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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중세 Sep 14. 2024

Drowning man

Chap. 12 : 당신은 좆 됐습니다

  2016년 초겨울이었던 것 같다. 살면서 1년에 하루는 몹시 아픈 날이 있는데, 그날이 그랬다. 작업실에서 끙끙거리다가 이불 뒤집어쓰고 잤는데, 전화가 울렸다.

  감사인사를 하고 겨우 통화를 마쳤는데, 까무룩 잠에 도로 빠졌다. 그리고 깨어나서는 전화를 다시 걸었다. 그리곤 물었다.

  “정말, 『뿌리』를 출판하시겠다고요?”     


  당시 상황은 이랬다.

  9개월짜리 조사와 11개월 간의 집필을 마친 『뿌리』는 그 벅차고 감동스러운 첫 투고에도 불구하고…… 전혀 아무런 반응도 끌어내지 못했다. 당시의 난, 투고를 하면 어느 정도 반응이, 혹은 짧은 거절 메일이라도 있을 줄 알았다. 그런 건 전혀 없었다. 역시나 마찬가지 도돌이표였다. 신춘문예나 신인문학상과 마찬가지로, 나는 내 작품이 왜 떨어졌는지 왜 거절당했는지를 모른 채 다음 걸음을 내딛어야 했다.


  뭘 알아야 대책이라도 세울 텐데.


  첫 투고를 한지 석 달만에 원고를 뽑아 다시 읽어봤다. A4지 336쪽이었고, 200자 원고지로는 2727매였다. 사흘 동안 읽고, 음…… 원고에 물을 부었다. 종이들이 떡지고 글자가 번지게 해 주워간 이가 읽지 못하게 만드는 나만의 방식이었다. 데스크탑에선 파일을 지웠다. 보내놓은 메일함에서도 삭제하고, 휴지통에서도 버렸다.

  나는 『뿌리』를 완전히 버렸다.


  그리고는 한글 새 파일 『뿌리 Ver.2』를 만들고 다시, 첫 페이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렇다, 첫 페이지의 첫 문장이었다.

  두 번째 버전의 『뿌리』를 쓰면서 첫 번째 버전을 파기한 괴로움을 잊으려 했다. 불가능에 가까운 그 바람을 이뤄준 건, 두 번째 버전의 『뿌리』였다. 그리고 기존 원고를 버려야 한다는 충동에 가까운 결정이,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

  당시엔 몰랐다. 그걸 문장 하나하나 고치는 게 아니라, 완전히 다시 쓰는 게 온전한 결정이라는 걸. 늘 하던대로 문장만 고쳤으면, 나쁜 상태 그대로에 머물렀을 것이다. 완전히 다시 쓰는 게 작품을 고치는 가장 빠른 길이란 걸, 나도 몰래 깨달았던 것 같다.

  그 결정을 따르는 게, 쉽진 않았다. 하지만 두 번째 버전을 쓰면서, 내 결정이 옳았다는 게 차차 증명되었다.

  어떤 글은, 이전 버전을 고치는 것보다 완전히 다시 쓰는 게 낫다. 일종의 법칙은 아니다. 작가의 내적 움직임과 글 자체가 지닌 문제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이뤄지는 해결책이다.

  어떤 작품은 문장을 다듬는 걸로 더 나아지기도 한다. 하지만 당시의 『뿌리』에겐 다시 쓰는 방법이 주효했다. 그렇게 두 번째 버전의 『뿌리』를 쓰며 여덟 달을 보냈다.


  그리고는 다시 원고 투고를 시작했다. 흐릿하지만, 대여섯 곳에 보냈던 것 같다.

  가장 큰 기대를 걸었던 곳은 두란노였다. 나는 두란노의 열성적인 독자였고, 그곳이 기독교 서적을 출판하는 방식을 좋아했다. 원고를 보낸지 두 달만에 짧은 이메일이 왔다. 너무 오랫동안 아무 곳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아 낙담하던 중에 받은 거절 메일엔 짧은 문장이 쓰여 있었다. 옥고를 보내주어서 감사합…… 저희 출판사와 방향이…… 다른 좋은 출판사와…….

  그 전에도 이후로도, 그런 적은 처음이었다. 두란노에 전화를 해 메일을 보낸 편집자를 바꿔달라고 했다. 그리고는 두란노의 출판 방향과 대체 어디가 안 맞는 건지, 왜 거절한 건지를 비난하는 조로 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단순히 『뿌리 Ver.2』의 거절 때문이 아니었다. 2009년부터 당시 2016년까지, 지속적으로 거절 받던 내 원고가 어디에 문제를 지녔는지를, 나는 거절한 사람으로부터 듣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그 대답을 잊을 수가 없다.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선생님이 쓴 소설을 읽느니, 성경 한 쪽을 더 읽으려 할 겁니다.”


  끊고나서 나는 내가 저 말을 반드시 틀리게 만들어줄 거라고 작심했다. 저 사람이 저 말을 한 걸 후회하게 만들어주리라.

  지금까지는 그 편집자의 말이 맞았다. 하지만 나는 『뿌리』가 대중으로부터 인정 받진 못했지만, 그 원고가 지닌 가치가 낮다고, 당시에 내가 쏟아부었던 노력이 헛되다고 여기진 않는다.


  우울감에 독감까지 덮쳐 그 즈음 며칠 앓았다. 헌데, 그 와중에 책을 내겠다는 출판사가 있었던 것이다.


  그곳은 가톨릭 출판사였다. 성경의 사건을 소설로 풀어낸 『뿌리』는 일반 출판사에는 투고하기 어려웠다. 기독교 출판사들은 모두 출판을 거절하거나 응답이 없었다. 마지막 기대가 가톨릭 출판사였고, 담당 편집수녀님이 그날 전화를 주셨던 것이다.

  그리고 한 달이 흘렀다.

  대학원 수업을 하러 가는 날이었고, 언덕을 오르는 버스 엔진은 괴로운 신음을 흘리는 중이었다. 그날은 하필 내 단편소설 「코의 무게」를 합평받는 날이었다. 희안하게 『뿌리』의 상황이 너무도 궁금해 편집수녀님께 전화를 걸었다.

  “마침 오늘 전체 회의가 있어서, 거기에서 결정될 거예요. 그런데 사장님이 원고를 읽으셨는데, 너무 좋다고 그러시네요.”

  수업은 엉망이었다. 나는 혹평을 받았는데, 「코의 무게」가 역사인식이 엉망인 그릇된 소설이라는 평을 받았다. 정말 그 소설을 읽은 건지 의심스러운 평이었다. 나는 일자무식한 일본인 아시가루 나오야를 주인공 삼아 전쟁이라는 행위의 어리석음과 지배 논리로 이용되는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그런데 주인공이 침략자인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역사인식이 그릇되었다니, 너무도 어처구니 없는 소리였다.


  몹시 우울해서 서울역으로 돌아가는데, 전화가 왔다. 수녀님의 목소리는 몹시 나빴다.

  “내가 30년을 여기에서 일했는데, 담당 편집자가 오케이하고, 사장님까지 오케이한 원고가 전체 회의에서 부결된 건 처음이에요.”

  반대자들은 『뿌리』로 다윗이라는 성경 인물의 A라는 면이 부각되면, 밸런스를 잡기 위해 B나 C의 측면이 부각된 작품도 내놓아야 할 거라는 논리를 들었다고 한다. 나는 다윗이라는 인물의 복합적인 면을 생생하게 다뤄냈다고 여겼는데, 그건 또 무슨 말인가 싶었다. 너무나 애통해져서 전화기를 붙들고 애걸했다.

  “수녀님. 저 이거 출판해야 하는데.”

  “알아요. 다른 좋은 기회가 있을…….”

  “제가 제 원고를 방어할 수 없잖아요. 수녀님이 해주셔야 하잖아요. 진짜 오래 고대했는데. 이렇게 끝나면, 너무 억울해서.”


  결정을 뒤바꿀 순 없었다. 「코의 무게」로 대학원 동기인 작가들을 설득하고 싶었다. 역사 인식이 엉망인 작가라며 공격을 당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뿌리』가 온전한 과정을 거쳐 출판될 줄로만 알았다. 가톨릭 출판사 역사상 최초로, 담당 편집자와 사장이 결정한 사항이, 전체 회의에서 부결될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컴컴한 서울역 계단에 머리를 처박고 1시간 동안 쪼그려 앉아 있었다.     


  『삼키는 칼』에 대해 강의할 때마다 가져가는 자료들이 있다.

  우선은 인물 카드다. 이건 제임스 스콧 벨의 여러 작법서를 통해 배우고 내 방식대로 발전시킨 방안이다. 인물의 키와 체중과 첫인상과 그의 (가장 중요한) 욕망에 대해 기입한 카드다. 나와의 가상 인터뷰로 대담을 넣어주기도 한다. 심층 인터뷰를 허락해준 인물은 다윗과 압살롬과 아히도벨이었는데, 나는 『삼키는 칼』에서 가장 복잡하고, 성경에서도 그 의도를 헤아리기 어려운 인물인 아히도벨의 의도와 속내를, 인터뷰를 통해 짐작하고 작품에 투영시킬 수 있었다.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한 구글링 결과이다. 그걸로 다윗의 얼굴 후보를 다섯 명, 밧세바는 세 명, 요압은 두 명을 세웠다. 그들 모두 구글을 통해 얻은 얼굴이었고, 써놓은 인물과 합치되는 것 같은 인물의 사진을 옆에 인쇄해두고 작품 내에 묘사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스라엘 배우나, 유대교 랍비의 얼굴을 그대로 가져온 건 아니다. 큰 틀을 가져오고, 거기에서 세부는 작품 내에서 간혹 덧붙이는 걸로 묘사를 해냈다. 묘사 실력이 형편없-잘 못 한다기보다는, 너무 장황해서 문제였던-던 나는, 그런 방식의 글쓰기를, 글쓰기를 통해 배웠다.     


  너무 우울한 이야기만 잔뜩 늘어놓아서 다른 얘기를 잠시 꺼내어보았다.     


  버리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그걸 버리는 건, 말이 안 되었다. 내가 낳은 자식은 내 눈에 다 이쁘다던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법이다. 최대한의 객관성을 지니고, 『뿌리』를 다시 읽었다. 너무 길었지만, 책이 안 될 정도는 아니었다. 당시의 나는, 그리고 지금의 나 또한 『뿌리』라는 글에 큰 자부심을 지니고 있다. 단지 이전 한국 소설에 없던 글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뿌리』는 강한 힘으로 쓰인 선 굵은 탁월한 소설이다. 지나친 겸양은 오만의 다른 얼굴이다. 나는 『뿌리』라는 작품에 자부심을 지녔다. 이걸 버리는 건, 어리석은 일이었다.


  다시 투고했다. 한편으론 마지막 투고라고 생각했다. 더 이상 마음을 다치는 일을 겪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청지기(가칭)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지금까지 여러 권의 책을 낸 경험으로 돌이켜보면, 청지기 출판사와의 첫 미팅부터 뭔가 잘못되었다. 뭐랄까, 상호간에 좀 야물지 못했달까.

  계약서를 쓰고, 원고가 오고갈 때도 이게 맞나 싶은 적이 많았다. 원고를 들여다보는 과정이 너무 헐거웠다. 청지기에서 가장 고민한 건 책 제목이었다. 『뿌리』가 약하다고 판단했는지 자체 회의를 열어 『삼키는 칼』이라는 제목이 어떠냐고 물었다. 칼이 사람을 삼키우늬라라는 대목에서 따온 제목이었다. 나는 두말 없이 좋다고 했다.

  홍보나 광고는 아예 없었고, 서울이든 지역이든 서점에 매대를 구입한 것 같지도 않았다. 서점에 진열된 책들은 출판사에게 매대가 판매된 책이라는 걸, 난 그즈음에야 알았다. 자주 가던 대전 계룡문고에서 『삼키는 칼』을 찾았을 때, 직원이 커튼으로 가려진 매대 아랫단에서 책을 꺼내주던 게 기억난다.

  “제가 대전에 사는데, 그래도 계룡문고에 20년 넘게 다니는데, 책 좀 매대로 올려주실 수 없나요.”

  거절 받고 계단에 오르다가 숨이 막혀 잠깐 앉아 있었는데, 하늘은 어찌나 파랗던지.


  첫 대면에서 대표님은 물었었다.

  “아는 분이 많이 계신가요? 책 나오면 사주실 수 있는.”

  아뇨, 틀어박혀 글만 쓰느라, 공연 관계자 몇몇 빼고는 아는 사람이 아예 없다시피 합니다라고 말할 순 없었다.

  “공연하는 배우들이나 연극 관계자들도 있고, 저희 교회에도 좀…….”

  내가 그리 말했다고, 수천 명의 구매자가 책 나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는 거라고 믿진 않으셨을 거다.

  거짓말을 한 건 아니었다. 나는 선의의 구매자, 맘씨 좋은 구독자들이 세상에 존재할 거라고, 그들이 탁월한 책을 알아볼 거라고 정녕 믿었다.

  내가 어리석었다.


  출간한지 다섯 달 정도 지나, 추석 무렵에 청지기 대표님께 전화를 드렸다.

  “대표님, 접니다. 잘 지내시죠?”

  “어휴, 어떻게 잘 지내요. 작가님 때문에 책이 창고에 그득그득 쌓였는데.”

  작가님, 때문에.


  1쇄가 다 팔리고 2쇄가 들어가야 인세를 받을 수 있는 계약이었고, 그나마도 10%가 안 되었다. 계약금은 없었다. 그 조건에도 불구하고, 책이 나오면 충분히 보상받을 거라고, 순진하게도 난 그리 생각을 했었다. 『삼키는 칼』이 몇 권 팔렸는지조차 난 모른다. 정산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삼키는 칼』을 통해 10원조차 벌지 못했다.


  하지만 계약이란 건, 상호 위험을 함께 나누고 이익도 함께 거두는 법이다. 책을 만드는 일은 투자를 바탕으로 한다. 그건 청지기의 투자 실패였고, 사업의 실패를 내 탓으로 돌렸기에 너무 황당하고 마음 아팠다.

  지금은 그 계약을 후회하지만, 당시엔 『뿌리』가 내 영혼을 아래로 잡아당기고 있는 지독한 납덩어리처럼 여겨졌다. 나는 호흡이 힘들었고, 반짝이는 수면 위로 나아가고 싶었다. 그랬기에, 내 소중한 『뿌리』를 저 컴컴한 바다 밑으로 내던지게 되었다.


  몇 권의 책을 낸 뒤인 2023년 초봄에, 난 아주 오랜만에 청지기에 메일을 보냈다. 얼마나 나갔는지, 지금 어찌 된 상황인지 2017년 발간 이후 한 번도 정산내역을 전달받은 적이 없어 궁금합니다. 메일이 오가던 중 나는 『삼키는 칼』의 상호 계약 파기를 고려할 수 있냐고 물었다. 청지기 대표는 창고에 잠겨 있는 삼키는 칼 1권과 2권 모두를 내가 구매하면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날 무척 많은 술을 마셨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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