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소화 기관에는 수십억 마리의 장 박테리아(gut bacteria)가 산다. 장 박테리아는 소화와 면역 같은 중요한 기능을 한다.
장내 미생물들은 모든 동물 내에서 ‘공생’하며 살고 있다. 질병에 걸리거나 항생제나 약물을 과다 복용하면 장내 미생물이 소멸하거나 불균형이 나타나서 질병에 걸릴 위험이 커지고 세포 수명이 짧아지는 등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초파리를 통한 연구에 의하면 장내미생물 불균형이 면역계의 기능장애를 유발시키고 활성산소를 많이 만들어서 노화를 빠르게 하고 면역력을 약화시킨다. 장내 미생물과 면역계 사이의 신호전달과 관련이 있는 초파리의 PGRP-SD 유전자를 완전히 제거했더니 수명이 짧아지고 장내 세균 중 젖산을 만들어 내는 박테리아가 비정상적으로 많아졌다. 장내 미생물이 젖산을 지나치게 많이 만들어서 활성산소 생성을 촉발시켜 세포를 파괴시키고 세포 노화를 촉진시켰다. 반대로 PGRP-SD 유전자를 활성화시키면 면역력이 강화되고 파리의 수명도 늘어났다. 공생 균과 숙주 사이에서 젖산균이 과도하게 만들어질 경우 세포 손상을 촉진시키는 활성산소도 증가하는 것이다. 비록 초파리를 이용한 실험이지만 사람을 비롯한 포유류의 장에서도 비슷하게 작동될 것으로 보이며 이번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수명 연장과 질병을 막을 수 있는 새로운 치료법을 찾아낼 기초가 될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장내미생물이 만성 퇴행성 뇌질환, 정신질환, 아토피 피부염, 심혈관질환 같은 질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장 박테리아는 생체시계(biological clock) 기능도 한다. 이를 통해서 인간의 생물학적 나이(biological age)도 추정할 수 있다. 장에 있는 박테리아 종류 중 3분의 1은 20~39세 나이에, 3분의 1은 40~59세 나이에, 마지막 3분의 1은 60~90세 나이에 해당된다는 것이 밝혀졌다. 즉 장 박테리아의 유형이 나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장 박테리아 유형을 기초로 약 4년의 오차 범위 안에서 실제 나이 추정이 가능하다.
100세 이상 장수하는 사람들은 만성질환과 질병이 적다. 장수는 유전적인 요인과 환경적인 요인이 모두 영향을 준다. 장내 미생물도 영향을 주는데, 장내미생물도 유전적인 면과 후천적인 요인이 함께 영향을 준다. 100세 이상 장수하는 사람들은 특정 세균의 감염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장내 세균을 지니고 있다. 100세 이상 노인은 장내 세균에 의해 만들어지는 특정 2차 담즙 산(isoalloLCA)의 수치가 현저히 높다. 간에서 생성되어 장으로 방출되는 담즙 산을 장내 세균은 화학적으로 변형시켜 2차 담즙 산으로 만든다. 이 담즙 산은 장에서 나쁜 세균의 성장을 억제할 수 있는 강력한 항균 작용을 한다. 수치가 매우 높은 110세 노인의 세균 주를 검사한 결과, 이 담즙 산을 생성하는 것은 특정한 세균(Odoribacteraceae)이었다. 이 담즙 산은 장에서 상존하면서 장염을 일으키는 균(clostridium difficile)의 성장을 늦추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병원에서 감염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한 항생제 내성균(vancomycin-resistant enterococci)의 성장도 억제한다. 이렇게 담즙 산이 나쁜 세균의 성장을 막음으로써 장의 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특정 장내 세균과 100세 이상 장수인 간의 연관성은 알아냈지만 이 세균이 사람의 수명을 연장하는 데 어떻게 기여하는지 증명된 것은 아니다. 100세 이상 장수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처럼 유익한 장내 세균을 얻게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타고난 유전자와 음식, 운동 등의 후천적 요인이 장내 미생물 생태계를 형성하는 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장내 미생물군은 중년에서 말년으로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사람들마다 다르다. 즉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핵심 미생물군의 종류가 점차 감소하고 개인마다 다른 미생물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건강한 노인도 장내 미생물이 독특해졌지만 건강한 사람의 미생물은 공통된 특성을 가졌다. 이러한 특성은 이전에 쥐의 수명을 연장하는 것으로 밝혀진 미생물 유래 대사물질과 관련이 있다. 이러한 장내 미생물의 변화는 건강한 노화 여부를 좌우한다. 즉 건강하게 늙는 사람들은 사람마다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핵심 미생물들이 줄어들고 고유한 장내 미생물이 증가한다. 반대로 덜 건강한 사람들은 핵심 미생물들이 유지된다. 이를 해석하면 건강한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장내 미생물 군이 계속 발달하지만,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살아가면서 식습관 등을 건강하게 유지하면 나이 들어 건강한 장내 미생물과 함께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반대로 중년기에 건강한 사람이 건강에 무관심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건강이 악화될 수 있음도 보여준다. 참고로 다이어트 여부, 잠자는 습관, 육체 활동량 등은 장 박테리아 종 분포도에 영향을 미친다.
모든 인류의 꿈인 불로초가 어쩌면 젊은이의 똥일지도 모른다.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어린 쥐의 분변을 공급받은 늙은 쥐의 장내 미생물 군집이 점차 어린 쥐의 미생물 군집과 닮아갔다. 또한 학습과 기억과 관련된 뇌 영역인 해마가 어린 쥐의 해마와 비슷해졌고 인지행동 능력도 좋아졌다. 마치 노화 과정을 되감기 버튼을 눌러 다시 되돌린 것 같다. 동물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므로 인간에게 적용하기 전에 더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극소수의 연구이자만 분변 이식이 인지기능 저하로 이어질 수도 있다. 변화하지 않은 부분도 있다. 일부 미생물 군집을 구성하는 미생물은 여전히 똑같았고, 나이 든 생쥐의 사회성도 향상되지 않았다. 이전 연구에서 장내 미생물 군집이 사회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결론을 도출한 적이 있기 때문에 추가연구가 필요하다.
https://www.nature.com/articles/s43587-021-00093-9
김형석 교수는 어린 시절 매우 몸이 약했다. 따라서 몸을 무리하게 할 수도 없었고 건강유지에 최선을 다하였을 것이다. 2021년에도 100가 넘은 나이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강의를 한다. 필자도 어렸을 때 죽을 고비를 넘기는 병을 앓았고 약골로 태어나 고생하면서 살아왔다. 평생 조심하고 운동하고 잠을 많이 자면서 살다보니 건강한 친구만큼 건강을 유지하면서 산다. 건강하게 타고난 명심해야 할 과학지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