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 13 : 나는 왜 좆 되었나
복기할 시간이다.
왜, 『삼키는 칼』은 돌풍은커녕 미풍조차 없었던가. 나는 왜…… 좆 되었던가?
어제인 2024년 8월 1일, 드디어 『밤의 색깔들』이라는 가제로 써왔던 『나쁜 검사들』이 출간되었다. 지난 2024년 7월 내내 그 책에 붙들려 있었다. 2월에 계약을 맺고, 3월에 그걸 다시 쓰기 시작했다. 『밤의 색깔들』은 이미 완고가 되어 있는 상태였지만, 출판사인 마이디어북스에서는 여러 논의를 가지고 왔다.
시점을 바꿔야 하는 거 아닐까요?
등장인물의 이름의 초성이 같습니다. 혼동되니, 바꾸는 게 낫지 않을까요?
제목이 너무 문학적이어서요. 다른 건 없을까요?
여기에서 전개가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여기 이건 맥거핀으로 만드신 건데, 더 감각적으로 사용될 다른 아이디어가 없을까요?
표지 디자인으로 마음에 드는 책을 알려주시면, 참고하겠습니다.
오, 마이 갓. 살려주세요. 저한테 왜 이러세요.
우선은 시점을 바꾸는 데에 동의했다. 『밤의 색깔들』을 쓰는데, 가장 큰 작가적 동기는 시점에 있었다. 10개의 연작소설로 이뤄진 『밤의 색깔들』은 저마다 다른 10명의 ‘나’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과 비슷한 포맷인 셈이다. 하지만 편집자에겐, 사건을 바라보는 인물의 시점이 달라지면서, 작품 전체의 이해가 어려워진다고 여긴 모양이었다.
그건 내게 단순한 요구가 아니었다. ‘나’에서 ‘수현’ 혹은 ‘훈정’으로 바꾸기만 하면 그만인 상황이 아니었다. 주어가 바뀌면서, 달라진 문장의 뉘앙스 전반을 손봐야 했다.
4월 내내 전체 소설을 다 고치자, A4지 분량이 155쪽–난 줄 간격을 170%으로 잡는다-에서 151쪽으로 줄었다. 바꿔보니, 편집자의 말이 옳았다. 3인칭 시점이 소설 읽기를 더 낫게 만들었다.
5월엔 시나리오 작업-다른 챕터에서 얘기할-을 시작했고 그건 6월에나 끝났다. 6월 말이 되자마자 『밤의 색깔들』에 대해 출판사에서 여러 사안을 협의해 왔다. 우선 가장 크게는 책 제목이었다. 한편으로 표지 디자인도 문제였다.
상의한 결과, 제목의 모호함이 표지 디자인에도 문제를 일으킨다는 걸 깨달았다. 『밤의 색깔들』은 각 장(章) 제목이 「붉은 옷을 입은 여인」, 「남색 아반떼에 몸을 숨긴 수사관」, 「갈색 보테가베네타 가방을 든 변호사」, 「검은 하이힐을 신은 검사」 등 색깔을 테마로 쭉 이어졌기 때문에 지어진 제목이었다. 한편으로 『밤의 색깔들』은 멋들어진 단어였다. 하지만 그걸로는 책 전체 내용이 유추되질 않았다.
총 47개의 제목을 따로 지었다. 베스트셀러를 참조하고, 소설 앞뒤를 뒤적이면서 마땅한 단어와 문장을 떠올렸다. 『개들, 짖지 않는』, 『서초구의 칼잽이들』, 『서초구의 개들은, 다른 소리로 짖다』, 『묘수의 무리수』, 『키호테를 향해, 풍차는 달린다』, 『칼잡이들』, 『컬러스』, 『개와 고양이의 시간』 등.
그중 출판사의 찬성을 받은 제안은 하나도 없었다.
편집자는 전혀 다른 제목을 내놓았다. 『나쁜 검사들』.
너무 직접적이지 않나 싶었다. 검사들을 다루긴 하지만, 주인공들의 직접적인 빌런은 검사들 앞에 자리한 깡패들이어서, 이게 전체를 포괄한다 싶지도 않았다. 나쁜 건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딱 들어맞는다는 느낌도 없었다. 고민하던 차에 2차 표지 시안이 나왔고, 그중 몇몇은 괜찮았다. 그 표지 시안들과 ‘나쁜 검사들’이라는 단어가 잘 어우러졌다.
몇몇 지점에서는 편집자가 수긍했다. 김훈정 검사, 김 검사, 훈정, 김훈정 등 다양한 지칭을 획일적으로 바꿨다가, 내가 다시 고친 걸 수용했다. 맥거핀과 몇몇 요소들도 내가 쓴 걸로 가는 게 맞다고 확인해 주었다. 만족스러운 작업이었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나는 왜 좆 되었는가.
이런 부분들이 대부분 생략되었기에, 『삼키는 칼』이 망했던 거다.
미흡한 시장 조사에 대해, 협업에 관해, 마케팅에 연관해 할 말이 없지 않지만, 나는 흉을 보고자 이런 글을 쓰는 게 아니다. 그저 왜 망했는지를 작가인 나의 차원에서 밝혀두고자 이러는 것뿐이다.
다른 지점에 대한 지적도 난 달게 받아들이려 한다.
두 권짜리 소설이라는 점도 판매에 좋지 않게 작용했다. 나는 그렇지 않기에, 사람들이 2권짜리 소설책에 그렇게나 나쁜 반응을 보이는지 잘 몰랐다. 헌데 지금 나이쯤 되니, 나 또한 예전처럼 500쪽에 달하는 두터운 책보다는 좀 더 압축적이고 전개가 빠른 소설을 집어 들게 된다. 세태가 바뀐 거다. 더 빠른 영상물의 전개 속에서, 요즘은 1분짜리 숏폼 드라마까지 소비되는 행태이니 말이다.
하지만 작가의 입장에서, 난 그걸 한 권 분량으로 줄일 순 없었다. 이야기는 그 자체만의 볼륨과 질량을 지니기 마련이다. 작가는 제멋대로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작가는 완성되어 존재하는 이야기를 저 깊은 우물에서 긷던가, 흙 아래에서 빗질하여 조심스레 꺼내 복원하는 사람이다. 여전히 난 『삼키는 칼』의 분량을 반 이상 줄일 수 없다.
『삼키는 칼』이 망한 이유 중 하나는, 출간시기를 앞당겼기 때문이었다. 2017년 초입은 대전예당 스프링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내 아버지의 집>이 공연될 예정이었고, 그 연습이 한창이었다. 공연 관계자와 배우를 통해 책 홍보를 하려 서둘러 달라고 출판사에 부탁했다. 내가 그랬다고 얼른 출간된 건 아니었겠지만, 나중엔 이 부분 때문에 책이 적절한 시기에 나오질 못했다는 볼맨소리를 들었다. 배우들을 통해 홍보했지만, 책 판매에 크게 이바지하진 못했다. 매대와 홍보에 대해선 지난번에 이야기를 했다. 독자에게 다가가질 못 했기에, 『삼키는 칼』은 실패하고 말았다.
쓰다 보니, 생각 나는 에피소드가 있다. 『삼키는 칼』 증정본을 주변에 돌리면서 홍보를 다 하고, 내 돈-작가는 자기 책을 60%의 비용으로 살 수 있다-으로 추가로 책을 20권 샀다. 대전에 알던 목사님들과 나름으로 명망 있는 분들을 직접 찾아갔다. 책에 사인을 하고, 안에 명함을 넣고, 사인 옆에 드리는 분에 맞춰 짧은 편지를 썼다.
어찌 들릴지 모르지만, 『삼키는 칼』을 나는 신앙인의 마음으로 썼다. 나름 순전한 마음으로, 그 집필기간을 견뎠던 것이다. 이런 콘텐츠가 한국 기독교에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런 필요성을 느끼는 분들께 좋게 작용하리라 여겼다. 사람들이 몰라서 그래. 알면 호응해 줄 거야. 난 그리 믿었었다.
난 영향력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 분들께 가서 정성을 다해 말하면 어느 경로에서 트일 거라 여겼다. 내 문은 언제나 닫혀 있지 않았던가. 나는 두드리는 사람이었다. 나는 밤과 낮으로 문장을 두들겼다. 나는 성의를 다해 내 삶의 닫힌 문들을 두드리고 열면서 살아가는 중이었다. 괜찮아, 열릴 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증정본들에 정성을 다해 편지를 썼다.
나를 만나준 목사님은 한 분이었다. 대전 사랑으로(가칭) 교회 김훈성(가명) 목사님이, 교도소 봉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내 설명을 듣고 고맙다며 책을 받아 들었다. 그분이 그걸 읽으셨는진 모르겠다. 그분께 어떤 전화나 문자나 이메일도 오지 않았다.
다른 목사님들은 너무도 바쁘셨는지, 만날 수가 없었다. 대전과 충청에 나름으로 큰 교회들엔 다 찾아가 인사드렸고, 책을 남겼다. 받은 책에 든 명함을 보고 감사 문자를 보내거나 전화를 준 분들은 한 분도 없었다.
오직 한 사람, 서관옥 목사님만이 예외였다.
그분은 예수제자운동(JDM)의 대전지부 대표간사를 맡았던 분이고, 아내의 대학 시절 신앙생활에 큰 도움을 줬던 분이셨다. 인사를 대신해 보내드린 책을 읽은 서관옥 목사님은 장문의 문자를 보내어 책을 읽은 기분과 좋았던 대목을 조목조목 짚어주셨다. 내 글을 읽은 이로부터 그리 상세하고도 따뜻한 평을 받아본 적이 없다. 삶에서, 온통 그림자이기만 한 챕터는 없다. 빛뿐인 삶이 불가능한 것처럼 말이다.
<내 아버지의 집> 공연이 끝나는 것과 맞물려, 『삼키는 칼』의 실패도 분명해져 갔다. 한 해 전, 「붉은 옷을 입은 여인」으로 예스24 e연재 공모전 단편소설 부문을 수상했지만 이북이 한 권 나왔을 뿐, 잔고에도 생활에도 창작 방향에도 아무 변화가 없었다.
비슷한 시기에 더 이상 견디다 못해 「쇼와 12년, 실화」를 모든 문예지에 투고했다. 답이 온 건 소설문학이라는 문예지였다. 여름호에 싣고 싶다고, 원고료는 오십만 원이라고 했다. 처음으로 내 소설이 문예지에 실렸는데, 속이 후련하질 않았다. 자꾸 다운그레이드되는 기분이었다. 후에 문학나무 주간인 안서현 평론가로부터 메일이 왔다. 근래 읽은 소설 중 「쇼와 12년, 실화」가 가장 빼어났다는 평과 함께, 문학나무에 실을 아주 짧은 단편을 청하는 글이었다.
「황금 궁전」을 써서 보내주었다. 칸의 명령으로 미로를 만든 아드마흐가 돌과 마술을 통해 복수하는 이야기였다. 내 인생 두 번째 소설 원고료가 얼마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당시엔 『삼키는 칼』의 실패로 인해 끝없이 어디론가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남들과 똑같은 1 기압이 아닌 나 혼자 심해를 걷는 기분에, 내 모든 주변도 컴컴하게 여겨졌던 2017년 상반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