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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중세 Sep 05. 2024

Drowning man

Chap. 8 : 면허 획득과 실제 주행은, 다릅니다


  책을 출간한 작가는 얼마나 많을까? 아니면 생각 외로 적을까?


  편차가 있지만 매년 검사로 임용되는 사람은 대략 300명이다. 평검사인 그들 기수 중에, 차관급인 검사장까지 승진하는 사람은 1%인 3명밖에 되지 않는다.

  2023년을 기준으로 신춘문예를 진행한 신문사는 25곳이다. 11월 27일 중부광역신문을 시작으로 12월 18일의 강원일보까지. 그 해에만 25명의 신춘문예 출신 작가가 탄생했다. 거기에 이런저런 문예지를 더하면 30명 안팎이다. 이들 중 첫 책을 내는 수는 얼마나 될까. 두 번째 책을 내는 작가는? 세 번째 책을 낼 정도로 활동을 지속적으로 이어가…… 아니, 정말 평검사가 검사장이 되는 퍼센트 정도일까?


  왜 작가로 살아가는 게 힘든지는 나중에 구체적인 숫자로 말할 것이다. 여기는 아직 그 단계를 말할 수 없는 지점이다. 자, 여길 보자. 등단한 누군가가 있다. 글을 꾸준히 써온 그는, 당연히 책을 내고 싶어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지점의 아득함을 이해 못 한다.

  당연하다. 말해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 단계가 짧았던 사람들은 자신의 행운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기에 말하지 못한다. 이 단계가 길거나 지금도 머물고 있는 사람들은, 이 지점의 아득함을 말해줄 수 없다. 그 일과 그 자신이 너무나 가깝게 붙어 있는 탓이다.

  이건 그 지점을 꽤 길고 지독하게 겪으며 결국 뚫어낸 나만이 얘기할 수 있다.


  자자, 문학상을 타셨습니다. 축하해요. 샴페인 몇 병 따고, 주변에 자랑도 좀 하세요. 상금이 들어왔다구요? 남들 연봉에 비하면 초라하지만, 단번에 들어온 돈치고는 나쁘지 않네요. 빚도 갚고 냉장고를 채우세요. 가족에게도 얼마간 드리구요.

  흥분이 차츰 가라앉고, 당신은 이제 책상에 앉았군요. 수상의 기쁨에 취해 있던 며칠이었겠죠.

  자, 이젠 뭘 하시렵니까, 작가님?     


  책을 내야 할 것이었다. 수상을 기회로 그간 써온 원고를 묶어서 투고하는 게 가장 그럴듯한 계획이었다. 서점을 둘러보며, 이번 당선작인 「그래서 그들은 강으로 갔다」와 비슷한 색깔의 소설이 담긴 단편집을 뒤적이려 했다. 당선작이 표제작이 되어야 할 테니, 그걸 중심으로 라인업이 세워지겠지 싶었다.

  세일즈의 관점에서, 나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내 책의 표지와 앞뒤 날개를 떠올려보았다. 내 이력이 적힌 앞날개를 독자인 나는 읽어본 뒤 구매할까.

  더 많은 이력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신춘문예에 당선되고도 문예지 신인문학상에 당선된 작가는 많았다. 문학동네 신인문학상을 받은 천명관과 백영옥과 이영훈은 문학동네소설상과 세계문학상을 받았다. 중앙일보 신인문학상을 받은 장은진은 문학동네작가상을 받았고, 창비신인소설상을 수상한 최민식은 민음사 오늘의 작가상을, 실천문학신인상으로 등단한 최진영은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고,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김혜진은 중앙장편문학상을 받았다. 신춘문예에 당선되고도 다른 신춘문예에 작품을 내 당선된 김숨 작가도 있었다. 심언수는 2002년 전주신문 가을문예공모에 당선되고 200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2006년엔 문학동네소설상을 받았다.

  그런 사람들이 책을 내겠지. 그런 이력을 지닌 사람들이야말로 원고를 투고해도 비웃음을 사지 않겠지.

  그때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일정 정도 이력은 필요하다. 독자들은 올바른 구매를 원한다. 책을 소비하는 데에는 에너지와 시간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시간과 에너지. 이건 책만이 아니라, 깊이를 지닌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지불해야 할 비용이다. 그 비용을 선별을 통해 줄이고 싶기에, 독자는 책의 구매에 엄격한 기준을 지닌다. 망한 독서를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에 도움이 되는 몇 가지 사안이 존재한다. 작가 자신의 콘텐츠적인 요소와 능력에는 일반 강연이나 유튜버로서의 저자의 영향력이 고려된다. 전통적인 방식인 입소문도 주요하지만, 그걸 만들어내긴 어렵다. 수상이력 등 좋은 글을 쓴다는 제도권의 인정도 독자가 고려하는 중요한 요소이지만, 더 중요한 건 그 작가의 이전 히트작이다.

  당시의 내겐 그 무엇도 없었다.

  내가 세운 전략은 이것이었다.

  가능한 다른 문학상에 도전하면서 이력을 잘 쌓는다.


  다른 공모전을 연이어 수상한 작가들을 보면서, 아직 문이 열려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한편으론 문학상 수상이라는 성과와 별개로 좋은 작품을 더 써야 한다는 다짐을 많이 했다. 써놓으면, 결과가 따라와 주겠지. 그리 생각도 했다. 써온 작품들이 안 좋았으니, 결과도 내 욕심만큼 안 되었지 싶기도 했다. 어쩌면 내가 작품에 쏟은 열심에 비해, 욕심이 지나치게 많았는지도 몰라. 난 더 노력해야 해. 그런 다그침을, 서점을 나서면서 스스로에게 꽤나 했다.


  뜻밖에 열린 다른 문, 희곡을 더 써보자는 생각도 했다.


  첫 공연은 상대적으로 관객이 적은 지방 공연이었던 데다가, 대한민국연극제 본선 진출도 실패했으니, 여러 모로 성이 차지 않았다. 대전 연극인들과 안면을 트고, 다른 작품을 써봐야겠다는 뜨거운 마음이 들었던 게 성과였지만.


  장편소설을 쓰자.


  그즈음 잡아놓은 소재인 압살롬 반란은 한국에서 책으로 펴내기엔 너무나 생소했다. 하지만 한국엔 기독교 전문 출판사들이 많았고, 그중 좋은 원고 알아볼 눈 밝은 편집자가 왜 없으랴 싶었다.

  단편소설을 내려놓은 건 아니었다. 그간 써온 작품이 예닐곱 편은 되었고, 구상 중인 단편도 두어 개 되었다. 그걸 통해서 나 또한 천명관과 최민식과 심언수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처맞기 전까지, 인간은 얼마나 계획을 섬세하게 세워놓는가.


  모르겠다. 정말 그럴까? 지금도 나는 문학계 카르텔이니, 몇몇 학교를 중심으로 하는 라인이니 하는 뒷말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비유를 꺼내볼까. 내가 새로 쓴 뮤지컬을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하려는데, 오디션이 있다고 해보자. 즉흥 연기와 준비한 연기를 다 봤는데, 모든 항목의 점수가 똑같은 두 지원자가 있다고 해보자. 그래, 점수가 정말 같다면, 나는 아는 사람을 뽑겠다. 그게 지연 혈연 학연 때문이 아니다. 둘 다 똑같다면 내가 아는 사람, 평소에 얼마나 열심히 하고 진지하고 연기를 고민하는지 좀 더 아는 사람에게, 기회를 주겠다는 뜻이다. 둘의 점수가 완전히 똑같다면 말이다.


  소설 공모전 심사는 미리 읽어보지 않은 한 어떤 게 누구의 작품인지 알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뮤지컬 오디션을 예로 들었다. 한 사람이 한 해에 몇 권의 책을 읽을 수 있을까. 내가 정말 글만 읽는다면, 1년에 400권이 가능할까 싶다. 볼륨과 함께 깊이를 지닌 책이라면 훨씬 적을 것이다. 문학평론가나 문창과 교수 또한 한 집의 가족 구성원이고, 여타 다른 일로 바쁜 사람들이다. 그들이 얼마나 많은 한국문학을 깊이 있게 읽을까? 본인이 가깝게 여기거나 혹여 속해 있는 출판사가 출간하는 소설만 읽어도 한계치에 다다르지 않을까. 혹시나 그렇기에 그가 알고 있고 여러 모로 가깝다고 여기는 작가의 작품을 우선 읽는 건 아닐까.


  그렇게, 각자는 저마다의 우물이 되는 게 아닐까.


  그런 그들이, 한국문학의 너는 되고 너는 안 된다는 라벨을 붙일 자격이 있을까? 이건 그야말로 엘리트를 위한, 그들을 따를 엘리트를 육성하기 위한 방식 아닐까. 문창과 교수인 작가와, 국문과 교수인 평론가들이, 같은 출판사에 모여 성곽 안으로 들어올 후대를 선택하는 건, 정말 아닐까?


  이런 폐해를 극복하려면, 읽는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 표출이 많아지는 수밖에 없다. 문학 전문가들의 공정성을 불신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리고 지금의 나도, 문학계가 열린 상태로 다양한 지망생들을 널리 품는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들은 저 위에 있다가, 올라오는 작품을 승인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엘리트라는 의식을 감추지 않는다. 그들은 일종의 체제다. 문학은 전복인데. 문학을 하려면 체제 안에 들어가야 한다. 체제 안에 들어가면, 경제적으로 나아질까? 문학하는 사람은 가난하다던데, 그건 그 경계 안에 들어가지 못해서일까.


  이런 질문들의 답을 당시엔 알진 못했다. 답을 알려면 내부에 들어가야 할 것 같았다. 들어가려면, 문지기에게 좋은 작품이라는 ‘인정’을 받아내야만 했다. 그렇기에 난, 더더욱 써 내려가는 매일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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