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기다릴 줄 알아야 자녀가 숨을 쉴 수 있다

기다림의 미학

by 맹부

도공이 도자기를 만들고 가마에 넣어놓고 불을 때서 도자기가 완성될때까지 기다려 주듯이 부모들도 자녀가 공부를 하든 취업을 하든 좀 기다려 주어야 한다.


그런데 많은 부모들은 잘 기다려 주지 않는다. 노는 것이든, 먹는 것이든 무슨 일이든지 시간이 지나거나 일정한 수준이 되면 끝이 나게 되어 있다.


어느 학생이 학교에서 공부를 잘 하고 싶지 않겠는가? 어느 자녀가 일부러 부모가 원하는 좋은 직장(대기업, 공무원 등)에 취업하고 싶지 않겠는가?


공부든 취업이든 안되면 당사자인 자녀들이 제일 힘들고 가슴 아프다. 그 다음이 부모 심정일 것이다. 그런데 부모들은 옆집, 친척, 지인 자녀들과 실시간으로 비교하면서 자녀들을 옥죈다.


자녀들은 정말 숨고 싶어질 것이다. 뜻대로 되지 않는 자녀들은 부모님에게 할 말이 없고, 그저 미안할 뿐이다. 부모님 원대로 못해주는 자신들이 밉고, 실망스럽다.


그런 와중에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직접 말은 하지 않지만 “내가 해준 게 얼만데, 자녀들이 남들처럼 제대로 못하는냐?”는 표정을 짓는다.


자녀들은 그런 눈빛을 보내는 부모들과 마주치기 싫어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방에서 잘 안나오거나 밥도 같이 먹는 것을 꺼려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심한 경우는 부모들이 집에 있을때는 밖으로 나돌기까지 하는 경우가 있다.


왜 부모들은 자녀들을 못살게 굴까?


보통 어떤 사람을 못살게 구는 이유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사람 자체가 마음 들지 않거나, 어떤 일을 할 때 노력하지 않거나, 자신을 공격하거나 배신하는 경우에 반격에 나선다.


그런데 자녀는 부모들이 원해서 낳은 자식이라 귀여운 존재이고, 겉으로 보기에는 설렁설렁 공부를 하지 않는 것 같지만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부모를 공격하거나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

이런 자녀들을 왜 부모들은 적대적으로 대하는지 잘 모르겠다. 우리가 너무 삶의 외형적 틀에만 얽매이고, 집착하는 것이 아닐까? 잘사는 것이 무엇인가? 꼭 경제적으로 부유하게 살아야 인간다운 것일까?

선비라는 책에 이런 내용이 있다.

「선비가 한 여름 장마철에 방에서 글을 읽는데 방안에 빗물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부인이 우산을 가져다 주었다. 그러자 선비는 부인에게 “우리는 우산이라도 있어 다행인데 우산도 없는 집은 어떻게 장마철을 지날까?”라고 걱정을 했다」고 한다.


노숙자, 자연인에게도 그들의 인생이 있고, 나름의 살아가는 방식이 있을 것이다. 타인들이 그들의 삶에 대해 재단하거나 평가해서는 안된다.


어느 누구도 그런 권한을 부여해 주지 않았다. 부모는 자녀를 낳은 이상 그들이 자립할 때까지 형편껏 도와주어야 하고, 그들이 좀 늦더라도 기다려 주어야 한다.


인간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자녀를 타인과 비교평가 해서는 안되고, 인내를 갖고 믿고 기다려 주어야 한다. 그리고 기다려 준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실망하거나 자녀를 미워해서는 안된다.

그것이 부모의 운명이다. 모든 사람들이 손가락질 하는 사형수에게도 부모가 있다. 그 부모는 죽을때까지 자녀가 사형집행 되지 않기를 바라며, 하루하루 노심초사 걱정하면서 기다려준다고 한다. 그 부모에게는 사형수도 귀여운 자녀이지 죄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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