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여름 구름 닮은 삶을 살아볼까
적란운은 나에게는 여름의 상징과도 같다. 무더운 어느 여름날에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구름. 그 모습은 하늘을 떠다니는 거대한 성 같기도 하고, 내가 모르는 세상을 품고 있는 하늘의 섬 같기도 하다. 여름의 투명한 햇빛을 받은 그 모습은 장엄하기까지 하다. 높이나 크기조차 가늠이 안 되는 압도적인 모습. 다른 구름들이 둥실둥실 하늘 위를 빌려 비행하는 모습이라면, 적란운은 자신이 소유한 개인 공간을 갖고 있는 듯 보인다.
언제부터 적란운을 특별하게 여겼는지는 모르겠다. 어릴 적 여름휴가 때 속초 해변에서 바라보던 모습이 좋았는지, 교복을 입고 버스를 기다리던 여름날, MP3와 이어폰으로 듣던 노래와 어울리던 게 좋았는지, 아니면 비행기에서 가까이 스치던 모습이 좋았는지 모르겠다. 그 기원을 쉽게 추적하기는 어렵지만, 나의 여름들을 관통하는 것만큼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냥 적란운이 좋다. 내가 잔뜩 불어넣어 놓은 매력과는 다르게, 이름의 의미는 다소 시시하다. 쌓인 모양으로 생기는 구름. 영어 이름인 cumulonimbus도, 우리말 이름인 쌘비구름도 그 뜻은 같다. 낭만적인 뜻을 가진 줄로만 알았는데. 생각보다는 정직한 작명 센스에 약간의 아쉬움마저 느껴졌다. 양털구름이나 나비구름만큼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데 말이다.
이름의 평범함과는 달리, 적란운의 인상은 어느 구름보다 강렬하다. 비를 왕창 머금고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적란운을 보고 있으면 여름의 활기가 느껴진다. 뜨겁게 달궈져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물기. 반대로 그 아래의 아무개는 금방이라도 소낙비를 맞을 예정일까. 구름 아래에서도, 구름 안에서도 무언가가 잔뜩 일어나고 있다. 눈에 볼 수는 없지만. 그렇기에 여러모로 존재감이 뚜렷하다.
오늘은 장마 중에 찾아온 반가운 적란운을 보며 생각했다. 저 구름을 닮아 살면 어떨까. 멋들어진 이름은 아니더라도 괜찮다. 누군가에게 좀처럼 지우기 어려운 인상을 남기는, 어떤 계절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뿜어내는 활기에 기꺼이 휘말리고 싶은 그런 삶. 그것도 더없이 멋진 인생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