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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강 Sep 03. 2024

왜 나랑 결혼하려는거야

안정감 있는 삶을 위하여

 가장 한국적인 중산층 가정의 자녀. 그렇게 혜선은 자랐다. 공기업 과장, 소위 말하는 회사원 아버지와 전업 주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가장 오래전 기억에서도, 지금도 살고 있는 목동 신시가지 아파트. 모나지 않은 학교생활을 보내며 적당한 중위권 성적을 유지하며 나름 치열하게 입시 준비를 하여 인서울 대학교를 나왔다. 성적 따라인지 적성 따라인지 모를 소재 디자인을 전공하여 다행히 취업전선에는 이상이 없었다. 바바, 그다음엔 지센, 나름 굵직한 패션회사를 다니며 이직도 하고 커리어를 쌓는 중이다. 음, 물론 매달 월급 통장에 찍히는 액수를 보면 분명 열정페이다. 


 혜선은 친구 관계도 동네 친구, 고등학교 친구들과 대학 친구들이 적당히 있었고, 이제껏 사귀었던 남자친구도 너무 적지도 많지도 않은 적당한 두 명이다. 여기서 말하는 '적당히'란 한국의 대중적인 관습의 큰 틀을 벗어나지 않은, 전혀 특이하지 않고 교과서적인 인생의 행적이다. 짙은 공동체 의식과 주변과의 유대를 중요시하는 동아시아, 그중에서도 가장 유교적 문화가 팽배한 바로 우리나라 대한민국. 



"아이고, 내일모레 마흔인데 아직 결혼을 못 갔어? 무슨 문제가 있대?"

"남들 다 부러워하는 대기업을 왜 때려치우고는 무슨 뚱딴지같은 창업이야 창업은!?"

"옆집 얘들은 둘 다 검정고시 출신이래요. 학교는 나와야지 부모는 무슨 생각으로 그랬대요"



 비혼주의자로서 추구하는 개인적인 삶이 있음을, 창의적인 나만의 사업에 대한 꿈이 있음을, 소중한 내 아이들 교육에 대한 저들 부부만의 소신이 있음을 한국 사회는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와 다르면 이상하게 쳐다보고 수군거리며 결국엔 틀린 것이 되고 마는 것이다. 얼마 전, 미국의 한 인플루언서이자 베스트셀러 작가가 한국을 여행한 후 '세상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로 소개하여 화제가 되었다. 극단적 공동체 주의와 경쟁체제, 그리고 유교문화와 자본주의의 교집합 중 단점만을 모아 놓은 사회. 타인에 대한 눈치, 체면, 수치심만 유지하는 한국 사회의 일면이 높은 자살률과 우울증으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



 혜선도 가장 보통의 한국사람으로서 다르지 않았다. 보통에 속함으로써, 남들의 수군거림에 들지 않음으로써 안정감을 얻는 그녀는 이제껏 평범이 주는 안정감을 위해 열심히 살아왔다. 역설적이게도,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평범하게 초중고를 졸업하고 대학을 나와, 적당히 평범한 취업준비를 통해 적당한 직장을 다니고, 평범한 시기에 결혼하여 적당히 아이 한둘을 나아 평범하게 부를 일구고 늙어간다면 한국에서는 평범하지 않은 최고의 인생이 된다. 남들의 시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매번 평범하게 인생의 관문을 통과한다는 것이 쉽지 않기에,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5번 정도만 평범하게 보낼 수 있다면 

한국사람 1% 에 속하는 인생이 되는 것이다. 

[1% 란 눈치가 보이지 않고 공동체에서 튀지 않는 순위이지, 삶의 만족도가 높은 인생은 아니다.]



"지수는 오늘 못 오는 거야?"

"계집애. 결혼하고서는 아주 현모양처 다 됐어. 잘 만나주지도 않잖아"

"아 부럽다. 나도 서른 전에 어서 결혼해야 하는데."

"무슨 소리. 요즘은 서른 중반이 여성 평균 결혼 나이래. 아직 한창이야 우린. 

이렇게 친구끼리 맘 편히 술 먹고 놀 수 있잖아."

"아, 나 진짜 콩글리시인데 벙어리 되면 어떡해 정말"

"키키 괜찮아. 이 영문학과 언니 옆에만 있어. 외국인들과 얘기 나누면 재밌을 거야."


 혜선은 다음 달에 또 한 번 다른 패션 브랜드로 이직하기 전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기에 놀러도 많이 다녔고, 영어 회화도 조금 공부하던 때마침, 영문학과 전공 친구의 부름으로 홍대의 외국인 펍에 놀러 왔다. 


"야. 혜선아. 뭐야 저분 한국인이래. 정말 웃겨. 생긴 것도 그렇고 영어도 잘해서 약간 홍콩계 교포인 줄 알았잖아"

"아 뭐야. 한국 분이시구나. 안녕하세요!"


 혜선은 수많은 외국인들 틈에 영어 울렁증이 왔기에 누가 말이라도 걸세라 친구 팔짱을 끼고 바짝 붙어 있었다. 이미 몇 분 전 짙은 이목구비의 사우디 남자애가 손목을 잡으며 중동 특유의 느끼한 영어로 말을 걸어왔기에 '어. 음. 아임쏘리 아임쏘리'를 연발하고 넘어온 테이블이었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 한국인을 보게 되는 당연한 상황임에도 이역만리 생소한 타국[이를테면 모로코나 살파울루 같은]에서 한국인을 만난 것처럼 반가웠고 마음도 안심이 되었다. 


"저는 강인석이에요. 한국에서 왔죠."

"아 웃겨. 한국에서 왔대. 마이 네임 이즈 민혜선! 호호"


 인석의 언어는 별도의 회화 공부가 필요 없었고 우리말에 편안해진 혜선은 영어를 해보겠다며 뚝딱뚝딱 소개를 했다. 혜선은 그의 큰 입이 빚어내는 환한 미소에서 안정감을 얻었고 가까운 대학병원에서 의사로 근무한다는 인석의 말에 들은 이후로 더 자주 눈이 마주쳐 부끄러웠다.








 인석에겐 연애란 꼭 필요한 것이 아닌, 일종의 취미 같은 것이었다. 현재의 삶과 의사로서의 커리어가 중요했으며 무엇보다 결혼에 대해 딱히 필요를 느끼지도 못했거니와 진지하게 미래를 생각하게 할 만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현재의 삶이 좋았고 그렇게 하루하루에 집중했다. 낮에는 열심히 진료와 수술에 임했으며, 퇴근 후에는 헬스장엘 가거나 좋아하는 카페에서 책을 읽었다. 

 가끔 단조로운 일상 끝의 고요한 밤에 알 수 없는 외로움이 밀려오는 날이 있긴 했지만, 사람 냄새가 필요한가 보다 하고 독서모임이나 언어교환 모임을 찾아 감정을 달래곤 했다. 



"평일에는 너무 바빠. 수술 일정이 가득한데 내가 막내라 오전 6시부터 챙겨야 하잖아. 토요일에 혜선이 네가 말했던 성수 팝업스토어 갔다가 저녁 먹고 영화 보자."


 인석은 대개 주말 중 단 하루를 연애하느라 보냈다. 평일엔 취미 생활과 휴식을 위한 저만의 시간이 필요했고 침해받고 싶지 않았다. 아니, 사실 솔직한 마음은 그만큼 여자친구와의 시간에 할애하고 싶거나 그만큼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인끼리가 아니고서는 방문하기 어려운 몽글몽글한 분위기의 카페나 음식점을 들러 기분을 내고, 에릭 요한슨 사진전이나 데이비드 호크니의 전시를 다니며 문화생활을 영위하기에 일주일에 하루면 충분했다. 물론, 기분 내키는 경우엔 가끔 주말 이틀을 모두 투자하여 가평이나 강원도 등지로 여행을 가서 로맨틱한 밤을 연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일주일에 하루. 




 여자친구는, 인석이 세상에서 홀로 남겨진 듯한 느낌이 들 때 적당히 달래주고, 문화생활과 여가활동을 다채롭게 해 주며, 이따금 혈기왕성한 이십 대 남자가 성적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사람일 뿐이었다. 내 삶을 조금 더 감정충만하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요소일 뿐, 연애나 결혼 자체가 목적이지 않았다.


"프로필 사진은 안돼. 병원이 얼마나 딱딱한 곳인데. 교수님들이나 다른 레지던트 선배들도 한 마디씩 할 거야."

"참나. 너무해. 그런 게 어딨어 요즘 같은 시대에. 그럼 인별에라도 우리 사진 올려줘. 너 인별 계정 솔로인 것 같아서 싫단 말이야."

"나 인별 눈팅만 하는 거 알잖아. 왜 그래 자꾸. 이거 집착이야, 아니지 이걸 요즘 뭐라 하던데. 가스팅?"

"깔깔, 아 가스라이팅!! 왜 이렇게 웃겨. 아재냐 진짜. 그럼 내 거에 올려야지, 치사해서 퉤퉤."


 과거의 연인들도 그랬고 혜선도 마찬가지였지만 연애의 지속기간이 수개월을 넘어가면서 서로에게 익숙해지기 마련이고, 두근거림과 설렘이 줄어든 빈자리에는 권태감과 집착, 서로에 대한 의무만 남게 마련이다. 인석은 남자친구로서의 의무감이나 상대의 집착에 의해 자신의 삶이 흔들리는 것에 예민했다. 직장과 친구, 취미를 포함한 내 시간, 즉 나의 영역에 어느 선이상 들어오는 것을 꺼려했고 너무 깊이 한 명에게 매몰되지 않기 위해 SNS 나 프로필 사진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보통 이런 것들을 왜 안 하냐며 서운해하고 다투게 될 때 즈음, 대부분 관계를 정리했다. 대개 1년이 채 가지 않았다.


 혜선도 인석과의 연애가 깊어질수록 더 특별해 지기를 바랐고, 무엇보다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이성이 되는 관계인 '결혼'에 가까워지기를 바랐다. 하지만 혜선이 다가갈수록 인석의 마음은 정리되었다. 여자의 삼십 대는 조급함과 마음가짐이 다르다며, 숫자 3에 대한 두려움으로 꼭 스물아홉에는 결혼해야 한다는 그녀의 말이 억척스럽게 들렸다. 


'뭐야. 그 말은 스물아홉에 만나고 있는 사람이 나여서 결혼하자는 거잖아?'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결혼은 적당히 결혼 적령기 때에 내 곁에 있는 연인과 하는 것이라고. 이 무슨 발가락으로 인중 긁는 소리인가. 사회가 정해준 '적당한 결혼 시기'에 억지로 맞추려고 적당히 아무나랑 결혼한다고? 인석은 이런 혜선의 시각에 질렸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혜선은 팀장님이 남자친구 뭐 하는 사람이냐는 질문에 부끄러운 척 자랑하며 성형외과 의사라고 했고, 자신의 SNS 계정에 '이번 주 수술일정이 바빠 자주 못 보는 내 남친 (울상)' 식으로 은근히 내비치면서도 인석의 어깨나 뒷모습만 나오는 사진을 올렸다. 

[인석은 남자친구 직업은 알려주면서 왜 같이 찍은 얼굴 나온 사진은 없냐며 내심 자존심 상해했다.]


 결정적인 건 항상 가장 극적이다. 지난 크리스마스였다. 크리스마스 전날부터 인석이 감기몸살에 몸이 아팠다. 숨이 가쁘고 열감으로 얼굴이 상기되어 힘들었고 눈까지 내리는 마당에 집에서 쉬어야 할 것 같다며 혜선에게 미안함을 전했다. 혜선은 크리스마스에 그럼 나는 혼자 집에 있어야 되냐며 굳은 얼굴로 재촉했다. 인석은 혜선의 성화에 못 이겨 진통해열제를 한 움큼 삼킨 후 약기운을 빌려 명동의 어느 호텔 루프탑에서 예수의 생일을 축하했다. 즐거운 얼굴로 인별에 올릴 거라며 칵테일 잔을 맞부딪히는 사진을 보정하는 혜선을 보며 인석은 생각했다.


'넌 나를 사랑한 게 아니구나. [남자친구와 연애하는] 너 자신을 사랑한 거지.'


 그렇게 또 한 번의 인연이 끝났다. 삶의 영역에 깊게 들이지 않고, 마음도 주기보단 받기를 하는 쪽을 택한 인석이라 아픔은 없었고, 여자와 결혼에 대한 저만의 교훈을 얻었다. 혜선은 마지막 인사를 하던 날에도, 너와 만나 즐겁긴 했지만 지난 일 년의 시간이 아깝다고 말했다. [모든 청춘을 안정된 결혼을 하는데에 바쳐야만 아깝지 않은 걸까?]


인석은 한 마디만 하고 돌아섰다. 미움도, 미련 한 줌도 남기지 않은 채.


"넌 내가 좋아서 결혼하려는 게 아니라 좋은 결혼을 위해 내가 필요한 거였잖아"




<이미지 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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