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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손자 편애

암컷이 평생 번식을 하면 많은 후손이 살아남는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폐경은 진화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대부분의 생명체는 번식능력이 없어지면 죽는다. 그러나 인간은 폐경을 한 뒤에도 수십 년을 더 산다. 이렇게 폐경을 하는 동물은 인간과 고래가 유일하다. 포유류 중 폐경을 하는 육상동물은 인간뿐이고, 바다에서는 들쇠고래, 흑범고래, 범고래, 일각돌고래, 벨루가고래 등 이빨고래 5종뿐이다. 폐경은 생명의 세계에서 미스터리이다. 자신의 유전자를 최대한 많이 남기는 쪽으로 진화하기 때문이다. 여성은 50세를 전후해 폐경을 하고 임신과 출산을 할 수 없으니 냉혹한 자연과 진화론의 관점에서는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 그건 남자도 마찬가지이다. 자연계에게 번식을 끝낸 늙은 인간은 ‘자연적으로’ 의미는 없다.


인간과 같은 고도로 사회화된 동물의 폐경을 설명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할머니 가설(grandmother hypothesis)’이다. 다른 동물의 암컷은 생식기간이 끝나면 죽지만 인간 여성은 가임기가 끝난 뒤에도 훨씬 오랫동안 사는 것은 손주와 자손에게 진화적 이익을 제공하기 때문이라는 자연선택의 가설이다. 직접 자녀를 낳기보다는 손자들의 양육에 도움을 줘 자신의 유전자를 가진 자손을 번성시키는 방향으로 여성의 몸이 진화했다는 것이다. ‘노인들이 간접적으로 자손 번식에 도움을 준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모순이 있다. 과거에는 지금보다 훨씬 이른 나이에 결혼했고 일찌감치 손주를 봤다. 과거 인간의 수명은 50살도 되지 않아, 폐경이 오기 전에 죽은 사람도 있었고 폐경과 죽음이 동시에 왔다. 할머니 가설은 현대에나 의미가 있다. 수명이 크게 증가하면서 손주를 볼 기회가 생긴 것이다. 노인 부모가 손주들을 돌보아 후손의 생존비율을 높여 유전자를 후세에 전할 가능성도 높아지게 한다. 할머니의 손주양육에의 참여는 학업 성취도 향상, 사회성 증가, 신체 건강 등 다양한 지표에서 긍정적 효과를 보인다는 연구는 많다.


자기 자식보다 손주가 더 예쁘다고 한다. 특히 할머니의 손자사랑은 대단하다. 나도 어렸을 적에 할머니의 일방적인 사랑을 받았다. 여동생들은 분명 차별을 받았다. 할머니만 그런 것이 아니라 엄마도 마찬가지이다. 남녀차별의 원조(?)는 모순적이게도 여자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가정도 많다. 또한 그것이 본능인지 제도인지의 논란은 물론 있다.


손자에 대한 할머니의 사랑은 할아버지나 부모보다 더 크다. 할머니는 손주의 사진만 봐도 정서적 공감과 관련된 뇌 영역이 눈에 띄게 활성화한다. 활성화되는 정도는 아빠보다 할머니가 더 크다. 반면 아들과 딸, 며느리와 사위의 사진을 보여줬더니 감정적 공감 영역보다 인지적 공감과 관련된 영역이 더 활성화됐다. 성인 자녀를 보면 그들의 생각이나 감정을 이해하려 하지만, 손주를 볼 땐 감정을 느끼고 공감하려 하는 것이다. 할머니는 손자를 돌보고 싶은 본능적이고 신경학적 충동을 가지고 있다. 손주가 기쁘면 할머니도 기쁘고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성인이 된 손주 보여주었을 때는 감정이 아니라 인지적 공감과 관련된 뇌의 부분들이 밝아졌다. 귀여운 모습이 성인이 되면 감정적 사랑은 줄고 손자가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고 있는지에 궁금해 한다. 왜 손녀보다 손자에게 그리 사랑을 주는지 그 진화적 맥락이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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