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놓음과 내어주기로써의 사랑
너는 나에게 사랑이 무엇이냐 물었다. 누가 그 달콤 쌉싸름하고도 인생과 역사를 관통하는 질문에 온전한 정답을 말할 수 있을까. 수많은 시인과 철학가와 문인들이, 혹은 심리학자, 생물학자, 그리고 뇌과학자가 저마다의 답을 던져왔다. 그 모든 말과 마음을 아우를 수 있을까. 그럴 자신은 차마 없었지만 부분 점수를 기대하는 주관식 문제를 풀어나갈 때처럼 나는 여러 답을 샅샅이 뒤지고 대조했다. 내 긴 듯 짧은 듯한 인생의 경험과 여러 간접 경험이 빚어내는 근사치의 답.
그렇게 찾아낸 하나의 답변은 '나의 행복보다 더 큰 너의 행복을 바라는 것'이었다. A+짜리 인상 깊은 답안은 아닐 수도 있겠으나, 내 나름의 솔직하고 담백한 답지. 그 사랑의 형태가 플라토닉하든, 에로스이건, 또는 아가페든 적용이 되지 않겠는가. 약간 더 보완할 여지는 있겠지만, 앞으로도 나의 답안지의 주된 논지가 될 것은 나름 분명해 보인다.
물론 사람의 이타적인 마음이 본디 사회적 동물의 이기적 생존 논리 위에서 디자인되었다는 점에서, 너의 '행복을 위한 소망'은 종종 교묘한 기만으로 이어진다. 너의 행복을 위해... 이게 다 너를 위한... 등등. 사람의 눈과 귀는 놀랍도록 정교해서 그런 말과 행동들이 화자 본인을 위한 것이라는 걸 순식간에 알아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사랑의 모습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그 온전히 '주는 마음'까지의 과정이 선사하는 어려움은 차치하더라도, 이는 충분히 추구해 봄직한 가치이자 비전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니, 믿는다. 그 길에서 나타나는 작은 이기심과 불안을 이겨내는 것은 우리가 응당 지불할 대가이자 당연히 겪어야 할 단계가 아닐까. 왜냐면 우리는 모두 한때 아이였을 뿐만 아니라, 동물적인 본능과 마음도 함께 가지고 있기에 이를 오히려 인지하고 인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무엇을 해볼 수 있을까. 너의 행복을 위해 나를 내려놓기. 작은 나를 내려놓고 너그러운 나로 성장하기. 사사로운 욕망, 불안, 상처, 그리고 의심을, 때로는 시간과 에너지와 젊음을 놓기. 또 이러한 크고 작은 내려놓음을 근거로 너에게 대뜸 청구서를 들이 밀지 않기. 나의 '희생'에 대해 당신을 탓하고 미워하지 않기.
어쩌면 나의 모든 것을 건네기. 다만 누군가에 대한 희생의 이름이 아니라, 내 앞에 놓인, 어쩌면 나를 찾아온 이 삶의 모양에 나를 내어주고 몸을 던지기. 다가올 눈에 선한 아픔에도 눈을 질끈 감지 않기. 뜬 눈으로 나에게 다가오는 모든 것들을 맞이하고 온전히 경험하기. 그렇게 몸을 던져 눈을 뜬 채로 비행하기. 비행 중에 스치는 바람을 어루만지고 상호작용하기. 하늘을 물들이는 석양에 말을 잃고 바라보기.
너의 확실한 행복을 만들어내는 답지를 달달 외우기. 여러 공식들을 맘껏 조합해 신메뉴를 만들어 선보이기. 계산기는 창문 밖으로 힘껏 내던져버리기. 눈 맞추고, 안아주고, 그리고 가끔은 눈물을 닦아주기. 대화로 밤을 채우기. 눈 맞춤과 대화로도 가장 즐거운 하루 만들기. 이런 것들은 어떨까.
사랑이라는 두 글자가 담기엔 우리의 감정은 다양한 하늘빛처럼 너무나도 넓은 스펙트럼을 갖는다. 또 일생 동안 미처 다 익히기도 시간이 모자랄 만큼의 수많은 행동 양식과 언어들. 1,628 페이지에 달하는 부록들. 삶이라는 한 글자에 담지 못하는 것이 부정할 수 없이 당연한 우리 삶의 모습처럼, 두 글자에 도저히 담아내기 어려운 코끼리 같은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