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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자의 조각보 Apr 06. 2022

내 팔자는 왜 이런지 모르것어!

일상의 잔소리





구들을 깔고 연탄을 때서 난방을 하는 방에는 아랫목과 윗목이 있다. 아궁이와 가까운 아랫목은 장판이 까맣게 탈 정도로 뜨겁지만 아궁이에서 먼 윗목은 난방이 된다고 볼 수 없을 만큼 냉골인 경우가 많다. 겨울이면 아랫목에는 항상 이불이 깔려있었다. 데워진 방을 쉬이 식지 않게 하려는 용도였다. 


밖에서 들어오면 누구든 깔려있는 이불속으로 손과 발부터 들이밀었다. 그러면 이불속 따끈한 온돌에서 금방 온기가 전해져 왔다. 늦게까지 안 들어온 식구가 있으면 그 몫의 밥을 뚜껑이 있는 밥그릇에 퍼서 그곳에 묻어 놓기도 했다. 


누군가 급하게 손이나 발을 집어넣다가 밥그릇을 건드리면 뚜껑이 열리면서 밥이 그릇과 분리되는 상황도 종종 생기곤 했다. 몇 번 그런 일이 되풀이되자 나중에는 요령이 생겨 손수건에 밥그릇을 싸서 묻어두었다. 그러면 밥그릇이 이불속에서 굴러도 밥만 맨바닥에 구르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경자 쟤는 누굴 닮아서 손발이 얼음장 같은지, 난 아주 쟤 몸이 닿을 때마다 깜짝깜짝 놀랜다니께~ 저것두 내가 저 싫어하는 건 알아가지구 잠결에두  나하구 닿으믄 얼른 몸을 돌리더라구~ ”  

   

아랫목은 항상 엄마 자리다. 그리고 엄마는 늘 누워있다. 아랫목 한쪽 벽에는 부엌과 통하는 작은 문이 있다. 엄마는 그 문을 열지도 않은 채로 부엌에 있는 내게 말한다. 

     

“경자야~ 밥 끓어오르냐? 그럼 솥뚜껑 닫고 곤로 불 좀 줄여라. 또 확 줄여서 어제처럼 끄름 올라오게 하지 말고, 으응~ 끄름 한 번 올라오면 그거 닦기가 얼마나 어려운 줄 안다니? 한두 번 하는 것두 아니믄서 매번 할 때마다 입 아프게 하지 말란 말여~ 뭐 하나 시키믄 지대루 하는 게 있어야지~ 차라리 내가 하구 말지~ 한 번을 야무지게 못한다니... 참~ ”  

  




엄마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같았다. 별일 없이 잘 있다가도 거슬리는 것이 생기면 폭발을 했다. 우리 집은 양은으로 만든 밥솥에 밥을 했다. 밥을 푸다가 화가 나면 밥을 푸던 밥주걱으로 밥솥을 탁탁 치면서 잔소리를 시작했다.  

    

 내 팔자는 왜 이런지 모르것어. 뭔 죄를 타구 났길래 사는 게 이 모양인지 모르것다구~ 경자 쟤는 뭐 좀 하나 시키믄 꼭 내 손이 한 번 더 가게 하는 희한한 재주를 타구 났다니께. 골탕 먹이려구 작정을 해두 그렇게는 못할 거여, 어제 설거지 좀 하라구 시켰더니 여기 냄비 좀 봐. 된장찌개 묻은 게 그냥 있잖어. 그럴라믄 설거지를 뭣 하러 한다니?  앓느니 죽는다구, 저런 걸 시키는 내가 죽일 년이지, 죽일년이여~ 으이구~ 내가 얼른 죽어야지....” 

    

밥솥에는 엄마가 화를 못 참고 주걱으로 내리쳐서 움푹 파인 자리가 여러 군데 있었다. 그릇이 깨질 듯 난폭하게 다루는 ‘뎅그렁뎅그렁’ 거리는 소리와 함께 길고 긴 잔소리가 때 없이 이어지기 다반사였다. 


그렇게 엄마가 차려준 밥상에서 우리는 침묵하며 밥을 먹었다. 한마디라도 해서 엄마 심기를 건드리는 날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두가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저 엄마가 빨리 제풀에 잠잠해지기를 바랄 뿐이었다. 

    





“이것 좀 봐라, 응? 내가 이 말을 아마 백 번두 더 했을거여~ 여기 말여, 이 밥통을 딲았으믄 응? 어차피 한 번 제자리에 놓는거 아녀? 그럼 여기 놓을 때 밥통 그림이 앞에서 딱 보이게 이리 놓으믄 얼마나 좋다니? 같은 값이믄 다홍치마라구~ 그걸 똑 한 번을 제대루 놓는 법이 읍다니께, 일부러 해두 매번 그리는 못할거여~ 으응? 내가 말하믄 뉘 집 개가 짖나? 귓등으루 듣지만 말구, 응? ” 

    

부엌에는 책꽂이처럼 문은 달리지 않았으나 선반이 있는 찬장이 있었다. 그곳에 냄비나 밥통 등을 얹어 놓고 사용했다. 그것은 부엌문을 열면 빤히 보이는 곳에 있었다. 노란색의 양은 냄비와 밥통에는 목단인지 장미인지 알 수 없는 꽃그림이 찍혀 있었는데, 설거지 후에 그 꽃그림을 앞에서 안 보이게 돌려놓았다는 것이다. 잔소리는 몇 번이나 이렇게 저렇게 밥통을 들었다 놨다 시범을 보인다면서 거칠게 우당탕 거리는 소리를 내며 계속되었다.   

  

잔소리 주제는 항상 자기 연민과 신세타령, 자기혐오와 팔자 한탄을 넘나들었다. 한 번 입을 열면 용건만 간단히 하고 끝내는 법이 없었고, 항상 구체적이고 집요하고 길었다. 그렇게 매일 되풀이되는 일상인데도 익숙해지지 않고, 불안하고 초조하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잔소리 폭탄이 왜 터지는지는 모르지만 대부분 내가 죽으면 빚이라도 내서 잔치하겠다는 말로 끝이 났다.  

    

“그짓말이 아니라 경자 쟤 죽으믄 내가 진짜 잔치할 거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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