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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자의 서랍 Aug 22. 2022

시(詩)와의 첫 만남

일곱 번째 이야기:  쉰여섯에 16학번의 대학생이 되었다.


시(詩)와의 첫 만남



내 전공은 '문화콘텐츠'다. 처음 전공을 선택해야 했을 때 별 생각이 없었다. 전공을 살려서 취업을 할 것도 아니었고 다만 늦게나마 공부를 하면서 뿌듯한 만족감을 얻고 싶었다. 하나 더 보태자면 잉여처럼 관리 안 되던 어설픈 나의 시간들을 좀 더 효율적으로 써보고 싶었을 뿐이다. 합격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었고 합격한다 해도 다닐 수 있을 지에 자신이 없었다. 처음에는 국어국문학과를 지원하고 싶었는데 거기는 복수전공이 필수였다. 늦게 시작하는 공부도 엄두가 안 나는데 복수전공까지는 무리일 듯했다. 미련을 버리고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다음 선택한 전공이 '문화콘텐츠'였다.


     

어쩌다 가끔 누군가 무얼 전공하냐고 물었을 때 ‘문화콘텐츠’라고 하면 반드시 ‘그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배우는 거냐?라는 낯설다는 물음이 되돌아다. 참으로 한마디로 대답하기 곤란하고 애매했다. 그래서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에게 ‘국어국문’을 전공한다짓으로 말했다. 그러면 사람들은 쉽게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에게 득(得)도 실(失)도 없는 쓸데없는 거짓말을 습관처럼 하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고 미워했다. 그러나  요약해서 설명하기 어렵다는 핑계로 대수롭지 않게 한 내 말은 엄마의 거짓말과 영락없이 닮았다. 난 이렇게 엄마를 닮고 싶지도, 이런 식으로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한마디로 정리하기 어려웠어도 아는 만큼은 '문화콘텐츠'에 대해 충분히 설명했어야 했다고 반성하고 있다. 지금은 무엇을 전공했는지 묻는 이조차 없어 대답할 기회도 없다.

     


‘국어국문과’ 대표적으로 문학에 대한 지식을 배우고, 다양하고 체계적인 글쓰기 학습과, 창의적이고 지적으로 자신의 표현능력을 키우는 과라고 한다면 ‘문화콘텐츠 학과’는 영상 및 스토리텔링, 기획이나 제작 등 전문 문화콘텐츠 인력을 배출하는 학과라고 보면 된다. 많이 다른 것 같지만 가장 결이 비슷한 학과이기도 하다.

      

3학년이 되면서 나름 학교에 적응도 했고 아이들과도 많이 자연스러워졌다. 이제 다른 과 수업을 들어보기에 무리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미 문화콘텐츠학과에 나이 많은 학생이 있다는 것쯤은 소문이 났으리라. 그래서 처음에 관심을 가졌던 '국문학과'의 수업을 들어보기로 했다.


국문과에는 '현대, 고전문학 개론'을 기본으로 영상 문학론, 현대 시론, 문예 창작론, 실용 문법론 등 여러 수업이 있었다. 그중에 '시 창작'이라는 수업에 마음이 끌렸다. 시를 읽기는 했어도 써본 적 없는 나는 그렇게 국문과의 ‘시 창작’ 수업을 수강하게 되었다. 첫 수업이 있던 날 다른 과의 수업은 처음이라 어색했지만 그동안 쌓아온 내공이 있어 수업은 무리 없이 진행되었다. 얼마간의 이론 수업이 지나가고 첫 과제가 주어졌다. 3편의 시를 써오는 것이다. 그렇게 써온 각자의 시는 스크린에 띄워놓고 합평(合評)을 했다. 누구의 시도 예외가 없었고 비평의 기회도 누구에게나 있었다.  


처음으로 써야 하는 시 쓰기 과제에 나는 당황했다. 막연한 동경만 가지고 있을 때의 시와, 이론을 배운 뒤에 써야 하는 시는 많이 다르고 어려웠다. 게다가 최선을 다해 써온 시에 대해 서로 평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복잡했다. 시도 잘 모르는데 비평이라니.. 나는 다른 사람의 비난이나 비판에 예민해서 작은 말 한마디에도 쉽게 상처받는다. 그래서 내가 쓴 시에 대한 비평도 걱정이 되었고, 나의 비평에 누군가 상처를 받으면 어쩌나 하는 것도 걱정이었다. 서로 칭찬만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일주일 동안 머릿속에는 온통 시 쓰기 과제와 비평을 할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공연히 사서 고생을 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거기다 나잇값을 한다고 인정받을 만큼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은 스트레스를 가져왔다. 읽는 수준과 쓰는 수준의 간극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그냥 나의 지금 상황을 그대로 표현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수업 전 날 자정이 넘어서야 어렵고 어설프게 과제를 끝낼 수 있었다.


그때 쓴 나의 첫 시 쓰기 과제 중 한 편이다.


제목: 과제

시를 써야 해
시를 써야 해
시를 써야 해...

꿈에서 조차 낙지처럼 달라붙는 시(詩)

차라리 힘 한번 끙하고 줘버리는
묵은 변비가 낫다



그렇게 아이들과 함께 시 수업은 계속되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첫 시는 발표하기도 부끄러웠지만 쓰는 것도 합평도 조금씩 익숙해졌다. 아이들은 내 시를 어려워했다. 나도 아이들의 시가 어려웠다. 읽는 수준과 쓰는 수준의 간극이 만큼이나, 아이들과 나의 정서와 감성 사이도 서로 살아온 시간만큼 멀었다. 이번에는 굳이 극복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글에 있어서만은 내 색깔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랐으니까.


세상의 다른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보면 시가 되는 것이다. 찰나의 감정을 놓치지 않고 잡아내는 눈을 가져야 한다. 교수님은 말했다. 시를 쓰는 것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관점을 바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세상의 다른 것이 보이고 우리는 많은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거창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올바른 시선까지는 아니더라도 따뜻한 마음으로 편견 없이 바라보려는 노력은 필요하다. 자신만의 프레임에 갇혀 있으면 시간이 흐르고 세상이 바뀌어도 발전하지 못하고 한자리게 머무르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언제든지 나 자신과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한 이유다.


나의 마지막 과제가 된 시를 소개한다. 배움은 어렵지만 언제나 옳다.


제목:  운명

앞을 보지 못하는 남자가
굵은 핏줄 불거진 깡마른 손으로
산통을 허공에 흔들었었다
사그락 사그락

망설이며 집어 든 한 개의 산가지

나 이렇듯 흔들리는 건
그때 뽑지 못한 산가지  하나
아직 산통 속에서
흔들리고 있는 까닭일까

산통 점치는 눈먼 남자는
또 다른 망설임 앞에서, 오늘도
산통을 허공에 흔들고 있겠지
사그락 사그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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