다.


그게 선생님의 심기를 건들게 되었고 수업시간에 누가 수학처럼 고귀한 학문을 그런 싼 종이에 적냐면서 흥분해서 길게 말씀하셨다고 했다.


물론 본인의 것으로 눈치를 챈 아이는 뜨끔했었다고...


우리 아이가 고2까지 배우고 선생님은 은퇴를 하셨다.


이제 젊은 선생님이 가르쳐서 어떻게 입시를 칠지 아이들이 불쌍하다는 말을 하고는 그래도 중요한 미적분과 기하벡터는 당신이 가르쳐 놨으니 괜찮을 거라고 하셨다.


전화번호와 이메일을 가르쳐 달라는 아이들의 말에 바보 같은 너희들과 연락 안 한다는 말씀을 남기시고 떠났다.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당신이 생각하는 고귀한 수학을 잘 가르친다는 것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나도 학교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선생님과 자주 인사를 나누곤 했었는데 학교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이다.


외국인인 우리 아이가 음대를 다니다가 다시 공대로 진학을 해서 수학에 어려움이 없이 공부를 하고 있는 건 잘 가르쳐 주신 분이 계셔서 가능한 일이라고 믿는다.

(실제로 수능 최고 점수인 1점대 아이들은 거의 이분에게 수학을 배운 학생들이었다.)


내 아이를 키우는데 세상에 많은 도움을 받았고 그 감사함에 보다 큰 꿈을 가지게 된다.


나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가 독일로 떠난 이유를 조금은 알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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