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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라는 것


인간의 기억은 뇌에서 만들어진다. 뉴런에서 뻗어나가는 축색돌기(axon)라는 작은 가지들이 서로 연결되어 만들어진다. 시냅스(synapses)라고 불리는 연결점은 연결이 약하면 기억은 사라질 수 있고, 강하면 오래 지속될 수 있다. 기억은 우리의 ‘의지’가 아니라 신경세포와 시냅스가 하는 일이다. 뇌의 특정 부위(전뇌피질에 있는 브로드만 영역 10번 부위)가 손상된 사람은 더 이상 과거의 기억을 불러내지 못한다.     


자서전적 기억은 개인의 삶의 사건들에 대한 기억이다. 대부분 사람에게 자서전적 기억은 매우 선택적이다. 결혼식 날이나 끔찍한 자동차 사고처럼 매우 중요하거나 정서적으로 강렬했던 사건 위주로 기억한다. 기억이 형성되고 그것을 떠올릴 때 뇌의 시냅스에 특정한 단백질(Cytoplasmic Polyadenylation Element-Binding protein 3, CPEB3)이 간여한다. 첫 키스, 아이의 탄생 같은 일은 누구나 잊지 않는다. 평생 죽을 때까지 기억한다. 우리가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것은 우리 몸의 ‘한’ 단백질이 하는 역할이다. 우리의 의식 활동의 이면에는 늘 뇌가 존재한다. 그러나 자서전적 기억은 뇌의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기억 조각들을 재구성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한다. 때로는 서로 맞지 않는 기억 조각들을 끌어모아서 회상해 잘못된 정보를 만든다. 그래서 같은 상황을 경험하고도 서로 다르게 기억한다. 기억이 다르면 무엇이 맞는지는 누구도 판단할 수 없다.     


수십 년 전 친한 친구의 이름은 쉽게 기억이 나지만 방금 만난 사람의 이름을 쉽게 잊어버린다. 자신에게 중요한 정보는 뇌에서 여러 신경세포에 동시에 중복적으로 저장한다. 여러 신경세포에 ‘중복 저장’함으로써 장기 기억이 가능하다.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은 기억이 적은 뉴런에 저장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중요하다고 저장하고 어떤 사람은 다른 것을 장기 기억한다. 사람마다 선택적인 기억을 한다. 신경세포 간 연결이 지나치게 많아지면 정작 중요한 정보를 처리하지 못할 수 있으므로 이런 과도한 연결을 제어하는 것은 뇌의 정상적 기능 중 하나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자신의 과거를 대부분 다 기억한다. 특정 날짜에 무엇을 했는지, 어떤 사건·사고가 발생했는지, 날씨와 저녁 식사 메뉴까지 기억한다. 쉽게 천재라고 생각하기 쉬운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자서전적 대부분의 기억이 장기 기억으로 남는다. 이를 과잉기억증후군(Hyperthymestic Syndrome)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중요한 정보를 편집하여 기억하는 등 인지능력은 평범한 경우가 많다.      

‘과잉기억증후군’은 2006년 학계에서 처음으로 발표되었다. 바로 질 프라이스(Jill Price, 1965~)가 세계 최초로 ‘과잉 기억 증후군’ 진단을 받은 사람이다. 2022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과잉기억증후군으로 확인된 사람은 60여 명에 이른다. 질 프라이스는 자신의 저서『모든 것을 기억하는 여자』에서 자신의 기억 능력에 대해 ‘축복이자 저주’라고 말했다. 과거 모든 기억이 끊임없이 재생되는 스트레스를 겪어야 했다.     


어떤 사람들은 어린 시절의 부정적 경험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선택적 망각’을 한다. “저는 좋은 것은 다 기억해도 나쁜 것은 금방 까먹어요.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도 그냥 조금만 지나면 완전히 잊어요.” 프로골퍼 김효주가 한 말이다. 그러나 삶을 회상할 때 부정적인 기억에 초점을 맞추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자기 비하, 피해의식, 낮은 자존감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삶은 기억이다. 무엇을 기억으로 선택할지에 따라 삶은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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