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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도 점차 동물계에 편입되었다

우주와 지구의 기원과 역사뿐만 아니라 생명과 인간의 기원과 역사에 대해서도 패러다임이 바뀌기 시작했다. 18세기 들어 생물을 분류하면서 인간의 위치가 점차 위기에 몰렸다. 칼 린네(Carl von Linne, 1707~1778)는 1737년 생물의 학명으로 속명(Genus)과 종명(Species) 그리고 그 이름을 붙인 사람의 이름을 기재하는 분류법을 탄생시켰다. 린네는 기독교 신자였지만 사람을 최초로 동물이자, 영장류의 일종으로 분류했다. 당시 기독교 문화에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파격적인 분류였다. 이후 생물에 자신의 이름을 붙일 수 있다는 사실에 수많은 사람이 자연 연구에 뛰어들었다. 미지의 세계를 탐사하는 원정대가 꾸려져 탐험 대열에 속속 합류했다. 이런 분위기 아래서 찰스 다윈의 진화론이 탄생하고 있었다.


찰스 다윈은『종의 기원』에서 거의 인간의 진화에 대하여 말을 하지 않았다. 종교계의 탄압이 두려웠던 다윈은 인간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말을 하지 않았다. 단지 마지막 세 번째 단락에서 그는 자연에서 인간의 위치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여 아마도 과학사 전체에서 가장 숙명적이라 할 만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인간의 기원과 역사가 환히 밝혀질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혁명 이상이었다. 당시 유럽과 그리스도교가 가졌던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며 다른 동물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했다. 다윈으로 인하여 그리스도교적인 인간 개념은 무너졌고 인간과 동물 간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또한 인간과 생명은 신에 의하여 창조되어 변하지 않는다는 종의 불변성을 믿는 그리스도교 전통에도 일침을 놓는 것이다. 인간과 생명은 진화의 산물이며 끊임없이 진화한다. 『종의 기원』을 출판하고 10년이 지난 1871년에야 인간의 진화를 다룬『인간의 유래』를 출간했다.


1830년에 이르자 지금은 멸종한 공룡 같은 거대하고 기괴한 생물들이 한때 지구를 호령했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적어졌지만 여전히 세상은 현재 모습대로 창조되었다고 믿는 사람들은 많았다. 다윈은 다른 사람들이 진화론을 발전시키기를 바랐지만, 심지어 그의 추종자들조차 인간의 기원을 그와 다르게 해석하는 경향성이 있음을 보고 실망하여 단호한 어조로 『인간의 유래(The Descent of Man)』(1871)를 썼다. 이 작품에서 그는 인간의 조상이 유인원과 유사했다고 분명히 밝혔고, 심지어 진화는 인간의 신체적 특징을 산출했을 뿐 아니라 본능, 행동, 지능, 감정, 도덕성의 발달에도 기여했다고 주장했다. 이 책의 원제는 『인간의 유래와 성 선택(The Descent of Man, and Selection in Relation to Sex)』으로 2006년도 우리나라에도 번역서가 나왔다. 이 책에서 다윈은 ‘나는 주인의 목숨을 구하려고 무서운 적에게 당당히 맞섰던 영웅적인 작은 원숭이나, 산에서 내려와 사나운 개에게서 자신의 어린 동료를 구해 의기양양하게 사라진 늙은 개코 원숭이에게서 내가 유래됐기를 바란다.’라고 썼다. 인간은 동물에게서 유래됐고 ‘인간으로’ 창조되지 않았음을 밝혔다. 인간의 지성은 적응에 의하여 변할 수 있는 ‘형질’로 보았다.


인간도 동물이라는 것은 살인과 폭력행위를 보면 쉽게 체감할 수 있다. 인간이 속한 포유류 가운데 자기 종족을 죽이는 종은 40%에 이른다. 나머지 60%의 포유류는 자기종족을 죽이지 않으니 인간은 잔인한 포유류에 속한다. 포유류의 평균적 동족 살해비율은 0.3%이다. 동족 살해비율이 가장 높은 동물은 뜻밖에도 미어캣으로 19%이다. 다큐멘터리에서 협동과 헌신의 모습으로 묘사되지만, 새끼의 생존을 위해 다른 새끼를 죽여 동족 살해 비율이 가장 높다. 유아 살해는 사자 같은 포식자나 늑대에게도 나타나지만 가장 잔인한 종은 인간이 속한 영장류로 살해비율이 매우 높다. 특히 인간이 속한 호모속의 살인비율은 2%로 포유류 평균의 7배이다. 살인이 영장류의 진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동족 살해비율은 사회생활을 하는 동물에게 크게 나타난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세력을 형성할수록 집단 안이나 집단 사이에 짝짓기, 먹이, 영역 등을 두고 경쟁이 심하기 때문이다. 인류의 조상도 수렵·채취를 하던 소규모 집단과 반쯤 정주생활을 하던 수렵·채취인 부족에서는 영장류 일반과 비슷한 살해비율을 보였다. 그러나 더 규모가 크고 위계적인 부족에서 살해비율이 훨씬 높다. 그러나 국가가 등장하면서 그 비율은 급격히 떨어졌다. 국가 이전 중세 때 살인은 12%에 이르렀다. 인간에게 나타나는 살인은 인류가 특별히 폭력적인 영장류 계통에 속해 있었던 데서 기원한다.


18세기에 린네와 함께 인간과 동물 간의 유사점을 주장한 사람은 엉뚱하게도 작가인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이다. 괴테는 우리나라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작가이다. 하지만 그가 자연과학자이며 인간과 원숭이는 별 차이가 없다는 주장을 했다는 사실은 잘 모른다. 문학가이자 과학자였던 괴테는 “과학은 시로부터 탄생했다. 시대가 변하면 과학과 시는 더 높은 수준에서 동료로 다시 만날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는 자신이 문학가라기보다는 자연과학 연구자로서의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1784년 중간 악골(顎骨)을 연구한 후에 사람과 원숭이의 골격에는 본질적 차이가 없다고 주장했다. 교회가 인간을 동물보다 훨씬 높은 위치에 두었던 당시에 그것은 위험한 주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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