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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크 유전자는 ‘정크’가 아니다


2003년부터 유전자의 발현과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여러 DNA의 상호작용을 밝히기 위해 ‘엔코드: DNA 원소 백과사전’이라는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미국 국립 인간게놈연구소의 지원으로 전 세계 32개 연구팀, 442명의 과학자들이 참가했다. 2007년 1단계 연구결과가 나왔다. 인간 게놈의 약 1%를 대상으로 ‘전사 인자’와 ‘특정 히스톤 변형’, ‘열린 염색질 구조’와 관련된 영역을 분석한 연구결과이다. 전사 인자는 DNA의 특정서열에 결합해 전사 과정을 조절하는 단백질을, 염색질은 세포핵 속에 존재하는 염기성 색소에 잘 염색이 되는 물질이다. 히스톤 변형은 염색질 주요 단백질 구성성분인 히스톤이 변형되는 것을 뜻한다. 2단계 연구결과는 2012년 발표됐다. ‘비 번역 DNA’가 실제로는 유전자를 조절하는 아주 중요한 인자일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비 번역 DNA는 어떤 정보도 생산하지 쓸모없는 DNA라는 뜻이다. DNA의 염기가 30억 쌍으로 이뤄져 있는데 이 중 세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물질을 만드는 정보를 담은 염기가 5~10% 불과해 이 같은 이름이 붙여졌다. 하지만 2단계 연구결과에 따르면 정크 DNA들이 대부분 다 쓸모가 있다고 밝혀졌다.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수많은 기능 부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2014년에 인간의 DNA 중 실질적으로 필요한 부분은 전체의 8.2%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DNA 중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부분은 8.2%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그저 기능적인 형태만 유지 할뿐인 정크 DNA이라는 것이다. 정크 DNA는 게놈을 구성하는 DNA 안에서 아무런 유전정보도 갖고 있지 않은 부분으로 진화가 많이 된 생물일수록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존에는 DNA 구성 성분의 80%가 유전자를 제어하는 주요 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정크DNA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능 없이 공간만 차지한다는 의견과 진화과정에 상당부분 관여한다는 상반된 의견이 학계에 존재하며 이를 필요 없는 부분으로 간주하기는 어렵다.


유전체(Genome)의 DNA 내에서 유전정보가 없는 부분을 불용 또는 정크 DNA라고 한다. 인간 유전체에는 약 30여 억 개의 염기쌍(chemical pairs)이 있는데 이중 약 98%가 정크 DNA로 추정된다. 30여 억 염기쌍에 달하는 인간 게놈 중 단백질을 암호화하는 유전자는 2% 내외이다. 나머지 98% 내외는 분열되거나 부서진 유전자, 게놈에 달라붙어 절단되거나 침묵 된 바이러스 등으로 진화의 파편에 불과하다. 이런 유전자를 정크 DNA라고 한다. 2010년대 10년간의 연구에 의하면 정크 유전자 중 일부는 단백질을 암호화하는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는 기능을 한다. 하지만 여전히 정크 DNA의 역할에 대하여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고등생물일수록 정크 DNA가 많고, 그것이 왜 존재하는지 알려지지 않았었지만 유전자 발현 시 그 위치와 타이밍 등을 정크 DNA가 제어한다는 게 밝혀졌다.


2019년에는 정크 DNA의 돌연변이가 자폐증을 유발하는 것이 처음 밝혀졌다. 가족 병력이 없는 자폐증 환자 1천790명의 유전체를 부모·형제와 함께 분석한 결과이다. 분석결과 정크 DNA에서 생긴 돌연변이의 영향으로, 자폐증 환자의 뇌에서 유전자가 제대로 발현하지 않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들 환자 가운데 유전적 요인이 확인된 경우는 30% 미만이었다. 유전정보가 없고, 유전되지도 않는 DNA 돌연변이가 질병을 유발하는 것이 입증된 건 처음이다. 유전자(gene)는 크게 엑손(exon)과 인트론(intron)으로 나눈다. 엑손은 DNA 염기 서열 중 단백질의 구성정보를 가진 부분이다. 진핵세포의 DNA에는 원핵세포의 DNA와 달리 실제로 단백질을 합성하는 부분과 아무런 의미가 없는 부분이 섞여서 존재하고 있다. 이때 의미 없는 부분을 인트론(Intron)이라 한다. 엑손은 “coding sequence(CDS)”와 “UTR(untranslated region)”로 나뉘고, 후자와 인트론은 비 암호부분(non-coding region)으로 이들은 정크라고 하지 않는다.


정크 DNA의 다수를 차지하는 트랜스포존(transposon 또는 jumping gene) 유전자 중 한 종류가 포유류의 생존 능력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연구 결과가 2021년 나왔다. 트랜스포존은 단백질을 생성하는 유전자는 아니지만, DNA 이곳저곳에 옮겨 다니며 자신을 복제한다. 특정 트랜스포존은 생쥐의 초기 수정 배아에서 세포의 증식과 어미 쥐의 자궁에 착상되는 시기를 조절한다. 이 트랜스포존의 기능을 정지시키자 어미 쥐가 임신한 새끼 쥐의 절반은 태어나기도 전에 죽었다.

https://www.cell.com/cell/fulltext/S0092-8674(21)01104-1?_returnURL=https%3A%2F%2Flinkinghub.elsevier.com%2Fretrieve%2Fpii%2FS0092867421011041%3Fshowall%3Dtrue


인간과 침팬지의 뇌의 차이는 이전에는 기능이 없다고 생각했던 정크 DNA라고 불려온 단백질 암호화 유전자의 외부에 있다는 사실이 2021년에 발견되었다. 인간의 뇌 발달에 중요한 것이 어쩌면 그동안 간과돼 왔던 98%의 DNA 속에 숨겨져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https://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pii/S1934590921003842?via%3Dihub


이제까지 과학자들이 주목한 것은 단백질을 암호화하는 2%의 유전자에 대한 연구였다. 그런데 어쩌면 98%의 정크 DNA에 생명체 진화와 발달의 비밀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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