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학문 특히 수학은 놀라운 과학적 발견으로 이어졌다. 우리는 그러한 수학적인 능력이 인간만이 가진 지능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과학자들은 ‘통계적’ 또는 수학적 판단은 영장류와 케아(Kea) 잉꼬 새처럼 체구 대비 뇌가 큰 동물을 대상으로 연구해왔다. 통계적 추론 능력은 이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동물계에 더 널리 퍼져 있을 수 있다. 동물의 숫자를 인식하는 능력을 나열하면 금방 알 수 있다. 거피(guppy)나 모스키토 피쉬(mosquitofish) 같은 물고기도 셋이나 넷 정도까지를 구별해낼 수 있다. 꿀벌도 1~4 사이의 숫자를 기억할 수 있다. 꿀벌이 숫자를 인지하면 보상을 해주었더니 숫자를 기억하고 배울 수도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새도 숫자를 셀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까마귀와 비둘기 같은 새들이 6까지의 숫자를 구별한다.
기린도 확률 ‘계산’을 하여 먹이 선택하는 등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실험적으로 밝혀졌다. 상대적으로 뇌가 작은 기린도 생각했던 것보다 더 발달한 통계 능력을 갖췄음을 시사한다. 유인원은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정도의 숫자를 구별하고, 숫자의 크기를 구별하고, 덧셈도 할 수 있다는 연구가 많다. 6만 년 전 네안데르탈인들이 도구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하이에나 뼈에 새겨진 9개의 빗금은 숫자를 세기 위해 그어 놓은 것으로 보인다. 네안데르탈인도 숫자개념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우리와 비교가 되지 않는 수준이다. 분명한 것은 인간의 지적 능력이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이들 새와 같이 오랜 세월을 거친 진화의 결과라는 것이다.
수학과 통계 그리고 과학을 하는 능력은 인간이 지구상에 출현하기 전부터 발달해온 것이다. 일부 동물과 마찬가지로, 인간도 직관적으로 수를 알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인간은 ‘5’가 넘어가면 잘 세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1871년 윌리엄 제번스(William S. Jevons, 1835~1882)는 「네이처」에 사람은 ‘5’라는 숫자는 완전하게 식별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인간은 ‘4’까지는 쉽게 인식하지만 ‘5’부터는 인지력이 떨어진다. 예를 들어 사과를 3초만 보여주면 사람들은 사과 4개까진 단번에 안다. 하지만 5개 이상이 되면 실수를 한다. 인간의 뇌는 4까지 인식하는 뉴런과 5이상을 인식하는 뉴런이 다르다. 후자의 경우 인접한 다른 숫자에도 반응하면서 인지능력에 혼란이 생긴다. 더 많은 수의 사물을 세려고 하면 많은 실수를 하게 되는 이유이다. 5가 넘어가면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세 봐야한다.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62-023-01709-3
이러한 한계는 있지만 인간의 수학능력은 선천적인 면도 많다. 학교에 가기 전에도 인간은 무엇이 크고 작은지, 늘거나 줄었는지 직관적으로 안다. 선천적 숫자 감각을 타고난다. 유전적으로 수학에 완전히 무능한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 아이들은 수포자 또는 과포자가 속출하고 있다. ‘멍청한’ 교육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진화해오고 유전자에 내장된 수학능력을 파괴하는 교육 때문이다. 수학 교과서가 너무 어렵고 지루하기 때문이다. 교과서마저도 아이가 선행 학습했거나 한글을 뗀 것으로 전제하여 집필됐다. 정말 ‘한심한’ 일이다. 2022년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학 교수가 한국계 최초로 수학계의 노벨상이라는 필즈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그는 한국 교육에서는 잘 하는 학생이 아니었다. 그만큼 우리나라 교육이 왜곡되었다는 반증이다.
누구나 기억하겠지만 학교 다닐 때 공부한 수학이나 과학 교과서는 너무도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 물론 다른 교과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흥미를 잃은 사람도 많다. 빌 브라이슨은 중학생 아들의 과학 교과서를 보고 ‘왜 과학책은 이렇게 지루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책을 썼다고 한다. “교과서의 저자들은 자신들이 설명하는 내용을 지나칠 정도로 흥미롭게 만들어서는 안 되고, 정말 흥미로운 것으로부터 장거리 전화 정도의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비밀스러운 약속을 했던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동물도 할 수 있는 선천적인 수리능력을 우리의 교육시스템은 고사시키고 있다. 물론 그것은 이성을 잃은 학부모 아니 국민들의 ‘입시’ 열풍 때문이다. 교육열이 아니라. 교육전문가인 교육학자, 뇌 과학자, 인지심리학자 등의 연구나 주장은 무시하고 학원의 ‘공포’ 마케팅과 주변 부모들의 말에 동요하는 어른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 배경에는 반지성적 반과학적 사회흐름이 도도히 흐르고 있다.
아이들에게 하는 말이란 학원에 가라는 것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