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자녀 간의 사랑, 가족 간의 사랑처럼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없다. 그것은 많은 문학작품 속에, 영화와 연극에서 표현되었다. 오늘을 사는 모든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사랑의 원천이었고 그것 없이는 인간의 삶은 거칠어졌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사랑을 뇌 과학으로 설명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불편한 일이다. 그러나 인간이 생물학적으로 진화의 산물이고, 종교적으로 피조물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생각은 좀 달라질 수 있다. 다시 말해 인간의 한계를 받아들인다는 의미이다.
여자가 출산을 하면 뇌 구조가 변한다. 아기를 낳은 여성의 뇌에서 특정 영역의 대뇌피질이 줄어들면서 아기와의 유대감이 높아진다. 아기와의 유대감이 높게 나온 여성일수록 이러한 뇌 구조 변화가 더 많이 일어났다. 특히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기를 도와주는 특정 전두엽 영역이 변하기 시작했다. 뇌의 이런 변화는 2년 가까이 유지된다. 또 다른 사람의 아기 사진보다 자신이 낳은 아기 사진을 볼 때 뇌 공감 영역이 훨씬 강하게 반응했다. 그런데 남자의 경우 아버지가 되기 전과 아버지가 되고 나서의 이 부분의 차이가 없었다.
젊은 여성이 아이를 낳으면 엄마가 돌봐주고 아이 양육의 노하우도 전수해준다. 그것을 문화라 부른다. 그러나 이는 인간만의 것이 아니다. 흔히 동물들의 번식과 새끼 양육이 단순한 본능에 의한 것이라고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 쥐도 우리 인간과 같은 문화를 가지고 있다. 어미 쥐는 새끼가 둥지 밖으로 나가면 둥지 안으로 집어넣는다. 어미 쥐는 새끼의 이러한 양육 방법을 아직 새끼를 낳지 않은 다른 암컷 쥐에게도 알려준다. 암컷 쥐들의 이런 행동은 옥시토신 호르몬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옥시토신은 수유를 시작한 어미 쥐에게서 활발히 발현되어 모성 본능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뇌파 측정으로 확인해보니 엄마 교육을 받은 암컷 쥐들도 새끼 쥐가 둥지 밖에 있는 모습을 보이거나 우는 소리가 들리면 옥시토신이 분비됐다. 반면 엄마 교육을 받더라도 시·청각 정보가 차단됐거나 옥시토신이 만들어지지 않는 쥐는 새끼를 돌보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이러한 메커니즘은 인간에게도 유사하게 작동한다.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86-021-03814-7
엄마의 모성애보다는 남자의 부성애는 약한 것으로 보이나. 그러나 여성이 임신 중일 때 남성도 이미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준비한다. 뇌에 영향을 미치는 호르몬의 변화 탓에 예비 아버지는 평소와 다르게 행동하고 다르게 느낀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벌써 예비 아버지의 프록타닌 농도가 상승한다. 이 호르몬은 어머니의 젖 분비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남녀 모두에게서 보호행동을 일깨우기도 한다. 그와 동시에 예비 아버지에게 남성 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의 혈중 농도가 낮아지는데 이것은 아이에 대한 공격성을 누그러뜨리고 생식충동을 저하시킨다. 예비 아버지에게서 어떻게 이런 태도의 변화가 야기되는지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임산부의 독특한 냄새가 모종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추정된다. 아이의 출생 후 프로락틴과 옥시토신은 아버지의 행동 및 아버지와 아이의 유대에 영향을 미친다. 어린 아이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아버지의 경우에만 아이와 함께 노는 동안 유대 호르몬인 옥시토신의 농도가 증가한다.
몇몇 동물종의 수컷은 인간과 유사한 부성애를 보여준다. 비단 원숭이에 속하는 마모셋 수컷들은 새끼들을 업고 다니고 보호하고 음식을 먹여주는 등 새끼들을 돌본다. 새끼를 낳으면 뇌의 앞 부위, 즉 전전두 피질에서 변화가 일어난다. 그곳에서 신경세포들의 연접 부위가 증가하는데, 이것으로 미루어 그것의 네트워크가 새롭게 정비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 밖에도 뇌 피질 부위에서 사회적 행동을 자극하고 새로운 역할에 임하는 수컷들을 도와주는 화학 전달 물질인 바소프레신에 대한 반응 능력이 상승한다.
일반적으로 수컷 생쥐들은 새로 태어난 수컷 생쥐를 우연히 만나면 죽여서 먹어 버린다. 아마도 미래의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함일 것이다. 그러나 수컷 생쥐가 교미를 하고 3주가 지나면 마주친 수컷들에게 거친 행동을 하지 않는다. 생쥐의 임신기간은 3주이다. 수컷 생쥐의 뇌 속에는 시계가 있어서 짝짓기를 하고 3주가 되면 평소의 공격성 스위치가 꺼지면서 그 공격성이 자기의 잠재적 새끼를 돌보아야 정확한 돌봄 행동으로 대체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갑작스런 행동변화를 일으키는 정확한 메커니즘은 아직 분명하지 않다. 교미를 하는 동안 분비된 호르몬이 테스토스테론의 감소와 더불어 육아행동을 지시하는 새로운 뇌 회로의 형성을 유도하는 것일지 모른다. 인간의 예비 아빠도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1/3 정도 낮아지는 반면, 임신 여성의 육아행동과 수유와 관련된 호르몬인 프로락틴은 아기의 출산 예정일 몇 주 전에 크게 상승한다.
내 자식이라면 끔찍이 생각하는 ‘딸 바보’, ‘아들 바보’ 같은 ‘부모행동’은 포유류 동물에게 공통적이다. 이러한 ‘부모행동’은 뇌 부위에 있는 신경 세포와 관련이 있다. 부모 행동을 유발하는 세포를 활성화하면 새끼 쥐를 물어뜯던 쥐도 부모 쥐처럼 행동한다는 것이 관찰되었다. 연구진은 수컷 쥐에게서 관찰된 부모 행동이 뇌 시상하부의 내측시각중추(medial pre-optic area)와 관련돼 있음을 찾아냈다. 수컷 쥐가 보인 부모 행동은 내측시각중추의 세포 중 갈라닌(galanin)이라는 물질을 만드는 신경세포와 관련이 있었다. 쥐의 갈라닌 발현 세포를 인위적으로 활성화하자 공격성이 줄어들고 부모 쥐처럼 행동했다.
아기의 작은 손이나 발, 어린 동물을 웃음이 나오고 안아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1943년 동물학자인 콘라트 로렌츠(Konrad Z. Lorenz, 1903~1989)는 아기 스키마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동그란 얼굴, 커다란 눈, 뽀얀 피부처럼 아기가 가진 전형적인 신체적 특징들이 우리를 웃음 짓게 하고 돌보고 보호하고 싶은 욕구까지 불러일으킨다는 개념이다. 뇌 과학적인 설명도 가능하다. 해맑은 아기를 보면 사랑호르몬으로 불리는 옥시토신, 행복호르몬인 도파민이 분비된다. 인간의 뇌는 귀엽고 작은 것을 보면 사랑에 빠지도록 설계돼 있다는 진화생물학적 설명이 가능하다. 이는 곧 생명과 인간의 종족 보존으로 이어진다. 심리학적인 설명도 가능하다. 성인이 되면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를 느끼게 되고, 그 시절을 떠올리도록 만드는 것에 호감을 느낀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 인형을 가지고 놀았던 기억이 있는 사람은 성인이 돼서도 이러한 인형에게서 귀여움을 느끼고 편안함, 안정감, 따뜻함 등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애착을 느끼도록 만드는 대상을 아동심리학자들은 ‘이행 대상’이라고 부른다. 아이들이 항상 들고 다니는 애착 인형이나 애착 담요 등이 이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