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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평양의 데니소바 유전자로 본 인간의 복잡성


우리는 인간은 다양하고 복잡하고 모두 다르다고 생각한다. 정말 그렇다. 생긴 모습도 모두 다르고 성격도, 유전자도, 사고방식도, 수명과 병도 모두 다르다. 이러한 생각은 ‘수평적인’ 생각이다. 단지 현재의 관점에만 바라보는 것이다. ‘수직적으로’ 시간을 돌아보면 객관적으로 그것을 알 수가 있다. 인간이 진화과정에서 얼마나 복잡하게 유전적으로 섞이고 변이를 일으키고 자연선택이 되었는지를 보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아래는 남태평양 사람들이 어떻게 이주하고 어떻게 유전적으로 섞였는지는 소개한다. 이것 하나만 보아도 인간은 도저히 하나로 보기조차 어려우 보인다. 물론 생물학적인 종으로는 하나이다. 이것도 지금까지 밝혀진 것일 뿐이다. 그나마 이러한 서술도 향후 연구로 뒤집힐 수도 있다. 


남태평양 지역은 서로 다른 많은 시기에 수많은 사람이 들어와 정착해 유전적으로 큰 대조를 이룬다. 4만5000년 전 인근 오세아니아(Near Oceania) 지역인 파푸아 뉴기니, 비스마르크 군도, 솔로몬 제도에 정착했고, 멀리 떨어진 오지 오세아니아(Remote Oceania)인 바누아투와 월리스 및 푸타나 제도, 폴리네시아 등에는 아직 사람이 살지 않았다. 5000년 전 한 무리의 사람들이 대만을 떠나 오스트로네시아 확장(Austronesian expansion)으로 불리는 이주를 시작했다. 이들은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그리고 이미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던 오세아니아 인근 섬들을 거쳐 오지 오세아니아에 정착했다. 이러한 이주를 하는 동안 고인류 그룹들을 만났고 이들과 성적인 교류를 했다. 그 결과 현대 오세아니아 사람은 2~3%의 유전물질은 네안데르탈인으로부터 온 것이며, 데니소바인의 유전자도 최대 3%까지 가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호모 사피엔스는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 등과 성적 접촉을 한 것으로 알려졌고 현대 시베리아인과 아메리카 원주민, 그리고 동아시아인의 유전체에 제3의 데니소바인의 혈통이 들어있다. 


데니소바인(Denisovans)은 2010년 시베리아 알타이산맥의 데니소바 동굴에서 손가락 화석 뼈가 발견되면서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그리고 1980년 수도승에 의해 티베트 고원에서 발견된 첫 고인류 호모 종(hominins)은 16만 년 전 데니소바인이라는 것도 밝혀졌다. 이에 따라 데니소바인이 아시아 북부에서부터 동남아 섬 지역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에 많은 수가 거주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나온다. 데니소바인의 DNA는 아시아인, 호주 원주민, 멜라네시아 인에서 발견되며, 이것은 이 고인류가 한때 널리 퍼져 살았음을 시사한다. 


2014년 4월 2일자 <네이처>에는 오세아니아 원주민들에게서 데니소바인의 피가 5% 정도 흐른다는 사실이 발표되었다. 인류의 진화의 연결고리와 길게이어진 ‘끈’을 생각해보면 이러한 유전자 공유는 당연히 예상되는 것이 아닐까. 이 모든 성과는 독일 막스플랑크진화인류학연구소의 진화인류학자인 스반테 패보 박사가 지휘했다. 패보 박사는 고인류학분야의 아인슈타인이라고 할 만 하다. 참고로 ‘고’인류학은 멸종된 인류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남쪽에 위치한 파푸아 뉴기니와 솔로몬 제도 등 멜라네시아인들이 데니소바인의 유전자를 가장 많이 갖고 있다. 이들의 DNA 중 약 4%가 데니소바인의 것, 약 4%가 네안데르탈인의 DNA로 고인류 DNA를 8%나 갖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진화 유전학적 접근 방식은 어떤 인구군의 환경에 대한 생물학적 적응의 역사를 밝힐 수 있고, 특정한 인간 특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이러한 대규모 유전체 연구는 일부 지역에 영향을 미치는 질병의 유전적 원인을 더욱 잘 이해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2021년 대만과 필리핀, 비스마르크 군도, 솔로몬 제도, 산타 크루즈 제도와 바누아투 출신 320명에 대한 유전자 분석한 연구결과가 나왔다. 인근 오세아니아(Near Oceania) 여러 섬에 인간이 정착하게 된 시기는 기존 주장과 같았다. 초기에 정착한 후 섬들 사이에 유전적 격리 기간이 뒤따랐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인간이 바다를 건널 수 있었지만 역사상 먼 시기에는 상대적으로 드물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약 5천 년 전 사람들이 대만을 떠나서 오지 오세아니아에 정착했다는 ‘대만 밖으로(Out-of-Taiwan)’ 모델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한다. 사람들은 5000년 전보다 더 오래전에 대만을 떠났고, 오스트로네시아에 유입된 인구와 인근 오세아니아 인구의 혼합은 그 뒤 2000년 이후에 시작됐다고 보았다. 20개 연구 대상 인구 군에서 네안데르탈인의 유산은 약 2.5%로 매우 비슷했다. 데니소바인의 유산은 대만과 필리핀에서는 0%, 파푸아-뉴기니와 바누아투에서는 최대 3.2%까지 인구군 간에 크게 차이가 났다. 네안데르탈인은 피부 색소와 신진대사, 신경 발달 등과 같은 수많은 표현형 관련 유익한 돌연변이를 현대인에게 제공한 것으로 확인됐다. 놀라운 것은 거의 유일하게 데니소바인과의 혼합을 통해 면역반응 조절과 관련된 유익한 돌연변이를 획득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데니소바인과의 혼합으로 태평양 사람들이 지역 병원균들로부터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을 향상시켰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또한 데니소바인과의 혼합이 한 번에 발생한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네 개의 독립적인 사건 과정에서 발생했다. 이는 태평양 인구 군과 교배한 데니소바인이 사실상 매우 다양한 인구 군이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데니소바인들도 높은 수준의 유전적 다양성을 나타냈다는 것을 보여준다.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86-021-03236-5


과거 데니소바 인은 아시아 본토와 북쪽에 살았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파푸아 사람의 조상은 두 개의 데니소바 인(Denisovan) 혈통을 가지고 있으며, 이 두 데니소바인은 35만 년 전경에 분리됐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부터 현생인류가 긴 진화 기간 동안 지리적으로 격리돼 있던 여러 갈래의 데니소바 인과 교배했을 거라고 추정할 수 있다.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뿐만 아니라 당시 지구상에 인간과 같은(human-like) 매우 다양한 집단이 있었고 인류는 이들과 접촉했을 것으로 보인다. 동남아시아 섬과 뉴기니도 여러 고대 호모종 DNA를 가진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데니소바인은 호모 사피엔스와 통혼하여 우리 인간에게 유전자에 남겼고 그 중에는 인체의 면역력을 강화하는 유전자도 포함돼 있다. 자녀가 심각한 자가 면역 또는 이상 염증 상태에 있는 가족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특정 유전자(TNFAIP3)의 염기서열 변이가 발견되었다. 이 유전자는 면역반응을 줄여 면역체계를 냉각시키는 작용을 하는 특정 단백질(A20)을 생성한다. 염증성 장 질환, 류머티스 관절염, 다발성 경화증, 건선 등 과민한 자가 면역 질환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 유전자 변이는 인도네시아 발리(Bali)와 롬복(Lombok) 사이를 지나는 오스트레일리아구와 동양 구를 나누는 경계인 월리스선을 기준으로 동쪽에 거주하는 원주민에게서 주로 발견됐으며 일반 주민들 사이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월리스 선(Wallace Line)은 동남아시아와 오세아니아사이를 가르는 가상의 선으로 선의 서쪽에서는 아시아에 서식하는 동물만 발견되며, 동쪽에서는 아시아 및 오세아니아의 동식물이 발견된다. 동양 구(東洋區, Oriental / Indomalaya)는 히말라야 이남의 인도아대륙과 동남아시아를 가리킨다. 이 변이는 시베리아 알타이산맥의 데니소바 동굴에서 발견된 데니소바 인 화석에서 추출된 유전자에서도 확인됐지만 같은 동굴에서 발굴된 네안데르탈인 화석에서는 발견되지 않아, 데니소바인과 네안데르탈인이 분리된 뒤에 유전자 변이가 일어났음을 나타낸다. 데니소바인에게서 물려받는 유전자는 인체의 염증 반응을 강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데니소바인 유전자가 인류의 고산지대 적응이나 바이러스에 대한 저항력 강화 등에 도움을 줬을 것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온 적은 있지만 구체적인 기능을 들어 단일 유전자 변이를 지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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