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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강 Aug 27. 2024

연인들이여 뒷담 하라

뒷담의 양면성

 3년 차 선생님이 부탁하신 [혹은 던져버린] 일들을 처리하고 후다닥 치킨집으로 내달리니 이미 성형외과 동기인 윤정과 진성은 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인석은 풀썩 빈자리에 앉으며 냅다 닭다리를 입으로 가져갔다. 오늘 낮에 악악 대던 3년 차 선생님이 너무했다는 비난을 시작으로 '평소 성격이 고약해서 자주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더라'에서 '성격 탓에 남자 사귄 지도 수년 째 라더라. 그렇게 20년 뒤에도 노처녀일 거야.'까지 뭉게뭉게 상상력에 기반한 이야기가 피어났다. 

 같이 고생하는 1년 차 동기들끼리만 있으니 병원에서는 하늘만 같던 선배들, 교수님들에 대한 험담도 핑퐁핑퐁 신나서 주고받았다. 없는 데서는 나랏님 욕도 한다는데 이쯤이야. 

진성과 윤정은 다른 교수님들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간다. 


"오빠 소화기 내과 전교수님 알지? 그 교수님 결혼도 하고 아이가 고등학생이라던데 막내 김교수님이랑 너무 가깝게 붙어 다니는 거 같지 않아?"

"너 몰랐어? 병원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아마 김교수님 펠로우(전임의) 때부터 불륜관계였을 걸."

"헐. 대박! 그래서 김교수님은 내일모레 마흔인데 결혼을 안 하시는 건가?"

"그런 것 같아. 둘만 있을 땐 엄청 다정하게 이름으로 부른대. 지혜야~지혜야~."


진성은 전교수님 특유의 억양과 나긋나긋한 속도를 따라 하며 느끼한 얼굴로 장난을 쳤다. 


"으웩. 이해 안 가. 안경 쓴 두꺼비 같이 생긴 전교수님이 뭐가 좋을까. 진짜 매력 없는데."

"그건 둘만 알겠지. 누가 알아 침대에서는 끝내주는 남자일지. 키키키"


 윤정은 못 말린다는 표정으로 깔깔 웃으며 진성의 어깨를 연신 때린다. 그 와중에 진성은 윤정의 빈 맥주잔에 맥주를 따라주고 앞접시에 닭날개를 하나 얹어 준다. 둘은 인턴 때부터 동고동락하다 사귀게 된 연인이다. 인석은 맞은편에서 둘의 대화를 따라가며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한다. 


 시중의 여러 자기 계발 강의나 책에서는 줄곧 '남이 없는데서 험담하지 말라'라고 말한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 나온 아이돌 스타가 이상형이 무엇이냐는 패널들의 질문에 '다른 사람 험담하고 뒷담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하여 이성의 중요한 덕목이라며 소개된 적이 있다. 


 뒷담 : 특정 대상이 없는 자리에서 그 사람의 험담 따위를 하는 것.


 어느 정도 일상어가 되어 버린 속어 '뒷담'. 도덕적이지 못한 것으로 우리가 대인관계에서 지양해야 할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연인 사이에서는 전혀 다르게 작용한다. 둘만의 비밀적 교류가 주는 친밀감, 남한테는 말 못 하지만 너에겐 말할 수 있다는 신뢰감과 관계의 특별함, 심지어는 사실보다 더 부정적으로 확대 해석 하며 느끼는 일종의 배덕감과 그런 행위를 통해 '우리 둘은 더 나은 사람이잖아 그렇지?' 하는 집단 우월감까지.

 물론 이것은 내 연인이 나를 제외하고는 어떤 대인관계에서도 '뒷담'을 하지 않고, 나와 단 둘이 은밀하게 키득거린다는 전제 아래서만 가능하다. 어디 가서 절대 얘기하지 말라며 당부한 교수님의 불륜 소식을 동네방네 떠벌리는 상대방의 모습을 본다면 신뢰를 바탕으로 한 [사랑의 뒷담연대]가 깨질 뿐 아니라 그 입을 봉합해 버리고 싶을 테니 말이다.


 진성과 윤정의 뒷담연대는 그런 의미에서 결속력이 뛰어났고 그렇게 서로의 애정을 확인하고 함께 있을 때면 즐거움을 더해 주는 그런 것이었다. 명랑하고 언제나 에너지가 넘치는 윤정은 근무 중에 맞닥뜨리는 진상 환자들 썰[설(說)]이나, 병원 직원들 간의 빅뉴스를 알게 될 때면 퇴근과 동시에 진성에게 도도도 달려가곤 했다. 그렇게 때론 진성의 머리를 무릎에 뉘인 채, 때론 진성의 코트 속 겨드랑이에 코를 파묻은 채 둘은 이러쿵저러쿵 '뒷담'을 통해 연대감을 키우고 애정을 확인했다. 

종종 이야기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이리저리 튈 때면 진성이 곤혹을 느끼기도 했다.

 

"오빠도 나중에 나 질려서 바람피우는 거 아니지?"

"그러니까 오빠도 술 마시고 행동 조심해. 한 순간에 나락 가는 거야. 지난겨울에 오빠 사고 쳤던 것 기억하지?"


그럴 때마다 당황한 기색을 숨기고 넉살 좋게 피해 간 진성은 다시금 손가락으로 윤정의 머리칼을 쓸어내리며 영원이 변하지 않을 사랑과 충성을 속삭였고 마음을 확인받은 윤정은 '뒷담'으로 주제를 돌렸다.


인석은 사이좋은 한 쌍이 언제나처럼 투닥거리며 시시덕 대는 것을 부럽게 쳐다봤다. 만오천 원짜리 치킨 한 마리 앞에서 둘은 타인의 불륜을 얘기하다가 서로의 곁에 영원히 존재할 것을 약속하고, 예의 없던 학생 환자를 욕하다가 자녀 교육은 엄하게 시키자며 미래를 그려보며 행복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렇게 서로의 생각에 대한 최대한의 공감과 이해를 바탕으로 은밀한 뒷담에 의견이 일치하고, 더 나아가 여러 가치관들에 대한 정신적 동질감을 느끼면서 '우린 정말 잘 맞아. 어쩜 이렇게 비슷해?'에 이르게 된다. 


 인석의 부모님은 그렇지 못했다. 유치하고 밝은 성격의 어머니는 감정적이고 눈치가 없어 약간 가여워 보이기까지 한 사람이었다. 당시 여느 전업 주부들처럼 동네사람들 사이의 소문이나 아버지가 사업상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첫인상을 당신 남편에게 재잘재잘 말하곤 했고, 밤늦게 퇴근한 아버지는 옷을 갈아입으며 말없이 어머니의 '뒷담'을 듣다가 못마땅하게 쳐다보기 일쑤였다.


"당신은 와 맨날 그래 사람들을 부정적으로 보노? 그래 갖고 어뜨케 사회생활을 하노. 교양 있게 좀 행동해라 좀."


 어머니는 줄곧 아버지와 뒷담연대를 형성하는 데 실패했고, 애정의 확인이나 공감을 얻어내지 못했다. 이런 경우 항상 먼저 연대하고자 뒷담을 한 사람은 부도덕한 사람, 교양 없는 사람이 된다. 아버지는 그걸 지적하고 연대에 동조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을 교양 있는 사람으로 격상시켰고 더 나아가 아내를 가르쳐야 한다는 가부장적인 군림도 얻어냈다. 


 전형적인 경상도 분들이셨던 인석의 부모님은 '속상해, 미안해, 공감해 줘' 하는 감정의 표현을 하는 일이 없었기에 이런 일로 한번 토라진 어머니는 아버지와 이삼일 정도 말을 섞지 않다가 '요즘도 일 많아예?' 라든가 '바빠도 주말엔 아들하고 쫌 나갔다 오이소' 같은 방법으로 다시 말문을 트곤 했다. 또 그렇게 시작된 대화의 물꼬는 어느 날 남편의 공감을 바라는 '뒷담'으로 이어졌다가 연대하는 데 실패하여 가로막히길 반복했다.



 그렇게 부모님을 보며 자라온 인석은 '뒷담 연대'가 잘 어울리는 커플, 금슬 좋은 부부 사이에 필수적인 요소라 믿었다. 이것은 사람, 환경, 그리고 가치관 등에 대해 서로 공감하고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을 넘어서는 것이다. 눈치가 보이고 손가락질받을까 봐 타인에게 쉽게 표현하지 못하는, 마음 깊은 곳에서 튀어나오고 싶어 꼼지락거리는 진실된 속마음을 나누는 것이다. 누구에게도 쉽게 못 꺼내는 '뒷담'을 단 둘이서 나눔으로써 답답한 마음을 환기하고 즐거운 공감 얻는데 금슬이 좋지 않을 수 있을까.


'엄마 아빠도 침실 미등 아래서 밤새 쑥덕쑥덕 이런 얘길 했다면 지금과는 달랐겠지'


인석은 먼저 가겠다며 동기들에게 손짓을 하곤 가게를 나선다.


<이미지 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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