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이런 끔찍한 고통은 누구의 책임일까


복합부위통증증후군(Complex Regional Pain Syndrome, CRPS)이라는 병은 끔찍하다. 1872년 미국 남북 전쟁 당시 처음 알려졌고 1994년에 복합부위통증증후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병의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며 외상 때문에 뇌에서 통증을 감지하는 회로가 잘못되어 극심한 통증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추측한다. 마약성 진통제도 듣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다리가 절단되는 통증보다 훨씬 심하다고 한다. 이 병을 앓는 사람들의 고통은 동영상을 보기도 힘들 정도이다. 또한 살짝 스치기만 해도 살이 찢어지는 통증을 느끼는 것을 신경병성 만성통증 환자라고 한다. 뇌의 통증 조절 시스템이 오작동하여 발생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외계인손 증후군(낯선 손 증후군, Alien Hand Syndrome, Anarchic Hand, AHS)이라는 질환이 있는 사람은 손 하나가 자신의 손이 아닌 것처럼 생각한다. 이 ‘외계인’ 손은 정상적인 손에 비해 이상한 행동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수행한다. 한 손이 바지를 입는 동안 다른 이 손은 바지를 벗으려고 한다. 이 증후군에 걸린 어느 여성은 왼손이 자신을 목 조르려 하여 번번이 잠에서 깨어났다.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1964)에서도 그런 장면이 묘사된다. 이 영화에서 피터 샐러스는 한 손으로 자신의 목을 조르려고 하고 다른 한 손은 끊임없이 그것을 저지한다. 이런 증후군은 양쪽 뇌 사이를 연결하는 뇌 량이 손상 받아서 나타날 수 있다. 이 손상 탓에 한쪽 뇌에서 일으킨 활동이 더 이상 다른 쪽 뇌의 조정을 받지 못하고, 이 병에 걸린 환자는 양손 중 한 손의 통제력을 완전히 잃어버린다. 한 마디로 한 손은 자유의지를 상실했다.


감금증후군(locked-in syndrome)을 앓는 사람은 영혼이 육체에 감금되었다고 말한다. 사고능력과 감각은 멀쩡한데 운동신경이 제 기능을 못하여 움직일 수 없고 의사소통도 불가능하다. 감금 증후군은 루게릭병이 대표적이다. 온몸의 근육이 천천히 마비되는 질환으로 스티븐 호킹 박사가 걸린 병이다. 그나마 2017년 뇌 활동을 컴퓨터로 해석해 의사소통할 수 없던 전신 마비 환자들 생각을 해독하는 데 성공했다. 이 실험에 참가한 환자들은 ‘당신은 행복합니까?’라는 질문에 실험참가자 4명 모두 ‘예’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들이 말한 행복은 무엇인지 모르겠다.


소아치매라고도 불리는 니만-피크병(Niemann–Pick disease)은 어린 나이에 학습과 인지능력 저하를 유발하는 질환이다. 2023년 호주에서 10세도 안 된 세 남매가 이 병을 앓는 것으로 보도되었다. 일정 연령까지 정상적으로 성장한 후, 치매 환자처럼 기억력, 신체능력 등이 약화된다. 호주에서는 2~3000명의 환자가 있어 0.009%를 차지한다. 확실한 치료법은 없으며 대부분 성인이 되기 전에 사망한다. 이미 아이들은 글을 읽고 쓰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세 남매의 엄마는 치료법이 없다는 설명을 들은 후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암컷과 수컷에 의한 번식 또는 남자와 여자의 결혼에 의한 자녀출생은 유전자의 다양성으로 종의 번식과 진화를 위한 매커니즘이다. 그래서 유전적으로 먼 암수 또는 남녀가 만날수록 유리하다. 하지만 유전자와 진화는 완전하지 않다. 그래서 각종 유전병이 나타난다. 특히 근친혼은 더 많은 빈도로 문제를 일으킨다. 근친혼을 막는 것은 생물학적인 문제이다.


미국 버지니아 주 산악 마을에 사는 휘태커 가족사는 비극이다. 이들은 100여 년 전부터 근친혼으로 대를 이어왔다. 다수가 유전병에 따른 장애를 앓고 있었다. 동물 소리를 내는 사람도 있고 개처럼 짖기도 한다. 대부분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앓고 있었다. 이들은 근친 성관계로 유전적 문제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과학의 부재가 낳은 비극이었다.


인간의 이기심이 초래한 비극도 있다. ‘순종’ 고양이를 키우려는 인간의 욕망 때문이다. 순종 고양이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근친교배를 시킨 결과이다. 이들은 유전병을 앓을 확률이 훨씬 높다. 해외에서 유전병을 막기 위해 특정 종간의 교배를 금지하거나 동물협회에 등록을 거부하는 규제가 있지만 우리나라는 사실상 없다. 페르시안은 짧고 두툼한 발과 풍성한 털을 자랑하는 고양이다. 예를 들어 페르시안 고양이는 백내장 등이 종종 생긴다.


근친교배가 아니라도 유전병은 나타난다. 그 고통은 생각조차 못할 정도로 심각한 경우가 많다. 누구나 세상에 갑자기 태어난다. 태어나보니 꿈에도 생각지도 않은 유전병으로 평생 너무도 심각한 고통에 산다면 누구의 책임일까. 마음이 무겁다.


매거진의 이전글 저는 생모가 두 분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