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성향에 대한 뇌 과학의 연구
진보성향의 사람들은 사회적 평등 같은 공평성을 중시하는 반면, 보수성향의 사람들은 경제적 안정과 안보와 같은 집단의 안정성에 더욱 중점을 둔다. 사실 인간이 잘 살려면 둘 다 필요하다. 정치적 성향과 같은 인간의 정신도 신경과학자들은 연구한다. 그것이 신경정치학(Neuro-politics)이다. 진보성향의 사람들은 모호하고 새로운 정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반면, 보수성향의 사람들은 위험한 자극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뇌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뇌 영상 기술을 통해 사람의 심리 기전을 뇌의 변화를 통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정치 심리의 뇌 과학으로 등장한 신경정치학 연구는 정치성향과 관련한 핵심 뇌 영역들을 연구한다.
신경정치학은 유권자들의 표심을 바꾸려는 시도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신경정치학이 선거캠프에서 활용된 건 빌 클린턴과 조지 부시 시절부터다. 어떤 스타일의 옷을 입어야 유권자의 표심을 흔들 수 있을까? 어떤 단어, 어떤 표현을 써야 지지자들이 연설에서 환호성을 지를까? 선거캠프에서 신경정치학자들은 뇌 영상 자기공명장치와 뇌파 등을 활용해 이런 문제에 답을 얻고 있다. 신경정치학의 목표는 유권자들의 표심을 읽는 것도, 그들의 표심을 바꾸는 것도 아니다. 이 학문의 존재 이유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정치적 의사결정의 상황에서 좀 더 합리적인 선택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데 있다. 비전과 정책을 판단하고 그에 맞는 공약을 평가하는 과정이 뇌에서 어떻게 일어나는지 이해해서, 좀 더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해주길 기대해본다.
정치적 성향은 종교와 유사하다
진보성향의 사람과 보수 성향의 사람은 뇌부터 다르다. 보수 성향의 사람은 공포 감정을 담당하는 편도체(amygdala)의 오른쪽 부분이 두꺼운 반면, 진보 성향의 사람은 새로운 자극에 민감하고 외부 정보에 대해 반응하는 전대상회(anterior cingulate cortex) 부분이 두껍다. 보수 성향의 사람은 편도체가 공포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생존을 위한 행동에 민감하다는 뜻이다. 이 영역은 위험한 상황에서 공포를 느껴 도망가거나, 분노를 일으켜 스스로를 보호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이 영역은 그들을 공포 자극에 훨씬 민감한 유권자로 만들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반면, 진보 성향의 사람들은 위험하더라도 진보적인 생각에 훨씬 긍정적이다.
유전자도 다르다. 2천명의 유전자 정보와 그들의 정치 성향을 조사한 연구결과 진보적인 성향의 사람들이 도파민 관련 유전자(DRD4-7R)를 가질 확률이 높고 10대부터 적극적으로 사회활동에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경전달물질 도파민은 새로운 자극에 반응하고 위험에 감수하는 행동을 관장한다. 정치적 성향이 뇌 구조와 관련이 깊다는 뜻은 그것이 쉽게 바뀌기 힘들다는 뜻이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든, 환경과 경험에 의해 생성된 것이든, 정치적으로 진보 혹은 보수적인 성향은 뇌의 구조가 바뀌는 충격 없이는 쉽게 전향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자신이 특정성향을 보이는 것은 결코 이성만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닐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것도 사실상의 무의미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미국 민주당 성향과 공화당 성향 사람들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보수인 공화당원들에서 위험이 동반된 의사결정을 하는 경우 편도(amygdala)가 과도하게 활성화되고, 섬피질(insula) 활성도가 감소하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는 위험자극에 보수가 더 민감하게 뇌가 반응한다는 의미이다. 뇌의 전체적인 기능적 연결성을 연구한 결과는 2020년 처음 나왔다. 이 연구는 휴지기 상태의 뇌에서 진보와 보수의 차이를 관찰했다. 정치 성향에 따라 뇌의 기능적 연결망 또한 다르게 설계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보수성향의 사람들은 자기조절능력이나 회복탄력성과 관련이 있는 뇌 기능적 연결성이 진보보다 약 5배 높게 나타났다. 즉, 보수성향의 뇌는 심리적 안정성이 진보성향의 사람보다 높은 것이다. 106명의 성인을 설문조사해 보수, 중도, 진보성향 그룹으로 구분하여 뇌 기능 네트워크를 살펴봤다. 그 결과 심리 스트레스를 조절하는 뇌 영역들 사이의 신호전달 체계가 정치성향에 따라 달랐다. 정치적 성향에 따른 생각의 기반이 다름을 안다면 다른 성향의 사람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정치적 성향에 따라 뇌기능의 차이가 생겨난 것인지, 뇌기능 차이로 인해 정치적 성향이 다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정치적 입장에 따라 뇌의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가 얼마나 단순한 판단으로 투표하는지를 폭로한 논문이 있다.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2005년 발표한 그들의 논문에는 흥미로운 실험 결과가 담겨 있었다. 프린스턴대학 학생들에게 민주당과 공화당 미국 하원의원 후보들의 사진을 1초간 보여준 뒤 “누가 더 유능해 보이는가? 그래서 누구를 뽑을 것인가?” 질문을 했다. 그 결과, 그들의 대답이 실제 선거 결과와 70%나 일치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많은 유권자들이 실험 참가자들처럼 1초의 첫인상으로 후보를 판단한 뒤 실제 선거에서 자신의 소중한 한 표를 던진 것처럼 해석된다. 신경정치학자들은 ‘유권자의 의사결정은 이성적이라기보다 정서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 같다.’라는 주장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07년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 공학과 신경물리학 연구실에서 했던 실험도 있다.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정동영 후보의 사진과 공약을 보여주며 뇌 영상 촬영을 했는데, 그들에게 지지하는 후보의 공약이라며 상대 후보의 공약을 보여줘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채 열렬한 ‘긍정의 반응’을 보였다. 그들은 누구의 공약인지가 중요할 뿐, 내용엔 별로 관심이 없는 듯했다. 2012년 대선에선 박근혜와 문재인의 지지율이 근소한 차이를 보일 때, 부동층 중에 실제로 투표에 참여할 의사가 있는 사람을 모집하여 실험을 했다. 특정 후보의 이름이나 사진과 함께 ‘좋다’ 또는 ‘싫다’라는 단어를 보여주었을 때 나타내는 순간적 반응을 측정하였다. 잠재의식 속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후보에 대한 선호도가 이 단순한 행동실험에 미세한 반응 속도의 차이를 야기하게 된다. 실험 결과 부동층은 약 54 대 46의 비율로 문재인을 좀 더 지지하고 있었다. 대선 당일 부동층은 57 대 43의 비율로 나뉘어 문 후보에게 더 많이 투표했다. 부동층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고 주장하지만 대선 후보들에 대한 내재적 선호도를 가지고 있다. 지지하는 후보의 연설을 들을 때 활성화되는 뇌 영역은 사랑에 빠졌을 때나 마약을 복용했을 때 자극받는 ‘쾌락의 중추’ 영역이다. 후보에 대한 맹목적인 지지는 심지어 맹목적인 종교와 비슷하다(한겨레신문, 2016.2.27. 정재승교수).
정치적 의사결정도 사실상 선천적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후보들의 연설을 보여주며 한 실험이 있다. 2004년 대선 당시 공화당 후보였던 조지 부시와 존 케리 민주당 후보의 모순된 발언 사례를 들려준 것이다. 예를 들면, 케리 후보가 1996년엔 은퇴연령을 높이겠다는 연설을 했는데 2004년에는 이와 상반된 내용의 연설을 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식이었다. 그 결과 공화당 지지자들은 케리 후보의 모순된 발언을 단번에 알아차린 반면, 정작 자신들이 지지하는 공화당 후보인 부시가 비슷한 모순된 발언을 범했을 때는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이는 민주당 지지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크리스 무니(Chris Mooney)의 저서『똑똑한 바보들』(2012년 번역출간)은 권위를 내세우는 보수주의자들이 오히려 과학적 사실을 무시하려는 성향이 강하다고 한다. ‘확증편향’과 ‘동기화된 추론’이라고 불리는 사고방식이 강해,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것은 잘 받아들이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무시하면서 신념을 보호하려 한다는 것이다. 진보적 성향의 사람들에게도 나타나지만, 그 정도와 빈도가 보수주의자에게서 좀 더 심하다는 것이다. 진보주의자들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는 반면, 보수주의자들은 기존에 자신이 믿고 있는 신념을 지키려는 의지가 강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이것이 사실임을 보여주는 연구가 2021년 발표되었다. 보수주의자는 진보주의자보다 정치적 참과 거짓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향이 크다는 것이다. 2019년 1월부터 6월까지 미국 성인남녀 120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연구결과이다. 진보와 보수 모두 사실 여부를 떠나 자신들에게 유리한 이야기를 더 많이 믿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보수 진영을 지지하는 정보에 오류가 더 많았으며 이 때문에 보수주의자들이 가짜뉴스나 거짓에 좀 더 편향성을 보인다. 민주당원은 가짜뉴스 중 2%만 사실이라고 믿었지만 공화당원은 가짜뉴스의 41%가 참이라고 응답했다. 민주당원은 진짜 뉴스의 54%는 확고한 사실이라고 믿었지만 공화당원은 진짜 뉴스 중 18%만 참이라고 답했다. 또 진짜 뉴스의 65%가 진보진영에 유리하고 보수진영에 유리한 것은 10%에 불과하며 가짜뉴스의 46%는 보수진영에 유리하고 진보진영에 유리한 것은 23% 정도라는 응답이 나왔다. 보수진영이 사실에 대한 감수성이 낮고 자신이 믿고 있는 것에 대한 확증편향성은 더 강하다. 진보 측이나 보수 측 모두 자기편에 유리한 쪽에 영향을 받는 경향이 강하지만 보수주의자들이 거짓을 좀 더 쉽게 믿는다.
https://advances.sciencemag.org/content/7/23/eabf1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