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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의 비만 유전자도 바꿀 수 있다

비만은 선천적인 요인과 생활 습관에 의하여 좌우된다. 그러나 출생 전후도 중요한 시기이다. 출생 직전과 직후의 두뇌 발달이 평생의 비만 위험을 결정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이 시기 아이의 뇌 발달이 비만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이다. 비만 체질이 태어나는 시점 전후에 많은 것이 결정될 수 있다. 이러한 요인에는 다양한 것이 있지만 몇 가지를 소개한다.


선천적인 유전은 아니지만 ‘후성유전’이라는 것도 있다. 유전 정보가 부모에게서 자녀에게로 전달되는 것은 아니지만 부모의 겪은 것이 자녀에게 영향을 주는 것을 말한다. 부모와 자식은 이렇게도 가까운 사이이다. 예를 들어본다. 임신한 쥐가 화학물질에 노출되면 수컷 새끼의 고환이 비정상이 되고 정자도 허약할 수 있다. 정자가 달라지면서 자녀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후성유전은 살면서 겪은 경험이 DNA의 ‘기능’에 영향을 주고 이것이 후손에게 전해지는 현상이다. 


후성유전 현상을 좀 더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사례는 일란성 쌍둥이에게서 나타난다. 일란성 쌍둥이는 유전자가 동일하니 당연히 너무 닮는다. 그러나 입양 등의 사유로 다른 환경에서 살게 되면 여러 면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동일한 유전자가 다르게 발현된 것이다. 심지어는 지능지수가 15이상 차이가 나는 경우도 있다. 후성 유전은 인간이 유전자에 의하여 ‘결정’되지 않을 수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물론 비만에도 적용된다. 


일란성 쌍둥이도 나이가 들면서 건강에 차이가 발생한다. 이들은 유전자의 염기서열은 그대로이지만 분자적 차원에서 유전자 발현에 영향을 미치는 후생유전학적 차이가 건강상태를 결정한다. 1주일에 두 시간 반 이상 운동을 하는 사람은 체질량지수와 허리둘레가 감소했고 그러한 수치 감소와 상관관계가 있는 후성유전적 지표도 차이가 났다. 쌍둥이의 질병도 환경적 영향이 크다는 것을 보여 준다.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86-022-05531-1


후성유전 현상을 잘 보여주는 놀랍지만 ‘잔인한’ 실험이 있다. 생쥐에게 달콤한 향기를 맡게 해주면서 동시에 전기충격을 주는 실험이다. 아무리 연구라지만 인간은 참 잔인하다. 실험이 계속되자 생쥐는 달콤한 냄새를 맡기만 하면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꼼짝도 못했다. 그런데 이들이 낳은 새끼도 그 냄새를 맡자마자 어미와 같이 얼어붙었다. 잔인한 실험이지만 후성유전(epigenetic modification)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DNA는 변하지 않지만 새끼도 부모 같이 행동한다니 놀랍다.


후성유전 가장 비극적으로 나타난 것은 20세기 말 최악의 비극 중 하나인 르완다 대학살에서이다. 1994년 르완다에서는 소수 민족인 투치족과 후투족 사람이 100만 명이 넘게 학살되었고, 수십만 명의 여성이 강간당했다. 이로 인하여 생존자의 30~50%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었다. 게다가 당시 임신했던 사람의 자녀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았다. 대학살의 고통이 후손에게 전달된 것이다. 인간의 역사는 강한 집단이 약한 집단을 정복하거나 말살시킨 사건이 수도 없이 발생했다. 지금도 만행은 진행형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에 의한 600만 명 유태인 학살 즉 홀로코스트(Holocaust)가 잘 알려진 악명 높은 사건이다. 그 외에도 유럽인의 아메리카 인디언 학살, 난징대학살, 캄보디아 킬링필드(Killing Fields), 동티모르 학살도 있다. 이로 인한 후성유전에 의하여 고통 받는 후손들이 많을 것이다.


후성유전은 비만과 체중에도 나타나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제2차 세계대전 때 굶주렸던 네덜란드 사람들이다. 1944~1945년 독일 치하의 네덜란드 서부 지역은 극심한 기근이 닥쳤다. 이에 따라 식량 배급은 필요한 양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굶주림에 시달리던 시기 잉태된 아이들은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고 성인이 되어서 비만과 당뇨병에 시달렸다. 이들이 결혼하여 낳은 아이들도 평균보다 작았다. 부모 세대의 기근 경험이 다음 세대에 전달되는 후성 유전이 나타난 것이다. 후성 유전의 사례를 하나 더 들면 아빠의 식습관이 정자에 남아 아이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아빠가 지방이 많은 음식을 좋아하면 정자에 영향을 미쳐 자녀의 당뇨병 위험을 높일 수 있다. 자신의 생활습관이 자녀에게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비만은 한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후대에도 악영향을 미치니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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