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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자의 조각보 May 27. 2022

어릴 적 내게 왜 그랬어?

여섯 번째 이야기 :  쉰여섯에 16학번의 대학생이 되었다.

 


오래된 기억과 마주하기


학교에서 ‘가족과 연관된 6.25 전쟁’이라는 주제로 리포트를 내야 하는 과제가 있었다. 형식은 자유로웠다. 나는 1학년 때 배운 '구술사'(口述史)를 활용하기로 했다. '구술사'란 과거에 대한 개인의 기억들을 환기시켜 인터뷰하면서 녹음이나 촬영하는 등의 형식을 통해 개인의 중요한 사건이나 역사를 수집하는 역사연구의 한 방법이다. 이북이 고향으로 1.4 후퇴 때 피난 내려와 ‘실향민’으로 살아온 엄마의 생생한 이야기를 구술사 형식으로 구성해보기로 한 것이다.       


스무 개 정도의 질문을 골라 질문지를 만들어 물으며 엄마의 대답을 녹음했다. 고향부터 형제관계, 피난 과정은 어땠는지, 어떤 환경에서 생활했는지 등, 다양한 질문을 준비했다. 나중에 그것을 반복해 들으며 편집하고 다듬는 과정을 거쳐 대화 형식으로 정리를 했다.


엄마는 고향인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송강리 번지수까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한 번도 막힘없이 대답을 했다. 가끔은 옛날이 떠오르는지 눈을 가늘게 뜨고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 오래 생각하거나 망설이지 않았고 놓치기 쉬운 부분도 디테일하게 묘사했다. 엄마가 열 살 무렵의 이야기였다.


"첨 배를 타구 도착한 곳이 강릉이었어, 바닷가라서 미역이고 톳이고 나가기만 하믄 있었는디, 땔감이랑 물이 문제였지. 피난민들이 몰려들어 여기저기서 불을 피우고 뭐라도 끓여 먹으려니 불 피울게 뭐 있나? 풀뿌리를 캐다가 말려서 불을 땔 정도였으니께.. 그때도 돈만 있으믄 못 살게 읍었는디, 우리는 돈이 어디 있었나? 내가 어려도 뭐라도 보탬이 되야것다 싶어 바닷가 파도에 쓸려 온 미역이며 톳을 주우러 다녔어. 그런디 나 같은 애덜이 한둘인가 어디.. 주울 건 읍구, 바닷가를 그렇게 헤집고 다니다 보면 옷은 바닷물에 젖었다가 마르면서 소금기에 뻣뻣해지구..."




 


엄마에게는, 누구에게  해(害)를 입히지도 않지만  자신에게 득(得)이 되지도 않는 거짓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나쁜 습관이 있다. 사람들이 재미있어하거나, 또는 본인이 주목받고 싶거나. 아니면 자신이 곤란한 상황에 처해있을 때면 의도하지 않아도 거짓말이 나오는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엄마의 말을 다 믿지 않는다. 이렇게 인터뷰 형식으로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여기서 엄마의 진실은 얼마나 될까? 이것만큼은 다 사실일까? 쓸데없는 생각을 잠깐 하기도 했다.  


인터뷰하는 사진과, 내용과 연관 있어 보이는 사진들도 찾아 넣어서 제법 흡족한 과물이 만들어졌다. 그렇게 과제만 끝냈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것이다. 나는 마음속 깊이 품어 온, 아주 오래된 판도라의 상자를 그날, 열어버렸다. 너무 또렷하고 논리 정연한 엄마의 옛날 기억에 자극되어서일까? 정말 충동적이었다. 그리고 모든 후회는 충동을 참지 못하는데서 온다.



그게 뭔 소리라니?




살면서  ‘엄마, 어릴 적 내게 왜 그랬어?’라고 한 번도 묻지 않았다. 오히려 평생 빈곤 속에서 불행하게 살아온 불쌍한 엄마를 어떤 식으로든 보상해 주려고 노력했다.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지난 일이 떠오를 때마다, 지난 일이니까, 이제 지나갔으니까 다 괜찮은 거야, 어른도, 엄마도, 준비 없이 너무 어설프게  시작하는 거니까.. 사는 것도 다 어려웠고 우리 집 상황은 더 그랬으니까. 스스로를 타이르면서 가끔 살아 날뛰는 기억들을 다독거렸다.

      

달라지지 않을 것을 알면서, 이제 와 그것을 들춘다는 것은 우리 두 사람 모두에게 너무 잔인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걸레처럼 해지고 누더기가 되어있을 어린 시절 해묵은 상처도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엄마도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하면서 후회하고 있겠지, 내게 말은 안 하지만 미안해하면서 반성하고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 번쯤은 물어보고 싶은 유혹이 불쑥불쑥 올라오곤 했다.

      

엄마가 혹시 치매라도 걸리면, 왜 저렇게 되기 전에 한 번쯤 물어보지 않았을까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았다. ‘아무리 먹구 살기 어려웠어두 내가 어린 너에게 왜 그랬는지 모르것다. 미안하다’ 혹시 엄마가 이렇게 말하며 반성의 눈물이라도 보인다면 나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까? 상상만으로도 가슴 뻐근해하며 오랜 시간 벼르기만 했었다.   

        

 "엄마, 어릴 적 내게 왜 그랬어? 내가 그렇게도 미웠어?"


조심스럽게 물었다.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려고 따라 놓은 음료수를 한 모금 마셨다. 손도 살짝 떨렸다. 나는 지금도 숨 막히며 가슴 두근대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엄마는 나를 해맑은 얼굴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게 뭔 소리라니? 내가 그랬다구? 얘는~!! 니가 뭐 느이 아부지가 바람이라도 펴서 낳은 딸이라니? 내가 왜 그랫것니~ 응? 기억두 안 나지만 내가 그리 모진 사람두 아니구.. 그리구 내가 너한테만 유독 그랬다믄 다 이유가 있었것지~ 만약 니 말대루 내가 진짜 그랫으믄 니가 잘했는디두 내가 그랬것니? 응? 그럴만했으니께 그랬을꺼 아녀~ 사람은 다아 자기 잘못은 잊어버리는 거니께. 지금 너는 니가 잘못 한 거는 기억 못 할 수도 있는 거여~ 그게 언제 적 일인디... 내가 먹구 살기 힘들어서 고생한 거는 생생하게 다 기억나는디 너한티 그런 건 하나두 생각이 안 난다. 내가 그르케 기억력이 읍는 사람이 아닌디.. 니가 그랬다구 말하니께 내가 그랬는지는 모르것다마는 그런 기억은 하나두 읍다. 이유두 읍시 내가 그랬을 리두 읍구~”






나는 당황스러웠고 현기증이 났다. 그렇게 오랫동안 묻고 싶던  말이었는데.. 듣고 싶던 대답은 아니어서일까? 난 도대체 무얼 기대하고 상상했기에 이렇게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걸까? 짧은 순간이지만 나는 거의 이성을 잃었었다. 엄마 잃은 한 마리 길 고양이 새끼처럼 눈치 보며, 쫓겨나 골목을 헤매고, 굶고, 악담을 듣고, 학교도 다니지 못하며 살아온 어린 시절을 몽땅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분명한 건 나는 학대의 상처를 받은 피해자고 지금까지 그 아픔을 고스란히 견디고 살아왔다는 사실이다. 누구 앞에서나 어떤 상황에서도 나는 항상 열등했었다. 그건 마치 나보다 낮은 계급은 존재하지 않고, 바꿀 수도 없는 하층민의 신분으로 산 것과 비슷하다. 언제나  참고, 포기하고, 자신감 없고, 주눅 들었었다.


엄마는 자책이나 타인의 비난을 피해야 하는 상황에서  유리한 것은 남기고 불리한 것은 지우게 된다는 '선택적 기억 상실증'에라도 걸린 걸까? 늙고 병들고 가진 것이 없으니 남은 생존을 위해 기억을 왜곡시키는 걸까? 이제 와서 기억이 안 난다는 한마디가 지난날 학대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지금까지 열등의 늪에서 완전히 헤어나지 못한 것도 내 잘못인가? 허탈함과 배신감이 몰려왔다. 며칠 동안 정체를 알 수 없는 지독한 불면에 시달렸다.

     

“느이 언니가 나는 기억두 안 나는 오십 년 두 더 된 일을 가지구 지랄하는 것 좀 봐라. 나는 기억이 하나두 안 나지만 느이 언니 말대루라믄 내가 괜히 그랫것냐? 어떻게 지가 한 생각은 하나두 못하구.. 저는 잘했는디 내가 저를 구박했다구 아직까지 그 생각만 하구 있다니~ 너두 알지? 니 언니가 게으르구 못생긴거,, 얼마나 속이 터지믄 내가 그랫것냐~ 원래 사람은 지 잘못을 고대로 말하믄 듣기 싫어하는겨. 설사 그랬다해두 그걸 이제 와서 어쩌것다구 그 지랄을 한다니... 내가 너무 오래 살어서 이런 꼴두 보는가 부다. 느이 아부지처럼 적당한 때 죽었어야 했는디...”

     

그날 밤이 늦도록 엄마는, 동생에게 이렇게 신세한탄을 하며 눈물까지 찔금거리더란다.


그렇게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낸 리포트는 A+을 받았다. 이게 보상이라면 이번엔 너무 인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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