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자녀를 믿지 않는데 자녀가 부모를 믿을까?
하나 마나한 질문이다. 부모가 자녀를 믿어 주어도 자녀가 부모를 믿을까 말까 한데, 부모가 자녀를 신뢰하지 않으면, 자녀는 부모를 믿지 않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부모 자식간은 정말 천륜에 의해 맺어진 뗄 수 없는 소중한 혈연관계이다. 자녀 입장에서는 자신의 생명을 잉태하고 낳아서 눈도 가누지 못하는 핏덩이를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누이며 애지중지 키워준 부모는 늘 고맙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이다.
그리고, 가정이라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몸과 마음이 편하게 잘 지낼 수 있도록 물적.인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부모를 어찌 미워하고 불신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왜 자녀는 부모를 불신하고, 심지어 적군으로 인식하게 되는걸까? 그것은 순전히 부모의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잘못된 행동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부모의 잘못이라는 말을 들으면 부모 입장에서는 많이 억울해 질 수 있다. “내가 먹을 것 안먹고, 입을 것 안 입고 새빠지게 키웠는데, 자녀가 부모를 불신한다고 하면 도저히 수긍할 수 없다.”고 항변할 수 있다. 또 섭섭함과 함께 자녀에 대한 배신감 마저 들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 부모들이 한 가지 착각하는 것이 있다. 자녀에게 무조건 물적지원을 많이 해주는 것이 최선이고, 전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녀는 당연히 행복해하고 부모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질 것이다고 일방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자녀는 부모와 똑같이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물질적으로 아무리 풍요하고, 아낌 없이 지원해 주어도 자녀가 부담감을 느끼거나, 마음이 편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보겠다.
A가정은 부모의 학력이 변변치 못하고 경제적으로도 넉넉하지 못하여 자녀의 학원비도 제대로 지원하지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 그러나 부모는 자녀를 믿어주고, 공부든 뭐든 모든 면에서 자녀가 자기주도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과도하게 참견하지 않는다.
B가정은 경제적으로 풍요로워 물질적인 지원은 충분히 가능한 상태다. 그러나 자녀의 공부 등 모든 면에서 부모가 결정하고, 그 결정한 대로 자녀가 따라 주기를 강요한다. 그래서 자녀가 자기 뜻대로 삶을 설계하지 못하게 되면서, 부모를 원망하게 되는 상황이다.
예시의 두 가정에서 자년들이 느끼는 감정은 꽤 큰 차이가 있다.
A가정의 자녀는 부모의 넉넉지 않은 경제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늘 부모의 헌신에 대해 고마워할 것이다. 그리고 자율과 책임 원칙하 자녀가 모든 면에서 자기주도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부모를 전적으로 신뢰할 것이다.
B가정의 자녀는 물질적으로 풍족하여 지원 자체는 충분하지만, 자녀의 자기 결정권을 부모가 빼앗아서 학원수강, 학교 결정 등 모든 면에서 개입하고, 통제하는 것에 대해 불만이 점점 커져 갈 것이다. 그리고 자녀의 사소한 의견조차도 수용하지 않는 부모에 대해서는 불신과 적대감이 자라나게 된다.
이렇듯이 생물학적으로나 원초적으로 자녀는 부모를 신뢰하게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가 제멋대로 자녀를 끌고 가려는 잘못된 행동으로 자녀는 더 이상 부모를 신뢰하지 않게 된다.
「에밀」에서 장자크 루소는 “아이들은 자유롭게 자라면 모두 성공한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자신의 귀엽고 사랑스런 아이들이 잘 되길 원하는 부모라면 ‘자율과 책임’ 원칙하 자기주도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보장해 주어야 하겠다.
부모는 자녀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 가정형편내에서 최대한 지원하고, 보살펴 주면 되는 것이다. 자녀가 성인 이후 잘살고 못사는 것은 다 자녀 자신의 책임이다. 부모들이 거기에 대해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우리가 결혼해서 살아가면서 힘들때마다 우리들의 부모들을 원망하고 살지는 않기 때문이다. 우리부모들이 최선을 없는 형편에 뼈빠지게 우리들을 지원해 주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다 알고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