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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근수 Feb 17. 2022

우리가 신맛 과일을 먹는 것은 소행성 충돌 때문이라고요

백악기 후기 마스트리히트세(Maastrichtian, 7450만~6640만 년 전)와 팔레오세(Paleocene Epoch, 6500만~5500만 년 전)의 남아메리카는 덥고 습한 기후였다. 약 6600만 년 전 남아메리카의 날씨는 지금과 비슷했다. 하지만 살고 있던 식물과 숲은 지금과는 달랐다. 백악기 말에 속씨식물도 살았지만, 숲은 주로 겉씨식물과 양치류가 차지했다. 특히, 침엽수가 많아 빛을 이용할 수 있는 캐노피(Canopy, 숲 나뭇가지들이 지붕 모양으로 우거진 상태) 밀도가 낮았다. 카우리 소나무(학명 Agathis australis), 남양삼나무과(Araucariaceae) 계통의 침엽수가 주요 수종이었다. 


6600만 년 전 지구에 소행성이 충돌했다. 대충돌 후 1000만 년 동안은 수목은 회복되지 못했다. 하지만 멸종 이후 숲을 대표하던 침엽수는 사라지고 꽃 피는 속씨식물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잎 넓은 상록활엽수와 관목, 초본 식물 등이 크게 번식하고, 그늘이 생기면서 여러 형태의 음지 및 반 음지 식물이 자리 잡았다. 현대 열대우림처럼 다양한 식물이 계층화된 분포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열대우림 생태계는 급격한 교란으로 이뤄진 것이 아닌, 오랜 시간 생태계들이 교체되는 과정으로 여기까지 온 것이다.


소행성 충돌은 인간의 미각을 바꾸어 놓은 것으로 보인다. 당시 열대우림은 과일이 풍부하여 과일에서 얻는 비타민C로도 충분했다. 그래서 영장류와 유인원의 공통조상은 6000만~7000만 년 전 비타민C를 합성하는 능력을 잃었다. 그러다가 기후와 서식지가 다시 바뀌면서 늘 과일을 구할 수 없게 되자 비타민C가 들어있는 열매의 시큼한 맛을 선호하게 됐다. 인간의 신맛에 대한 미각은 고대 물고기로부터 기원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동물은 신맛을 싫어하고 영장류를 비롯한 인간만 신맛을 어느 정도 좋아한다. 레몬이나 키위 같이 신 과일은 싫지만은 않은 맛이다.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 등의 유인원도 시큼한 열매를 좋아한다. 유인원이 신 열매를 좋아하는 데는 비타민C뿐 아니라 발효 식품이기 때문이다. 삭혀가는 열매 속에는 효모, 곰팡이, 젖산균이 경쟁한다. 이 가운데 효모와 젖산균이 지배하면 발효가 일어나 칼로리가 높아질뿐더러 아미노산과 비타민 함량이 늘어나고 소화도 잘된다. 이런 시큼한 먹이를 좋아한다면 생존 기회도 늘어날 것이다. 고릴라, 침팬지, 인간의 마지막 공통조상이 발효한 열매를 섭취했다는 분자 차원의 증거가 나왔다. 이 가운데 인간에게서 발효를 활용하는 유전자가 가장 강력하게 활성화했다. 발효 음식은 농업의 기원보다 시기적으로 앞선다.

https://royalsocietypublishing.org/doi/10.1098/rspb.2021.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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