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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독서

어른들은 아이들이 책을 읽기 싫어하게 만든다. 5~6학년이 되면 아이들은 책을 읽으라는 ‘압력’을 받는다. 도서관의 어린이 방은 주말이면 붐빈다. 책을 읽는 아이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책을 빌리러 온 부모님들이 눈에 많이 띈다. 부모는 나름 아이를 위하여 도서관에서 빌려오거나 책을 사준다. 장난감도 부모가 좋아하는 것을 가지고 놀면 흥미를 잃는데 책은 더하다. 대부분의 필독 도서나 권장도서는 나이에 비하여 어려운 책이다. 부모님은 성인 권장도서인 고전을 읽었는지를 생각해보면 안다. 아이들도 말한다. 억지로 읽는 게 아니라,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싶을 때 읽게 해달라고. 자신이 좋아하는 장난감으로 놀이를 하는 아이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논다. 놀이로써, 즐거움으로써의 독서만이 책맹 시대 아이들을 구제할 수 있다.


부모라면 어떡하든 아이에게 좋은 책을 읽히고 싶어 하고 은근히 강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를 이해하려면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아봐야 한다. 필자는 어린 시절 그네를 타고, 논두렁을 뛰어다니며 메뚜기를 잡고, 총싸움 놀이를 하고, 강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놀았다. 어린 시절 마을이나 이웃마을에나 서점은 없었고, 누군가 책 읽는 모습도 본 적은 없었다. 가끔 우리 집을 멀리서 찾아오시는 외삼촌이 책을 선물하면 그것이 전부였고 재밌게 읽었다. 하지만 그 시절 책이 없어 그랬지 책이 많았더라도 노는데 정신이 팔렸을 것이다. 오늘날 아이들은 책은 어디서든 구할 수 있지만 디지털과 스마트폰 시대에 태어나 살고 있고 매일 학원으로 야간자율학습으로 과제로 바쁘다. 다니엘 페나크(Daniel Pennac)의『소설처럼』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당신이 원하는 건 그게 아닐걸, 당신이 아이들에게 기대한 건 당신이 정해준 소설을 읽고 그럴듯한 독후감을 쓰는 것, 당신이 골라준 시를 정확하게 ‘해석’하는 거 아니야? 그래서 대학 입학 자격시험에 학생들이 당신이 뽑아준 예상 문제 중에서 나온 텍스트를 능숙하게 분석해서 적절히 ‘설명’하거나 당일 아침 시험관이 학생들의 코앞에 들이미는 문안을 칼같이 ‘요약’하기를 바라는 거잖아.” 이 문장과 마주했을 때 아이를 키웠던 부모라면 멈칫할 것이다. 다니엘 페나크(Daniel Pennac)의『소설처럼』또 이런 글이 나온다.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과 나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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