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집이 되는 그 두 글자
르누아르의 작품에 그려진 여인과 아이를 보며 생각했다. 아가를 보는 엄마의 마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을 것이라고. 비교할 데 없이 사랑스럽고 소중한 생명. 그 존재에 벅차오르는 봄처럼 따스한 마음. 넘실대는 온기는 넘쳐흘러 눈빛으로 전해진다. 꽃을 피우는 따뜻한 4월의 봄바람을 누구도 막을 수 없듯이.
사랑과 온정이 가득한 눈빛은 아기를 미소 짓고 강인하게 만든다. 자꾸만 넘어지고 실패하는 걸음마를 그 믿음 없이 어떻게 해낼 수 있을까? 다시 일어서기와 칭찬의 과정은 특히 인생의 초기에 풍부하게 반복된다. 진정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침 흘리기와 우는 것 밖에 없는 살덩어리가 무언가라도 결국 익혀내는 방식이다. 수만 가지 실패를 예약해둔 이 연약한 생명에게 어쩌면 믿음의 눈빛과 미소는 그 어떤 훈계와 체벌보다 강력한 담금질일 것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아는 모든 사람은 어머니가 그들에게 첫 세상이었다. 그들이 처음 딛는 땅이자, 등을 기댄 나무이고, 고개 들어 바라본 하늘이며, 숨 쉬는 공기이자, 헤엄치고 생명을 얻는 강이었다. 적어도 삶의 첫 10개월은 분명하다. 또 인생에서 나 자신보다 먼저 사랑한 타인이자, 말과 삶을 배우는 전지한 선생님이며, 절대 쓰러지지 않는 전능한 수호자이고, 그들이 느낀 사랑의 첫 증거였다.
그 넓디넓은 마음이라는 들판 위에 부드러운 봄바람을 맞으며 뛰어노는 연약한 생명. 아이는 미지에 대한 두려움을 서서히 확신으로 바꿔나간다. 어머니의 미소와 음성은 부드럽지만 강한 바람. 해안선에 선 아이는 세상 밖의 세상으로 얼기설기 엮어낸 사각 돛을 펼친다. 바람이 숭숭 통하는 어설픈 돛이지만 따스한 춘풍은 돛의 생김새를 질책하지 않는다.
그렇게 연습을 시작한 항해. 처음 보는 파도에 당혹스럽게도 뽀얀 얼굴을 맞아도, 다시 눈을 비비고 고개를 들 수 있는 것은 내가 출발한 해변이 언제든지 나와 내 배를 품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펼치고, 노를 젓고, 돌아와 배와 돛을 보수한다. 훈풍에 옷과 몸을 말리고 배를 채운다. 바닷속 처음 본 물고기들과 저 멀리 보이는 섬들이 궁금하다. 호기심은 들뜸과 기쁨의 가장 좋은 재료. 푸른 물로 향하기를 반복한다.
어느 날 뒤를 돌아보니, 유난히 멀리 나온 것 같다. 땅에서 불어오는 따스한 바람은 언제나 나의 뒤를 밀어주었는데, 어느덧 해변이 수평선에 겹쳐진다. 그 모습은 점차 흐려지더니 바다가 되었다. 아가는 그렇게 자신의 전부였던 세상을 떠나 또 다른 세상 위에 떠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떠나온 모래사장으로 돌아갈 방위도 방도도 잃은 아이는 잠시 혼란스럽다. 마음속에 선명한 어린 나와 젊은 그녀를 추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