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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자의 서랍 Mar 06. 2022

"뭐 보믄 뭐 봤다구 한다더니.."

엄마의 거짓말 

 



 나는 엄마 나이를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말도 안 되는 것 같지만 사실이다. 일단 주민등록표의 태어난 연도는 40년이다. 그러니까 용띠에 지금 우리나라 나이로 여든두 살이다. 엄마는 항상 호적 나이가 잘못된 것이라 말한다.  고향이 이북이라 1. 4 후퇴 때 남쪽으로 피난을 왔고, 그 후 전쟁의 난리 통에 임시 호적을 만들면서 착오가 생겨 나이가 잘못 기재된 것이라 했다. 그럴 수 있다. 나는 지금도 그렇게 믿고 싶다.


  그런데 이사 가는 곳마다, 또는 알고 지내는 사람들마다 나이를 다르게 말하는 것을 듣는다. 어떤 이에게는 돼지띠라고 했다가 또 어떤 자리에서는 닭띠라고 말하기도 한다. 가장 최근에는 동생이 엄마가 개띠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한다. 누구도 별 관심 없는 나이에 왜 집착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올봄에 엄마는 몇 년 전부터 진행해 온 파킨슨과 호흡기 질환, 치매 초기 증세로 낮은 요양등급을 받았다. 남들에게 크게 드러나지 않지만, 날짜 개념이 떨어지고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병원도 처음 온 곳인 듯 말한다. 계절이나 날씨에 맞지 않게 옷을 입는 일이 늘어나고, 가끔은 누가 다녀갔다고 하거나, 베란다를 가리키며 저기 서 있는 사람이 누구냐고 묻기도 한다. 그러니 최근에 나이를 잘못 말한다면 그럴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엄마 거짓말의 역사는 길고도 다양하다.

      

  고향도 여러 곳이다. 사리원이라고 했다가 연안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가족관계 증명서에 적혀있는 엄마 본적은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으로 되어있다. 

    


  엄마가 유독 혼자 갈 수 있다고 고집을 부리는 병원이 있었다. 그곳에 가는 날이면 함께 가자고 할까 봐 몰래  다녀오곤 했다.  함께 간 어느 날이었다.

    

“어머, 보호자 되시나 봐요~ 할머니께서 자녀분들이 멀리 살아서 힘들어도 혼자 오신다고 하시더니.. 오늘은 따님이 함께 오셔서 할머니 좋으시겠네~”   

  

  의사도 간호사도 친절하고 자상한 병원이었다. 엄마가 방문할 때마다 간호사가 약국에서 약도 가져다주고 택시도 잡아 태워드렸다고 한다. 병원에서는 멀리사는 자식들 번거롭게 하기 싫어 불편해도 혼자 오는 대단히 독립적이고 경우 바른 할머니로 알고 있었다. 엄마와 같은 백석동에 살고 있는 나는 졸지에 서울에 사는 큰 딸이 되어버렸다.   

  





  언젠가, 남편이 일찍 죽어서 우리 삼 남매를 엄마 혼자 안 해 본일 없이 고생해서 키웠다고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난 적도 있다. 

     

“나 한티 느이 아부지는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었으니께~ 남들처럼 호강 한 번 시켜주기를 했나~ 느이 아부지가 잘 한 게 뭐 있다니?  그런 느이 아부지 죽었다구 말한 게 뭔 잘못이라구~ 차라리 진짜 죽었으믄 동정이라두 받았것지~ 그리구 산 사람 죽었다구 하믄 오래 산단다.”   

  

  어이없게도 또 한 번은 엄마가 암에 걸렸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좀 어떠시냐는 걱정을 듣기도 했다.  

    

“암은 또 무슨~ 그런 소리는 어디서 들었다니~ 그 뭐냐, 그 사람이 요즘 내 얼굴이 수척해 보인다구 하길래 나이 먹으니 여기저기 안 아픈데가 없다구 말한 걸 가지구 소문이 그렇게 났구먼~ 뭐 보믄 뭐 봤다구 한다더니 ~”    


  엄마는 해맑고 태연한 얼굴로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나는 이런 엄마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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