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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 분화. 새로운 종의 탄생이야기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현명한 자가 살아남는 것도 아니다. 변화하는 자가 살아남는다.


찰스 다윈


생명은 벌레에서 물고기로, 식물에서 동물로, 원시동물에서 인간으로 점점 더 복잡해지는 방향으로 진화되었다. 사람은 식물에 비하여 굉장히 복잡하다. 움직이고 생각하고 게임하고 오목 두고 여행 다니고 어렵고 복잡한 일을 한다. 이렇게 복잡한 기능을 하려면 우리 몸에 정교한 구조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진화생물학자의 생각이다. 컴퓨터가 복잡한 기능을 하려면 정교한 부속품이 있어야 하듯이. 복잡성이 증가하면 지능이 높아지거나 다양한 능력을 갖추어 이득을 주기 때문에 진화는 복잡성의 증가로 이어진다. 그러나 생명이 이렇게 복잡해지지만 우리 몸을 구성하는 ‘분자’는 변화가 없다. 설령 분자 수준에서 진화가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별일이 생기지도 않는다. 수십억 년 전에 살았던 생물의 ‘고대’ 단백질은 우리 같은 현대를 사는 생물의 단백질은 분명히 다를 것이다. 하지만 그 옛날의 단백질이 비록 아주 단순하지만 오늘날의 복잡한 단백질과 같은 기능을 한다. 다시 말해 옛날 단백질이 지금처럼 복잡한 단백질로 진화하지 않아도 오늘날의 생명은 살아가는데 별 문제가 없었다는 뜻이다. 이를 중립 진화라고 한다. ‘중립 진화이론(neutral theory of molecular evolution)’은 1960년대에 나왔다. 중립 진화를 주장하는 과학자들은 생명을 이루는 분자들은 진화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진화하는 것은 분자보다 훨씬 큰 유전자나 사람 같은 하나의 종 수준에서 나타난다.


진화하는 것은 개체가 아니라 한 종의 평균적인 특징이다. 다윈은 이러한 메커니즘이 오랜 세월에 걸쳐서 반복되면 어떻게 해서 다른 종이 발생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지구상의 여러 지역에 산재하는 그리고 조금씩 다른 환경에서 사는 종이 약간씩 다른 방식으로 진화해온 것은 분명했기 때문이다. 다윈은 이러한 과정으로 인해 지구상에 그렇게도 많은 종이 존재하는 것을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이 혁명적인 것은 이러한 ‘무의식적인’ 과정이 생명자체도 창조할 수 있다고 설명된다는 점이다.


생명체 유전자의 높은 합치 율을 보면, 유전자가 진화 중에 분명히 다른 종으로 발전하는데 몇 백만 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이 유래하게 된 진화의 계통과 생쥐가 유래하게 된 진화의 계통은 약 1억 년 전에 서로 갈라졌으며, 인간과 물고기의 그것은 이미 4억 2천만 년 전에 갈라졌다. 그럼에도 오늘날 줄무늬 열대어 연구는 인간의 생물학적 기능 및 질병을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종의 분화가 어떻게 일어나는가에 대해 아직 명확한 답은 없다. 서로 지리적으로 멀어져 서로 교배하지 않게 되고 각 집단이 서로 다른 돌연변이를 축적해가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다. 집단에 따라 서로 다른 자연선택이나 성 선택이 일어날 수도 있다. 종이 분리되는 것은 생식의 격리이다. 에른스트 마이어(Ernst Mayr, 1904~2005)는 『유전학과 종의 기원』 등을 출판하면서 새로운 종이 발생하는 원인을 제시했다. 그는 생물학적 종을 “상호 교배하는 자연집단이며 다른 집단과는 생식적으로 격리된 것”으로 정의했다. 한 개의 집단이 전체 집단에서 격리되면 결국 새로운 형질을 갖게 되고 다른 집단과 교배가 되지 않는 종이 발생하는 것이다. 즉 종의 분화는 한 곳에서만 일어나는 독특한 현상이다. 새로운 종은 특정 지역에서 진화한 뒤 다른 곳으로 퍼져나간다. 미국 하와이에 사는 예쁜 꼬마선충과 영국에 서식하는 선충은 유전자 구조가 유전자의 15%인 3000개가 다르다. 지역적으로 분리되어 사는 생명체의 종이 분리되는 것을 보여주는 한 사례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같은 환경이 조성되면 반복적으로 같은 방향으로 진화하여 새로운 개체가 탄생하는 현상이다. 흰멱뜸부기는 마다가스카르 섬에서 점차 다른 섬으로 서식지를 넓혀간 새이다. 하지만 대부분 포식자들에게 잡아먹히는 등의 이유로 사라졌지만 동쪽 알다브라 제도 등으로 간 개체들은 살아남았다. 아프리카 동쪽 바다에 있는 알다브라(Aldabra) 제도는 약 40만 년 전 형성된 고리 모양의 산호섬이다. 이 섬에는 포식자가 없어 점차 날지 않는 새로 진화했다. 그 후 약 13만6000년 전 해수면 상승으로 섬은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 뜸부기를 포함해 모든 동식물이 사라졌다. 이후 3만 년이 지나 빙하기가 다시 찾아와 해수면이 낮아져 드러난 섬에는 마다가스카르 섬의 흰멱뜸부기들이 와서 살았고 다시 날지 못하는 새로 진화했다. 이는 같은 조상으로부터 새로운 형태의 종이 반복해서 출현하는 ‘반복진화’라는 보기 드문 진화이다. 동일한 환경에 동일하게 진화하여 새로운 형태의 생명체가 태어나는 재미있는 현상이다. 우주에서 지구와 동일한 환경이 있었다면 우리와 같은 인간이 태어날지 모르는 일이다. 아예 인간이 지구와 똑 같은 환경을 만들어 새로운 인간이 출현하는 것을 관찰하는 상상을 해본다. 그래서 외계 ‘인간’을 찾는지도 모른다. 물론 동일한 환경에서 다양하게 진화하여 다양한 생명체가 진화해간다.


보통 새로운 종이 탄생하는 종의 분리는 하나의 종이 지역적으로 분리되고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면서 발생한다. 그러나 같은 지역과 환경에서도 종이 분리되고 새로운 종이 탄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유럽의 조명 충 나방은 동일한 지역에서 살면서 두 종류로 나누어졌다. 한 종은 옥수수를, 다른 종은 나무 열매를 주로 먹으면서 각각 다른 페로몬을 내게 됐고 같은 종류끼리만 짝짓기를 함으로써 종이 분리된 것이 확인되었다. 북반구에 살던 바다 큰 가시고기는 빙하기가 끝날 때 호수에 갇혀 각각 호수마다 다른 종이 되었다.


서식지가 겹치는 집단들 사이에서 종 분화가 일어나는 것이 2021년 <사이언스>에 또 보고되었다. 아르헨티나의 국립공원(Iberá National Park)에 서식하는 두 종의 새(Sporophila iberaensis와 Sporophila hypoxantha)가 그 사례이다. 이들 새는 모두 한 계열(Southern capuchino seedeater)에 속하고 가장 빠르게 종 분화를 한 조류이다. 이들은 지난 백만 년 동안 10개 이상의 종들이 같은 서식지 안에서 분기했다. 같은 서식지에서 일어나는 종 분화가 짝짓기 이전 단계에서 깃털의 색이나 노랫소리 등에서 변화가 생기며 먼저 격리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선택적인 짝짓기가 오랜 시간 이어지면 차츰 각 집단 내에서 유전적 변화가 누적되면서 유전체 상의 분화가 따라 일어난다. 즉 오랜 시간에 걸쳐 유전체 상에 고유의 돌연변이를 축적하는 방식으로 격리가 일어난다. 두 새들 간의 유전체 차이는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두 종 사이에서 큰 유전적 차이를 보인 열두 개의 유전자를 확인했는데, 여기에는 멜라닌 색소와 관련된 유전자가 있었다. 종 특유의 수컷의 깃털 색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는 유전자들이다. 같은 서식지 내에서 일어나는 종 분화를 설명하는 두 개의 단계를 제시한 연구결과이다.

https://science.sciencemag.org/content/371/6536/eabc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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