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온몸이 "뇌"인 불가사리의 생존기

불가사리는 극피동물(棘皮動物)이라고 불리는데 극피란 피부에 가시로 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흔히 먹는 ‘징그러운’ 성게와 해삼도 극피동물이다. 피부에 가시 같은 것이 달려있다. 바닷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불가사리는 신기하게 생겼다. 만지면 딱딱한데 움직임도 없고 살아있다는 느낌보다는 죽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불가사리라는 이름의 ‘사’는 죽음을 뜻하므로 불가사리는 죽지 않는다는 뜻이다. 오랜 세월 죽지 않고 살아남았고 지금도 죽은 것 같은 모습이지만 죽지 않고 살고 있다. 


가시관 불가사리(crown-of-thorns starfish)는 ‘악마’ 불가사리로도 불리는데, 그 이름대로 몸이 뾰족한 가시로 덥혀 있다. 산호는 가시관 불가사리가 가장 좋아하는 먹이이기 때문이다. 소형 육식동물인 불가사리는 해면, 어패류, 복족류 등 다양한 해저 무척추동물을 잡아먹는다. 해양생태계를 교란하기도 하지만, 포식활동을 통해 생물의 개체수를 조절하는 역할도 한다. 또한 다른 생물들이 섭취할 수 있는 침전물을 생성하므로 생물다양성의 핵심역할을 한다. 


불가사리 같은 극피동물은 특이하다. 대부분의 동물은 대칭축을 가지고 신체 양쪽이 대칭을 이룬다. 불가사리나 성게 같은 극피동물은 다르다. 불가사리는 다섯 곳 이상의 방향으로 몸이 방사형 형태로 퍼져있다. 이로 인해 5개 이상의 대칭성을 갖는다. 불가사리는 몸통 부위에 해당하는 유전자는 매우 부족한 반면, 머리 부위에 해당하는 유전자들은 많다. 불가사리 같은 극피동물은  사실상 ‘머리만 있는 동물’이라고 볼 수 있다. 머리만 있는 동물이지만 머리는 발달하지 않았다. 꼬리 구조와 관련한 유전자들은 다섯 방향의 끝 쪽에서만 살짝 발현된다.


가시관 불가사리 가시에는 독이 있어 거의 천적이 없다. 그러나 생물생태계에 천적이 없는 것은 없다. 육상동물의 왕인 사자도 인간 앞에서는 힘을 못 쓴다. 인간도 잡아먹히지는 않지만 코로나19 같은 바이러스나 각종 병균에 쓰러지고 죽어간다. 가시관 불가사리의 대표적인 천적은 붉은 긴집게발게(red decorator crab)이다. 다른 천적보다 훨씬 많은 불가사리를 잡아먹는다.


극피동물은 캄브리아기라고 불리는 5억 년 전에 처음 지구상에 나타났다. 불가사리뿐만 아니라 오늘날 살고 있는 대부분의 동물도 이 당시에 나타났다. 이 시기에 갑작스럽게 폭발적으로 생물종이 늘어나서 이 시기를 캄브리아기 대폭발이라고 부른다. 불가사리가 5억 년 전에 살았다는 증거가 되는 화석도 발견되었다. 아프리카 북부에 있는 모로코에서 4억8000만 년 전 불가사리 화석이 발견되었다. 현재 살고 있는 불가사리와는 40%밖에 닮지 않았다. 오랜 세월 변화를 겪어 진화되면서 60%정도 달라진 것이다.


가시관 불가사리가 크게 늘어나면서 지구 온난화로 위기에 빠진 산호초에 큰 위협이다. 하지만 수온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불가사리도 생존이 어렵고 바이러스 감염에 취약해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지속될 경우 불가사리의 생존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해양생태계도 교란될 것으로 우려된다. 사실 가시관 불가사리도 산호초에 살고 있는 다양한 생물 종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개체수가 갑자기 늘어 산호초를 심각하게 파괴하는 이유는 인간의 무분별한 남획과 환경오염으로 천적들이 줄어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산호초에 사는 생물을 보호해 다양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생물다양성의 논리이다.


지구온난화는 인간뿐만 아니라 생태계 전체를 흔들고 있다. 불가사리라고 예외는 아니다. 환경이 변화하면 생명도 적응하여 자연선택 되어야 멸종하지 않고 생명을 이어갈 수 있다. 불가사리도 적응 중이다. 북대서양에 서식하는 불가사리들이 이종교배를 하고 있다는 증거가 발견된 것이다. 차가운 바다에 적응한 종과 높은 온도에 대한 내성을 가진 종간에 교배를 하는 것이다. 이들이 서식지가 중첩되어 이종교배가 가능하였다. 전 세계 해양 중에서도 수온 상승이 급격히 이뤄지고 있는 지역이어서 두 종의 이종교배가 환경변화로 인한 결과물일 가능성도 높다. 결국 이종교배로 어느 한 종을 대체하게 될지, 유전자 조합으로 새로운 종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알 수는 없다.


지구온난화는 심각하게 진행되고 더욱 악화되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그리 경각심을 느끼거나 위기감을 잘 모른다. 아니 알면서도 미국 같은 유리한 입지에 있는 국가들이 나서지 않고 있다. 언젠가 어느 한계선을 넘어서기 시작하면 생물뿐만 아니라 인간 전체가 멸종의 나락으로 빠질 수도 있다. 그 때 어떤 유전자를 가진 개체가 살아남을지는 누구도 알 수는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주 파괴자’ 130억여 년 전의 블랙홀 은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