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 비가 내리면 벌어지는 개인적인 사건들에 대해
밤에 찾아오는 소나기는 무척이나 반갑다. 특히 잠을 설치게 되는 습하고 더운 여름밤이면 더욱 그렇다. 에어컨이라는 문명의 이기는 온도와 습도는 해결해주지만 이미 숫자를 세다가 달아난 양을 붙잡아와 주지는 않는다.
토독토독. 투두두둑.
기대치 못한 손님의 기분 좋은 노크 소리에 입가에 미소가 흐른다. 이를 배경음악 삼아서 그대로 잠을 청해도 좋다. 하지만 마음은 왠지 잠에서, 그리고 밤에서 깨어난다. 불쾌한 불면증이 여름이 선물하는 자장가, 혹은 나만을 위한 방구석 콘서트로 바뀌는 순간이다. 자발적으로, 기쁜 마음으로 잠을 놓아준다. 그렇게 비를 듣고, 음악을 듣는다. 눈을 말똥히 뜨거나 편안하게 감아도, 보기에 약간은 이상하지만 반쯤 게슴츠레 떠도 좋다. 어차피 관객은 나 혼자니까. 그렇게 기억과 추억과 그리움이 내린다.
기왕 잠을 돌려보낸 김에, 작은 스탠드를 켠다. 조명의 어둡지만 따뜻한 빛은 방을 포근하게 감싼다. 또 그 공간의 크기만큼, 그리고 내 마음만큼만 채워내는 은은한 음악. 그 볼륨은 빗소리를 덮지도, 잠에 든 이웃을 방해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파티의 잔잔한 즐거움을 망치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그리움.
밤중에 난데없이 드라마 16회쯤의 오열하는 주인공이 되고 싶은 게 아니라면 과하지 않는 게 좋겠다. 하지만 마음에 그리는 대상의 정해진 각본이란 없다. 어느 날 멍하니 보았던 소나기, 어린 시절 빗물이 흘러내리던 차창, 바다에 내리던 비, 음악, 강아지, 연인 혹은 인연 무엇이든 좋다. 그리움에도 빗물처럼 즐거움이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비를 통해 배운다.
그리움을 따라가다 보니, 나는 항상 비를 좋아하는 편이었다. 어린 시절 노란 비옷을 입고 엄마 손을 잡고 뛰놀던 물웅덩이가 좋았다. 그래서인지 나에게 비는 한여름 워터파크 혹은 흠뻑쇼의 즐거움과 약간은 유사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물론 젖은 양말과 매번 바보처럼 잃어버리는 우산은 불쾌하지만. 그 선선함과 깨어나는 감각, 흙냄새를 사랑했다. 그래서인지 종종 나는 누구도 몰래 비를 대차게 맞으며 달리곤 했다. 우산 혹은 모자를 쓰고 걸으며 짙은 색으로 물든 자연과 건물을 구경했다. 굵은 빗방울이 내리면 손바닥으로 그 리듬감과 무게감을 가늠하곤 했다. 발목 부상으로 침대 신세를 지는 바람에 그 어느 것도 즐기지 못한 6월이지만 비는 나를 까먹지 않고 초대해주었다.
초대받은 사람이 다음 참여할 이들을 선정하는 마음 따뜻한 초대 릴레이. 나는 여느 챌린지처럼 세 손님을 초대했다. 빛, 음악, 그리고 추억. 비의 예상치 못한 초청으로 나는 기쁜 마음을 안고 그들과 자리한다. 세 손님과 기다림으로 가득 찬 내 방. 밤에 고여 빗물이 찰박이는 마음. 장화로 첨벙이던 그날처럼 나는 충만히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