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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뿐만 아니라 그 기원의 연구도 운칠기삼

1923년 러시아 생화학자 알렉산더 오파린(Alexander Oparin, 1894~1980)은 초기지구에서 화학반응에 의해 단순한 물질로부터 발전하여 최초의 세포가 저절로 형성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저서『생명의 기원』에서 ‘물질의 진화’ 과정에서 생명의 특징을 갖게 하는 생명의 구성요소들이 만들어졌다고 주장했다. 초기 지구의 대기 속에 있던 메탄, 수소, 수증기, 암모니아 등이 번개나 화산으로 발생한 에너지와 반응하여 뉴클레오티드, 당, 아미노산 등의 구성요소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성된 고분자 유기물이 지구상에 중합반응과 함께 농축되어 고분자 물질이 만들어지고 간단한 물질대사가 가능한 원시세포가 출현하였다.


그로부터 30년 뒤인 1953년에 간단한 화합물의 용액에 전기 자극을 가하여 생명의 화학적 기초인 아미노산을 합성하는 중요한 실험들이 이루어져 생명이 지구역사의 초기에 원시적인 조건 속에서 스스로 발생했다는 생각에 힘을 실어 주었다. 1953년 시카고대학의 스탠리 밀러(Stanley Miller, 1930~2007)와 해럴드 유리(Harold Urey, 1893~1981)는 오파린의 가설을 뒷받침하는 실험을 하여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초기 지구’에서 생명체를 만들어 냈다. 플라스크 안에 초기 대기의 주성분인 메탄, 암모니아, 수증기와 물을 넣은 다음 화산폭발이나 번개를 인공적으로 재현한 전기방전으로 아미노산 등 유기물질을 만들어냈다. 이 실험 이후 많은 학자들이 그것을 재현하는 실험을 했다. 초기보다 발전된 실험기구를 사용했지만, 공통된 것은 붕 규산 플라스크 내에서 수행되었다는 점이다. 이산화규소가 주성분인 유리가 열이나 산성에 내성을 갖도록 팽창계수를 낮추기 위해 약간의 붕산을 섞은 것이다. 


2021년 밀러와 유리의 실험에서 유기물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은 사용된 플라스크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실험을 했더니 붕 규산 플라스크나 붕 규산 유리 조각을 넣은 플라스크에서 그렇지 않은 플라스크보다 더 많은 유기화합물이 생성된 것이다. 지구 지각은 90% 이상 규산염으로 구성됐다. 광물도 주로 이산화규소를 포함한다. 초기 생명을 만드는데 지각을 이루는 규산염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해석된다. 밀러가 유리 반응기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생명의 기원과 관련된 유기 분자 중 극히 일부만 합성됐을 것이다. 어쩌면 밀러와 유리 실험은 실패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과학자도 운이 좋아야 한다는 것은 과학역사에서 많다.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98-021-00235-4#cite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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