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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수명 기대수명 평균수명 건강수명 최대수명

유전자 분석에 의하면 초기 호모사피엔스가 ‘자연 상태’에서 살 경우의 자연수명(natural lifespan)은 38세이다. 우리가 과학과 의학의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면 40세도 못산다는 말이다. 정말 그렇다! 북극고래의 자연수명은 268년으로 예측된다. 갈라파고스 핀타 섬의 핀타섬땅거북종의 최대 수명은 120년이다. 침팬지는 39.7년, 혹등고래는 93년으로 예측됐다. 멸종된 네안데르탈인이나 데니소반의 경우 37.8년을, 털 매머드는 60년은 살았을 것으로 추정됐다. 인류는 침팬지 같은 유인원이니 자연수명은 비슷하다.


과학과 의료기술의 발달로 동물원의 유인원은 자연에서 사는 개체보다 훨씬 오래 산다. 수컷 고릴라는 15살 전후부터 등에 회백색 털이 나와 점점 많아진다. 무리의 우두머리가 된 나이 많은 수컷 고릴라를 ‘실버백(silverback)’이라고 부른다. 야생 실버백의 기대수명은 30~40년밖에 안 된다. 그러나 동물원에서 자란 고릴라는 거의 두 배 산다. 2021년 미국 애틀랜타 동물원에서는 61살, 2017년 오하이오 주 콜럼버스 동물원에서는 60살로 고릴라가 자연사했다. 미국 샌디에이고 동물원의 수컷 고릴라 윈스턴은 자연수명보다 10년~20년 넘게 살고 있다. 윈스턴은 인간과 같은 건강관리를 받는다. 인간에 적용되는 의학기술과 약물을 사용하고 의학 전문가의 상담을 받으며 코로나19 백신도 접종받았다. 사람처럼 혈압약과 심장병 약을 먹고 심장모니터까지 이식했다. 과학과 의료가 얼마나 인간에게 중대한 영향을 주었는지는 알려준다. 


그러나 일부 유전학자는 인간 수명이 1990년대 후반 이후엔 거의 늘어나지 않았다고 분석한다. 전 세계 40여 국가의 인구조사 결과를 분석하여 인간 수명은 115세가 한계이며, 이미 1995년경 정점을 찍었다고 발표했다. 의학이 발전한다고 하더라도 유전자에 이미 입력된 수명 한계는 극복할 수 없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공식 출생증명서로 인정받은 세계 최고령자는 1997년 122세로 사망한 프랑스 잔 칼망이다. 그러나 이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이며, 앞으로 115세보다 더 오래 사는 사람이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주장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건강과 생활 조건이 개선되었고 이로 인해 어린 나이에 사망하는 비율이 감소해 수명이 길어진 결과가 전체 인구의 기대수명 증가로 이어졌을 뿐, 노화가 진행되는 속도가 느려져 기대수명이 늘어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인간을 포함한 대부분의 포유류의 사망 위험은 어릴수록 높고 성인기가 되면 상대적으로 낮아졌다가 노화가 시작된 후에 다시 증가한다. 영장류의 평균 사망 연령에서 나타나는 차이의 주요 요인은 유아기 및 청소년기 사망률이다. 즉, 기대 수명은 노화 비율이 아니라 노화와는 관계없이 얼마나 많은 인구가 유아기나 청소년기에 사망하는지에 좌우된다. 인간도 생활 조건이 개선되면서 유아기나 청소년기 사망률이 감소했고 그로 인해 수명이 늘어났다. 즉, 기대 수명의 증가는 노화 시계가 늦춰졌기 때문이 아니라 유아기 및 청소년기 생존율 향상의 통계적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이는 성인기에 들어선 이후 노화가 비교적 일정한 속도로 진행된다는 ‘노화 속도는 불변(invariant rate of ageing)’한다는 가설을 지지한다. 모든 인간은 같은 속도로 나이를 먹지만 서로 다른 나이에 죽는 것은 환경적 요인 때문이라는 것이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오래 살게 되었지만, 노년기에 죽음을 향한 궤적이 변한 것은 아니다. 의학적 발전이 생물학적 제약을 극복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기대수명은 특정 연도의 출생자가 이후 생존할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수명을 말한다. 지금 기대수명이 80세라는 것은 지금 태어난 사람에 적용한다. 자신에게 적용된다고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지난 2000년 동안 인간의 수명은 꾸준히 조금씩 늘어나 1~2세기마다 1년씩 증가했다. 19세기 중반까지도 인간의 기대수명은 50세를 넘지 못했다. 20세기 초부터 공중보건과 의학이 발전하며 기대수명은 크게 증가했다. 20세기에는 10년마다 무려 3년씩 늘어났다. 21세기에 태어난 사람 대부분이 100세 이상까지 살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다. 1990년대 이후 기대수명 증가세가 둔화됐고 2010년 이후 특히 느려진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도 2000~2009년과 비교해 2010~2019년의 기대수명 증가율이 감소했다. 미국은 기대수명 증가율이 9개국과 비교해 더 둔화 폭이 컸다. 1990년부터 2019년까지 기대수명이 가장 긴 9개국과 미국의 통계를 분석한 결과이다. 한국을 비롯해 호주,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홍콩, 스페인, 스웨덴, 스위스 그리고 미국 10개국이다. 10개 나라를 기준으로 21세기 이후 출생자 중 기대수명이 100세가 넘는 비율은 여성은 15%, 남성은 5% 미만이다. 21세기에도 급격한 수명 연장이 일어났거나 일어날 것이라는 증거는 현재는 없다. 한국인의 평균 기대수명은 1970년 62.3세에서 2010년 80.2세로 40년간 기대수명이 20년이나 증가했다. 1970년 전후 우리나라 생활환경과 의료 환경이 얼마나 열악했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40년간 우리나라가 얼마나 발전했는지도 보여준다. 2022년 기대수명은 82.7세로 2010년 이후 증가 폭이 확연히 줄었다. 


21세기 초 인간의 평균 수명은 85세를 당분간 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지만 2009년 일본 여성의 평균 수명은 86세였다. 인간 수명은 늘 예측을 뛰어넘었다. 과학과 의학의 발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충분한 영양, 음식을 보관해주는 냉장고, 살균과 정수, 폐수 처리 시설이 도움을 줬다. 항생제, 마취, 백신 같은 의학, 유전자 이중나선 구조 발견 같은 생물학지식 등도 공헌하였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항상 예상을 뛰어넘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모른다. 이미 생명의 자연한계가 무너져가는 연구가 계속 나오고 있다. 미래는 알 수 없다.


사실은 노년에 들면 수명도 관심을 가지지만 누워있는 시간이나 치매에 대한 공포가 더 크다. 오래 사는 것보다는 건강수명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건강수명의 연장도 과학기술에 달려있다. 기대수명은 건강하게 사는 건강수명과, 질병이나 사고로 아픈 유병 기간이 있다. 2022년 태어난 사람의 건강수명은 65.8년(남자 65.1년, 여자 66.6년)으로 예상된다. 유병 기간은 무려 16.9년(남자 14.8년, 여자는 19년)이다. 약 65년 동안 건강하게 살고 약 17년 동안 질병 등으로 힘들게 한다. 2020년 건강수명은 66.3년이었는데, 불과 2년 만에 0.5년 줄어든 65.8년이 되었다. 또 질병관리청이 발표한 2020년 건강수명 70.9년과 비교하면 5.1년이나 감소했다. 2022년 건강수명 65.8년은 2012년 65.7년과 비슷하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인의 건강수명은 늘어나지 않은 셈이다. 기대수명과 건강수명이 모두 단축된 배경에는 비만이 있다. 비만이 높은 시·군·구 10곳 중 8곳의 건강수명이 전국 평균 70.9년(2020년 기준)보다 낮다. 물론 암 같은 중대질병도 중요한 요인이다. 언젠가 건강수명에 대한 얘기도 쓸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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