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집단 안에서 볼 때는 도덕적인 사람이 경쟁에서 유리하다고만 할 수 없다. 이기적인 인간이 이득을 취하기 때문이다. 집단 간에서는 다르다. 다윈은 동물의 이타적 행동을 집단의 관점, 즉 집단을 위한 희생으로 설명했다. 공동의 이익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은 집단은 다른 집단과의 경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 1871년에 출간한『인간의 유래와 성 선택』에서 다윈은 이타적인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집단수준에서의 자연선택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연선택의 대상이 개체인지 아니면 집단도 포함될 수 있는지는 치열한 논쟁의 대상이었다. 다윈과 초기 진화론자들은 집단이익을 위해 노력하는 개체를 가진 집단이 살아남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집단선택설의 대표적인 사람이 베로 윈에드워즈(Vero Copner Wynne-Edwards, 1906~1997)이다. 집단선택설에서 가장 흥미롭게 제시하는 사례는 레밍(lemming)이라는 나그네쥐이다. 엄청난 번식력을 가진 이 쥐들은 몇 년에 한 번씩 수천마리가 바닷가 절벽에서 떨어져 죽는다. 집단선택설 학자들은 개체가 너무 많아 먹이가 부족해지면 늙은 쥐들이 스스로 떨어지는 것이라고 추론했다. 그러나 조사 결과 먹이를 찾아 우르르 몰려가다가 벼랑 끝에서 멈추지 못하고 밀려 떨어지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1964년 존 메이너드 스미스(John Maynard Smith, 1920~2004)는 집단선택은 매우 특정한 조건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예외적인 현상이라고 주장했다. 일반적인 진화 메커니즘으로서 혈연선택이라는 용어를 제시했다. 진화생물학자 윌리엄 해밀턴(William D. Hamilton, 1936~2000)은 이타주의를 유전자에 기초하여 설명하였다. 1964년 윌리엄 해밀턴(William Donald ‘Bill’ Hamilton, 1936~2000)은 포괄적합도(Inclusive fitness) 이론을 발표했다. 이타적 행위는 유전적 근연정도(genetic relatedness)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것을 밝혀냈다. 포괄적합도(Inclusive fitness)는 1964년 윌리엄 해밀턴이 정의한 진화 성공의 두 가지 지표 중 하나이다. 개체적합도는 개체가 낳은 자손의 수이다. 포괄적합도는 개체가 자신의 행동을 통해 양육 또는 지원하는 자손과 친족의 수이다. 포괄 적합도 이론을 기초로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는 그의『이기적 유전자』에서, 이타적으로 보이는 동물의 협력이 유전자의 관점에서는 ‘이기적’일 수 있음을 보여 주었고, 인간도 결국 ‘유전자의 운반자’라는 점을 강조했다. 유전자에 의한 설명은 일부 사람들에게는 감정적으로 반감이 나타날 수 있다.
혈연선택은 벌이나 개미의 설명할 수 있다. 일개미는 새끼를 낳지 않으며 여왕개미와 다른 일개미들을 돌보고 먹을 것을 나누며 심지어 목숨도 바친다. 이것은 근연정도로 설명된다. 한 여왕개미가 낳는 모든 암컷 자매들은 서로 유전자를 공유하는 정도가 75%이다. 개미는 50%의 유전자를 공유하는 새끼를 낳아 기르는 것보다, 여왕개미를 도와 75%의 근친정도를 가진 자매를 계속 낳도록 돕는 것이다. 식물도 유전적으로 가까운 개체를 돕는 행동을 한다. 식물은 경쟁적으로 뿌리를 내리지만 주변에 같은 종이 있으면 그런 행동을 억제한다. 햇빛도 마찬가지다. 잎이나 줄기의 성장 방향을 조정하여 서로를 가리지 않으려고 한다. 1966년 조지 윌리엄스(George Christopher Williams, 1926~2010)는 저서『적응과 자연선택』에서 자연선택은 유전자를 대상으로 하며, 오직 개체의 적응만을 만들어낸다는 점을 분명히 하며 집단선택설에 종지부를 찍었다. 결국 1960년대부터 혈연선택이 정설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동물과 인간의 이타성이 진화의 유산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려는 본능일 뿐이라는 것이다. 유전자만 이러한 이타성에 관련된 것이 아니다. 뇌도 관련이 있다. 뇌 앞쪽 부위인 전전두엽 피질의 일부 영역(ventromedial prefrontal cortex, vmPFC)이 다른 사람을 돕거나 친사회적 행동을 하는 결정을 할 때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부위는 보상과 그 보상을 얻기 위한 노력 사이의 선택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밝혀졌었다. 이곳이 손상되면 다른 사람을 도우려는 의지가 작았고, 돕기로 결정한 후에도 힘을 덜 쓴다. 이 영역 근처에는 손상되면 다른 사람을 도와주려는 의지가 더 커지게 하는 하위 영역도 있다. 이 영역은 10대 후반에 발달하고 나이가 들면서 변화한다.
사회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맺은 동료가 곤경에 처했을 때 그들을 돕는 데 더 강한 동기를 보인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집단도 마찬가지이다. 인간과 같은 포유류인 쥐도 그렇게 행동한다. 쥐들은 사회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맺은 동료가 곤경에 처했을 때 더 도우려고 한다. 공감과 동기에 관련된 뇌 영역도 활발하게 움직인다. 동기를 유발하는 뇌 영역에서 옥시토신 수용체 발현이 증가한다. 옥시토신 신호전달을 억제하면 도움이 줄어든다.
https://www.jneurosci.org/content/early/2025/04/17/JNEUROSCI.0845-24.2025
대부분의 인간은 먼 아프리카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기아에 시달려도 별 관심을 갖지 않고 도우려고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녀가 배고프다고 하면 바로 반응한다. 그걸 ‘자식사랑’이라고 한다. 사랑은 이기적 행동과 함께 하는 것이다. 아프리카에 대한 무관심과 가까운 사람에 대한 사랑, 이기심과 이타심이 혼재한다. 자유의지일까? 뇌와 호르몬 때문이다. 사실 자녀나 가족 또는 친구에 대한 사랑과 배려는 생물학적이다. 이것이 과학이 말하는 ‘인간성’이다. 따라서 한강 작가가 말한 ‘인간성의 회복’이란 용어는 잘못된 언어이며 ‘인간성의 극복’이 제대로 된 용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