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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인가? 타고난 게놈이자 후천적 커넥톰


게놈 프로젝트는 인체의 유전정보를 지닌 게놈을 해독해 유전자 지도를 작성하고 유전자 배열을 분석하는 연구 작업이다. 게놈은 유전자(gene)와 세포핵 속에 있는 염색체(chromosome)의 합성어로, 유전물질인 디옥시리보핵산(DNA)의 집합체를 뜻한다. 생명현상을 결정짓기 때문에 흔히 ‘생물의 설계도’ 또는 ‘생명의 책’으로 비유된다. 쉽게 말해 인간이라는 기계를 만들 수 있는 설계도이다.


인간 설계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뇌이다. 뇌는 우리의 의식을 만들고 우리가 정신, 영혼, 지능, 이성이라고 부르는 정신활동의 근거지이다. 뇌 기능은 신경세포 뉴런의 활동과 뉴런 간 연결에 의해 결정된다. 이러한 연결은 유전자와는 달리 후천적으로 만들어진다. 인간의 유전자는 번식을 통해 전달된다. 하지만 후천적으로 축적된 뇌의 정보는 자식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따라서 뇌의 정보를 보존하고자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리가 없다. 뇌 과학 기업 넥톰(Nectome)은 신경세포 사이의 연결이 남아 유지되도록 뇌를 보관하면 나중에 기억을 재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마취한 환자를 인공 심폐 장치를 연결하고 뇌로 연결된 경동맥에 방부 처리 물질을 주입한 뒤 뇌를 꺼내 냉동하면 부패하지 않은 상태로 보관할 수 있다는 주장도 했다. 이러한 주장은 회사 이름을 따온 신경망지도(connectome) 이론에 근거하고 있다. 이는 전체(ome) 신경세포들의 연결(connect)을 뜻하며 뇌의 지도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Bernard Werber)는 자신의 소설『뇌』에서 몸에서 분리된 뇌가 영양물질이 있는 액체 속에서도 그 기능을 하며 생각하는 것을 그렸다. 뇌만 분리되어 생각하고 학습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불가능할 것도 없다. 인간은 생물학적인 존재이다. 


2014년 출간된 승현준 교수의 저서『커넥톰, 뇌의 지도』는 뇌의 연결에 대하여 쓴 책이다. 유전자 지도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형질의 배열 순서라면, 커넥톰은 후천적인 뇌신경계 연결지도이다. 커넥톰 역시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 그러나 평생 고정된 것이 아니라 뇌의 활동 여부에 따라 신경의 연결 상태 즉 배선도가 바뀐다. 인간은 타고난 게놈이자, 후천적으로 형성된 커넥톰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오늘의 커넥톰은 어제의 커넥톰과 달라 게놈이 운명적이라면 커넥톰은 자유의지가 강하다. 인간의 뇌 속에는 약 1000억 개의 신경세포인 뉴런이 있고, 시냅스(Synapse)로 연결돼 있다. 빛이나 소리 같은 외부의 자극을 받으면 뉴런은 시냅스를 통해 이웃 뉴런에 전기 혹은 화학 신호로 같은 메시지를 전달한다. 특정한 자극에 대해 최초 뉴런이 어느 뉴런과 연결되는지, 그 모양과 패턴은 어떠한지를 파악해 전체 뉴런들의 연결망(네트워크)을 그린 것이 커넥톰이다. 커넥톰은 네트워크의 회선 수가 150조 개를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뇌 속 뉴런 간의 연결을 연구하는 학문이 커넥토믹스(Connectomics)이다.


최초의 커넥톰 지도는 예쁜꼬마선충에서 나왔다. 인간 뇌의 커넥톰은 앞으로도 수십 년이 걸릴 것 같다.  성체 동물의 뇌 커넥톰(connectome)은 1982년 302개의 뉴런으로 이뤄진 예쁜꼬마선충(C. elegans)이 처음이다. 2023년에는 뉴런 3천16개로 된 성체가 아닌 초파리 유충의 커넥톰이『사이언스』에 공개됐다.


초파리 성체의 뇌 커넥톰은 2024년 완성되었다. 초파리(Drosophila melanogaster) 성체의 뇌를 구성하는 14만 개의 뉴런 하나하나가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보여주는 뇌 전체 신경 배선도(connectome, neural wiring diagram)이다. 미국 프린스턴 대학 승현준(H. Sebastian Seung) 교수 등은『네이처』에 9편의 논문으로 발표했다. 승현준 교수는 삼성전자에서 사장 급으로도 근무했었다. 2010년경 승교수에게 메일을 보내 이런저런 질문 등 대화를 한 기억이 난다. 연구는 놀랍다. 폭이 1㎜도 안 되는 뇌를 10억분의 40m 두께로 얇게 잘라 전자현미경으로 스캔해 2천100만 장의 사진을 제작했다. 이어 인공지능으로 약 14만 개 뉴런의 모양과 이들 뉴런을 서로 연결하는 5천450만 개의 시냅스를 추출했다. AI가 분석하고 합쳐 전체 커넥톰을 완성했다. 인공지능이 향후 얼마나 과학에 기여할지를 보여준다. 이 연구의 전체 데이터베이스(https://codex.flywire.ai/)도 공개하여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인공지능의 비약적 발전은 세계를 이해하는 과학연구에 놀라운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초파리 뇌는 뉴런 수가 인간 뇌의 100만분의 1도 안되지만 다양하고 복잡한 행동을 하며, 인간 유전자의 약 60%를 공유한다. 이러한 유사성으로 초파리 뇌 연구가 사람 뇌에 대한 통찰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한다. 지금까지 10명의 과학자가 초파리 연구로 6차례 노벨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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