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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강 Aug 30. 2024

당신은 괜찮은 결혼상대인가요?

결혼시장

 인석이 병원에서 온전히 벗어날 수 있는 날은 주말 중 단 하루였다. 그마저도 여름의 더위가 가실 무렵이 되어서야 일이 손에 익어 온전한 휴식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바람도 쐬고 병원 냄새나지 않는 사람들도 만날 겸 인석은 홍대로 향하는 빨간 버스에 올랐다. 양화대교 옆 길게 뻗은 한강 위로 햇살이 부서져 내리는 소리가 눈부시게 들린다. 가늘게 눈을 뜬 인석이 가을 기분을 내려는 찰나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지만 직장[병원] 관련하여 오는 전화일 수 있기에 받았더니 결혼정보회사 '인연' 이란다. 최근 며칠 간격으로 문자가 와서 그냥 스팸인 줄 알았더니 계획적으로 보낸 것이로구나, 결혼정보회사 '인연[이년]'들.


"저 아직 결정사 도움 필요할 나이 아니라고요. 제가 뭐가 부족해서 그런 데를 가입하겠어요? 필요 없습니다."


직업만 좋고 배 나온 늙은 아저씨들이 젊고 이쁜 배우자를 만나려 업체를 이용한다고 생각해 왔던 인석은 삐죽 쏘아대고 끊으려다 한 마디 더 붙였다.


"아니 그런데 제 번호는 어떻게 알고 전화했어요? 20대에 의사라는 거 어떻게 알고 전화한 거잖아요"


 여자 직원이 회사 매뉴얼에 적혀 있기라도 한 듯 '저희는 그저 무작위로 번호를 찍어 전화 돌리는 것뿐이랍니다' 하는 답변에 어이가 없어진 인석은 마이크에다 대고 '흥' 하고 콧바람을 뿜는다. 오늘날 한국 사회를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이 존재하는 신분제 사회로 보는 시각. 그리고 결혼을 이 유리천장을 건너 신분상승을 꾀할 수 있는 하나의 '기회'로 보는 계산적인 속물근성의 끝판왕이 바로 결혼정보회사, 이른바 '결정사'다. 인석에게 결혼이란 몸과 마음을 아우르는 인생 전반을 함께하기로 하는 사랑을 전제로 한 언약이었고, 온전히 마음이 동하여 이루어져야 했다. 요즘의 시선으로 볼 때 세상모르는 순진한 생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실제 결혼 적령기의 젊은 남녀들 사이에서는, 많은 이들이 외모, 학력, 직업, 재력, 성격, 가족관계 등등을 포함한 '육각형의 배우자'를 찾기 위해 분투하고 있었다. 이름하여 '결혼시장'이라 불리는 보이지 않는 시장 속에서 서로를 가늠하고 평가하여 흡족한 배우자를 구하는 것이다. 이성에게 '매력 있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전통적인 '동물적 이끌림'을 넘어 직업이 훌륭하고, 재력이 빵빵하고, 나와 아이들에게 자상하다는 이유로 '미래의 배우자로 끌린다'는 포괄적인 뜻이 되었다. 



 그러나 유교적 가치관이 팽배한 우리나라에서 자칫 천박하고 속물적으로 보일까 봐 이런 '결혼시장'의 뚜렷한 기준이나 평가 시스템을 직접 논하기는 어렵다. 또한 인간 본성적인 '자기 객관화 문제'로 '그래도 나 정도면 훌륭하지, 훗' 하며 턱 없이 높은 수준의 배우자를 기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결정사가 흥하는 가장 큰 이유이지 싶다] 보다 객관적으로 시장의 참가자들을 평가하고 연결해 주는 업체들이 등장했다. 


 인석은 성형외과 의사로서 본인이 어느 정도 시장의 우위에 있음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감사하게도 아버지는 대구에서 규모가 꽤 큰 학원 몇 개를 성공적으로 운영했고 물질적 풍요 덕에 인석은 어렸을 적 캐나다와 영국 등에서 어학연수도 할 수 있었다. 서울 소재 대학병원에서 수련 중이고 바빠서 잘 이용하진 않았으나 어머니께 물려받은 구형 벤츠도 갖고 있다.


'얼굴도 차은우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일반인 중에는 준수한 편이지.' 


 인석 또한 '자기 객관화 문제'를 겪고 있었으나 군데군데 조금 일그러진 육각형의 신랑감임에는 분명했다. 사랑을 전제로 한 결혼이 아니라면 비혼주의가 낫다는 생각을 했고, 직업과 배경을 보고 다가오는 여자들을 냉소적으로만 보던 그였지만 결혼시장 바닥에서 우위에 있음에 숨길 수 없는 짜릿함을 느꼈던 것 같기도 하다. 일종의 순수함을 가장한 위선이다. '난 게임에 참가할 의사가 없지만 이왕이면 좋은 패들을 가지고 있는 게 좋지, 그렇고 말고' 식이었다.


 속으로 결정사에 대해 맹렬하게 비난하며 식식대며 걷다 보니 어느새 홍익대 정문이 보인다. 역에서 홍대 정문에 가까워질수록 트렌디한 젊음과 캠퍼스의 낭만으로 인석의 마음도 덩달아 몽글몽글 해 진다. 홍익문화공원 편으로 꺾으면 아기자기한 카페와 로드샵들이 들어선 꼬마 빌딩들이 주욱 늘어서 있다. 한 빌딩 꼭대기 층인 4층에 인석이 찾는 카페가 있다. 낮에는 허름한 카페로 운영하다 밤이 되면 파티룸으로 변신하여 바(BAR)가 되는 곳이었다. 특이할 점 없는 평범한 바였지만, 주말을 포함한 몇몇 날에는 외국인들이 꽤 많이 찾는 파티가 열렸고 참가한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영어를 썼다. 외국물을 먹어 영어로 의사소통 하는데 문제가 없던 인석에겐 즐거운 놀이터였다. 직업, 나이 등을 묻지 않고서도 대화할 수 있었고 처음 만난 옆사람에게 인사를 하는데 조금도 쑥스러워할 필요가 없었다.


"Hey, glad to see you bud, I'm Inseok" (안녕, 만나서 반가워 친구야 난 인석이야)


 예의와 격식이 조금은 생략된 이국적 분위기는 딱딱하고 삭막한 직장생활의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구석이 있었다.






 이곳은 일 년 반 전, 지금은 헤어진 전 여자친구를 처음 만나게 된 곳이기도 했다. 당시에도 지금처럼 많은 외국인들 틈에 한국인들은 채 반이 되지 않았고, 소년미 충만한 바텐더는 한국이 좋아서 캘리포니아에서 온 금발머리였다. 바텐더 앞의 높은 바텐의자에 걸터앉아 맥주를 주문하고 둘러보니 비어퐁(Beer Pong; 테이블 끝에 맥주로 채워진 컵을 두고 반대편 끝에서 탁구공을 던지는 술자리 게임)을 하는 긴 테이블 근처에 사람들이 많다. 역시나 공을 튕기고 맥주컵에 공이 빠질 때마다 손뼉을 치고 떠드는 플레이어들은 백인들이었고 그 주변을 겹겹이 둘러싼 소심한 한국인들이 있었다. 인석은 쑥스러운 기색 없이 구경꾼들을 비집고 들어가 영어로 게임에 끼워달라 하여 차례를 얻었다. 


 맥주가 차 있는 컵이 두 개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라 공을 넣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분위기를 띄울 줄 알았던 인석은 익살스럽게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눈썹을 S자로 일 그러 뜨으렷다. 마치 투포환 선수가 공을 던 지 듯 거창한 준비동작 끝에 손에서 튕겨져 나간 탁구공은 탁, 탁, 탁 포물선을 그리며 테이블 중앙을 가로질렀다. 탁구공이 튀는 맑은 소리를 세 번 울리는 동안 주변의 사람들은 일제히 조용해지면서 수많은 눈동자들이 주황색 탁구공을 궤적을 따라 굴렀다. 순간 비어퐁 테이블 주변의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했다가 탁구공이 컵 속의 맥주를 일렁이는 순간 '와아아아' 하는 함성과 함께 음소거가 해제되었다. 연달아 두 컵을 모두 해치운 인석은 주근깨 투성이의 뽀글 머리 외국인이 연신 어깨동무를 해대는 것을 풀면서 멋쩍게 웃는다.


"Great! bro. You are damn good" (잘했어! 친구 너 진짜 잘하는구나)

"Thanks. You've done good, too" (고맙다. 너도 잘하더라)


 외국인들 틈에서 유창한 영어로 떠들면서 맥주잔을 부딪히는 걸 보던 관중들 중에 수군대는 여자들이 보인다. 


"어?, 한국인 인가 봐"

"교포 아냐? 약간 혼혈 같아 보이는데"

"야야, 한번 물어봐바"


 귓등 너머 자기를 향하는 관심에 인석은 내심 즐겁다. 눈치채지 못하게 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향하다가 유난히 동그랗고 큰 눈과 마주쳤다. 파란 오프숄더 블라우스를 입은 그녀는 쑥스러워 냉큼 눈을 옆으로 돌렸고, 보다 용감했던 옆의 친구분이 소심한 그녀 대신에 성큼성큼 다가와 말을 걸었다. 발음이 또박또박 열심이었다.


"음음. 익스큐즈미. 아유 코리안? 웨어 아 유 프롬"


 유독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뜸 국적부터 묻더라. 공교육이 주입시키는 영어 회화 1번 문장이기 때문일 수도. 인석은 진부한 질문에 매력 있어 보이려 웃으며 역으로 물어본다.


"Take a guess! How do I look?" (한번 맞춰봐! 어느 나라에서 온 것 같아?)

"아. 홍콩 홍콩! 오어 차이니즈?"

"아이 노우! 아메리칸!"

"교포? 유 교포?"


 친구의 당돌한 질문에 자신을 얻었는지 주변의 구경꾼들 서넛이 영어권 아시아계 외국인을 예상하며 우르르 답한다. 인석이 하얀 윗니가 전부 드러나도록 씩 웃으며 눈웃음만 짓자, 답답해진 사람들이 급기야 한국어까지 섞어 가며 콩글리시를 구사했다. 


"파하하. 저 한국 사람이에요. 엄마 아빠 전부 토종 한국인."


 외국인 아니냐는 여러 질문에 손사래를 치며 한국인이라고 답한 인석은 외국에서 살다 왔냐, 여기 백인들 원래 친했던 친구들이냐 등의 이어지는 질문에 답하며 대화를 이어 갔다. 그렇게 무리 속에서 대화하는 내내 인석은 파란 블라우스 그녀와 눈을 여섯 번은 더 마주쳤고 눈동자 너머 더 깊이 주시하는 듯 한 느낌을 받았다. 조금 더 대담했던 그녀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녀랑은 몇 마디 주고받지 못했지만 오히려 말없이 주고받은 눈빛 메시지 속에서 내적 친밀감을 이룰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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