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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근수 Dec 08. 2022

21세기 인간의 굴레와 초인


말기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호스피스 의사인 오츠 슈이치의 저서『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에는 25가지의 후회가 나온다. 그 중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했더라면’과 ‘삶과 죽음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했더라면’ 두 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후회하는 것 중 하나는 ‘삶에서 중요한 것을 찾는 것에 시간을 내지 못한 것’이라고 한다. 대학생 시절 니체를 읽으면서 인간은 평생 ‘쓸데없는 짓’하다가 죽는다는 글귀를 읽고 멍해졌다. 지금도 그 글이 자주 떠오른다. ‘쓸 데 있는’ 것을 찾았지만 무엇 하나 잡히는 것이 없었다. 종교를 10년간 들여다보았지만 들여다본 것으로 만족했다. 타고난 성향인 과학을 다시 잡았다.     

서머싯 몸의 1915년 소설 『인간의 굴레』는 자전적 소설이다. 주인공이자 작가는 청년이 되어 인생의 의미를 찾는다. 하지만 여자와 사랑으로 삶이 무너지고 인생의 무의미함을 깨닫는다. 20세기 초를 살았던 서머싯 몸의 ‘인간의 굴레’나 19세기 말을 살았던 니체의 ‘초인’은 그 시대의 사람이었다.     


얼마 전까지도 인류는 태양과 달과 하늘의 별이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고 알았다. 기원전 3세기에 고대 그리스 아리스타르코스(Aristarchos)가 지동설을 주장했지만, 당시에는 인정받지 못했다. 천동설은 140년 무렵 고대 그리스의 프톨레마이오스(Klaudios Ptolemaios)의『알마게스트(Almagest)』에서 확립되었다. 그 후로도 천 년 이상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었다. 프톨레마이오스 이후 1400년 지나서야 1543년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의『천체의 회전에 관하여』가 출간된 이후 인류는 천동설과 작별한다. 호모 사피엔스가 탄생한 후 수십만 년 동안 누구도 우주를 이해하지 못했다. 현생인류는 수십만 년 전 지구상에 출현한 이후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를 전혀 알지 못했다. 19세기 초까지 우주가 빅뱅으로 탄생했고, 인간이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1859년『종의 기원』이 나오면서 생각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지금까지 과학이 밝혀낸 것에 따르면 인간은 진화과정에 태어났고, 이 우주에서 너무나도 ‘작은’ 존재이다. 인간은 그 모든 것 중 하나이다. 이것이 과학이 말하는 우리 인간이다. 지구도, 태양도, 우리은하도, 그리고 우리 자신도 역시 그다지 특별한 것은 아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해준 것은 과학이었다. 과학은 의문의 해소와 무지의 정복 과정이다. 과학은 인간이 한다. 그러나 그 주체는 인간의 뇌이다. 뇌 과학이다.      


우리는 유전적으로 다른 동물과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지만 인간과 다른 동물은 분명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물론 그 차이는 1% 내외밖에 되지 않다. 인간과 인간이 아닌 영장류는 우리가 보기에는 차이가 크다. 하지만 인간은 침팬지와 원숭이, 고릴라 등과는 유전적으로 99% 같다.      


알다시피 인간의 두뇌는 특히 크고 그 기능도 다른 동물과는 현격히 다르다. 왜 그런 일이 발생했을까. 2014년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와 중국 과학한림원 연구팀은 인간, 침팬지, 붉은 털 원숭이, 실험용 생쥐 등 4종 동물의 뇌, 콩팥, 근육에서 얻은 5가지 생체조직을 대상으로 질량분석법을 이용해 1만 종이 넘는 대사체들이 얼마나 다르게 분포하는지 10여 년에 걸쳐 비교 분석해 논문을 발표했다. 그 결론 중 하나는 인간의 거대한 뇌로의 진화로 에너지 소모가 큰 인간 뇌에 에너지를 할당하다 보니 골격근육의 에너지 소비가 줄어 다른 유인원에 비하여 ‘힘’이 약해졌다는 점이다. 에너지 대사의 분배 방식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 미국 하버드대학의 인간 진화생물학자인 대니얼 리버먼(Daniel Liberman)은 초기 인간은 뛰어난 달리기 능력과 오래 걷기 능력을 갖추어 더 많은 음식을 구할 수 있었고 그래서 더 큰 뇌를 갖출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 어느 주장이 맞는지는 결론 내릴 수 없지만 결국 인간의 뇌는 커지고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게 되었다.     

2016년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가장 유의미한 유전자를 찾았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진화생물학협회 연구진은 침팬지와 고릴라, 보노보노 등 유인원과 사람의 유전적 차이점을 찾아내기 위해 사람의 마이크로RNA 배열 1,595개와 유인원의 유전자를 분석하였다. 이 연구에서, 인간에게서만 발견되는 4개의 변종 마이크로RNA를 발견했으며 동물과 사람을 구별 짓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2022년에도 유사한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인간은 특히 영장류에 비해 3배 많은 신경세포와 대뇌피질 구조를 가졌다. 뇌 신경세포를 만드는 유전자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대뇌 전두엽이 뇌의 3분의 1을 구성한다. 전전두엽은 전두엽의 앞부분을 덮고 있는 대뇌피질로 인지 기능을 담당한다. 전전두엽은 배외 측 전전두엽과 안와내측 전전두엽으로 구분된다. 배외측 전전두엽 피질 영역은 영장류에만 있다. 인간을 포함한 4종 영장류의 전전두엽 세포는 상당히 유사하다. 이들 4종의 전전두엽 피질에서 모두에게 공통으로 존재하지 않는 5가지 세포 유형이 있다. 어떤 종류의 세포는 인간에게만 있고, 어떤 종류의 세포는 마모셋원숭이에게만 있다. 이를테면 인간에게서만 발견된 ‘FOXP2’ 유전자를 보유한 세포는 미세아교세포 중 하나로 밝혀졌다. 미세아교세포는 뇌세포를 보호하는 기능을 한다. 인간만 가진 전전두엽 영역의 미세아교세포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 및 지적장애와도 관련이 있다. 어떤 세포는 4종 영장류에 따라 그 개수에서 차이가 크다. 예를 들어 감각 기관과 내장 기관으로부터 중추 신경계로 신호를 전달하는 감각 뉴런 중 일부는 인간의 뇌에만 유난히 많다. 이러한 몇몇 차이가 외모부터 인지능력까지 인간과 영장류를 차이 나게 한다. 그러나 전전두엽 피질에서는 대부분 세포나 유전적 수준에서 유사점이 많고 차이점은 아주 미세하다.     

https://www.science.org/doi/10.1126/science.abo7257


1%의 차이가 인간을 다르게 만든다. 유사한 동물의 유전적 차이도 미미하다. 가까운 종일수록 유전적으로 가깝고 일부 차이가 종을 구분한다. 인간은 영장류와 일부 차이가 나지만 그것이 인지능력 차이를 가져온다. 인간이 보기엔 인간이 특별하게 보이는 차이다. 그러나 자연의 입장에서는 진화가 가져온 미미한 차이다. 우리 인간은 다른 영장류와 구분하는 1%의 차이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것은 오랜 진화과정에서 자연선택으로 나온 변이의 누적일 뿐이다.     


진화론이 등장하면서 르네상스시기에 정립된 휴머니즘의 ‘인간’은 부정되었다. 인간이 ‘본질’을 가진 존재가 아니며 오랜 세월 진화해왔고 앞으로도 진화해서 바뀐다고 보기 시작했다. 인간의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퇴색한 것이다. 이러한 진화를 통해 인간이 발전하여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인간을 초월한 존재를 논하는 것이 트랜스 휴머니즘이다. 휴머니즘을 통해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중심주의를 극복해 인간과 다른 존재들의 공존을 추구하는 것이 포스트 휴머니즘이다. 우리 인간이 우주와 지구의 한 구성원이라는 사고이다. 그것을 다루는 역사가 빅 히스토리이다. 인간은 무엇인가? 그것은 진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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