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터에서 죽은 사람의 관이 전기화로 속으로 들어간 후 몇 십 분쯤 지나면 ‘소각 완료’,
조금 더 후에는 ‘냉각 중’이라는 글자가 켜지고 화장은 끝이 난다.
흰 뼛가루가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서 나오고 한사람 분은 한 되 반 정도이다.
세 살 난 아기도 ‘소각’된다.
관이 내려갈 때 젊은 엄마는 돌아서서 울었다.
뼛가루의 침묵은 완강했고, 범접할 수 없는 적막이 흐른다.
죽음은 날이 저물고,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것과 같은 자연현상이었다.
‘일상생활 하듯이 그렇게 가볍게 죽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질척거리지 말고 가자, 지저분한 것들을 남기지 말고 가자, 남은 것 있으면 다 주고 가자.’
책장을 들여다보았더니 지니고 있었던 것의 거의 전부(!)가 쓰레기였다.
이 쓰레기더미 속에서 한 생애가 지나갔다.
똥을 백자 항아리에 담아서 냉장고에 넣어둔 꼴이었다.
나는 매일 조금씩, 표가 안 나게 이 쓰레기들을 내다 버린다.
뼛가루가 무슨 연민이 있겠는가.
삶은 무겁고 죽음은 가볍다.
죽음은 싸워서 이겨야 할 대상이 아니다.
결국은 가볍다.”
김훈 “어떻게 죽을 것인가” 조선일보, 2019.6.15.
죽고 난 뒤에 화장터에서 소각되면 한 줌 재로 하늘을 떠다니다가 땅에 흡수될 것이다. 무덤에 묻힌다면 썩고 분해되어 원자와 분자로 나누어져 흩어질 것이다. 모두 박테리아나 바이러스가 그 일을 담당한다. 죽음은 자연의 순환일 뿐이다. 가을날 저녁 하루살이가 밤새도록 날다가 바닥에 떨어져 죽었다. 우리는 그것을 무심코 바라본다. “죽음은 날이 저물고,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것과 같은 자연현상이었다. 삶은 무겁고 죽음은 가볍다.” 단 두 개의 문장이 모든 것을 설명한다. 우리는 사람이 죽으면 ‘돌아가셨다.’라고 말한다. 우주의 먼지로부터 태어난 인간이 다시 우주의 먼지로 돌아감을 표현한 것이다. 우리는 대부분 자신이 먼지 같이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것을 전혀 생각지 못하고 살아간다.
기원전 7세기의 시인 아르킬로코스(Archilochos)의 ‘사후(死後)’란 시에서 죽음이란 ‘아무 것’도 아님을 너무도 허망한 것임을 짧고도 쉽게 썼다. 그는 호메로스만큼 인기를 누린 시인이었다. 이 시는 그리스인의 죽음에 대한 사유방식의 일단을 반영한다.
죽으면, 어느 누구도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칭송을 받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살아있는 동안에만
살아있는 사람과 호의를 주고받을 뿐이다.
죽은 사람은 가장 나쁜 것만 받는다.
그러니 살아서 머슴이라도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는 좋을 것이다.
그나마 우리 인간은 오래 살지만 하루살이나 매미의 삶은 짧고 비극적이다. 여름이면 작렬하는 태양의 뜨거운 불볕더위 속에 매미들이 목청껏 우는 소리가 들린다. 매미는 땅속에서 몇 년 동안 유충으로 산다. 이후 땅 위로 나와 며칠 동안 짝짓기하고 죽는다. 매미의 울음은 ‘죽음’의 소리이다. 생존은 땅속에서 벌레로, 번식은 터무니없이 짧은 시간 지상에서 매미로 지낸다. 번식이 끝난 매미는 땅에 떨어져 마지막으로 힘든 울음을 울며 죽어간다. 여름이 지나갈 무렵 우리가 흔히 보는 모습이다. 하루살이도 애벌레로 수개월 또는 수년간 물속에서 산다. 다 자라면 해질녘이나 밤에 떼 지어 날아다닌다. 늦여름이나 초가을에 산책을 하거나 산을 오르다보면 하루살이 떼가 눈을 괴롭힌다. 수컷과 암컷이 ‘혼인’ 비행을 하면서 짝을 찾는 것이다. 그러고는 대부분 하루라는 짧은 생을 살다가 죽는다. 그나마 재수가 없으면 지나가는 인간 손에 번식도 못하고 죽는다. 하루살이나 매미의 삶은 짧지만 인간의 삶은 그나마 길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자연 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다.
모든 죽어가는 것은 다른 생명의 비료가 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생명의 숨결과 죽음을 번갈아 갖는다. 생명의 모태인 바다 위 물거품처럼 그들은 일어났다가 부서져 바다로 떨어져 돌아간다.
영국 시인 알렉산더 포프(Alexander Pope, 1688~1744),『Essay on Man』
실비아 쇼프의『죽음의 탄생』(2008년 번역출간)은 기원전 고대 인간의 죽음에 대한 신화를 고찰하며 그들이 죽음을 이해하는 다양한 방식을 서술했다. 첫째는 인간의 운명으로 보는 것으로 오래 전에 신이나 ‘악의 세력’에 의해 인간의 죽음이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둘째는 인간의 죄에 대한 벌로 보는 것으로 먹어서는 안 되는 열매를 먹었거나 금지된 비밀을 밝혀냄으로서 죄를 짓게 되고 신의 벌을 받은 것이 죽음이다. 셋째는 필연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새로운 생명의 탄생이나 세상의 존속을 위해 죽음은 필연적이라는 것이다.
죽는다는 것은 물리학적으로도 생물학적으로도 설명되고 당연하다. 인간을 포함하여 모든 생명은 불완전한 진화로 생긴 유전자의 돌연변이와 손상으로 죽는다. 인간이 죽는다는 것 그리고 번식을 한다는 것은 인간도 자연계의 일부에 지나는 않는다는 분명한 증거이다. 인간도 다른 동물과 똑같은 ‘모습’으로 성행위를 하며, 결국은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