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안개와 도둑 고양이
제가 살던 시골마을에는 커다란 저수지가 하나 있었다. 겨울에 저수지 꽁꽁 얼면 동네아이들이 나무판에 철사를 덧대어 만든 스케이트를 타면서 놀았다. 그러다 해빙기 얼음이 깨지면서 저수지에 빠져 죽는 친구들도 있었다.
제가 국민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겨울방학이나 여름방학 지나면 한반에 1-2명 정도는 학교에 오지 않았다. 여름에는 냇가에서 멱을 감거나 다슬기를 잡다가 익사하고, 겨울에는 저수지나 강에서 스케이트 타다가 얼음이 깨지면서 익사해서 동네 아이들이 죽었다. 그래서 국민학교 입학할때보다 졸업할때는 학생수가 적지 않게 줄어 있었다.
우리동네 저수지는 겨울철을 제외한 봄,여름,가을철에는 낚시터로 변했다. 송어, 붕어, 잉어, 가물치 등 갖가지 민물고기가 잡히는 개방형 무료 낚시터였다.
저는 어릴때부터 여름철 폭우나 소나기가 한바탕 쏟아지고 난 뒤 물안개가 자욱하게 끼여있는 저수지 낚시를 참 좋아했었다.
한차례 소나기가 쏟아지고 난 뒤 약간의 습기를 머금은 공기와 머리카락을 하늘거릴 만큼의 옅은 바람과 맑게 갠 하늘과 저수지의 군데 군데 덮여있는 물안개 풍경을 무척 좋아했다.
그 중에서도 저수지 물의 표면에 낮게 드리워진 물안개, 소나기 뒷걸음 같은 물안개가 그렇게 좋았다.
낚시 자체를 좋아했다기 보다는 그런 풍경과 분위기를 좋아했었다.
한여름 소낙비가 그치면 나는 어김없이 장대 낚싯대를 들고 저수지로 향했다. 당시는 시골에서 낚싯대라 해봐야 긴 대나무 작대기에다가 낚시줄을 묶고, 봇돌과 찌를 끼운 단촐한 낚시대가 전부였다.
낚싯대가 접어지지 않아 긴 장대를 들고 동네 골목을 돌아 저수지로 가는 길에 동네 어른들은 물론 친구들을 마주칠 수 밖에 없었다. 최소 10여명 이상은 되었다. 그러다 보니 가다가 인사하고, 또 중간에 "낚시하러 가는가? 어디로 가는가? 고기는 잘 잡히는가? 미끼는 요즘 뭘 쓰는가? 공부는 잘하지? 요즘 아버지는 어떠셔?" 등의 질문에 답변을 일일이 하다보면 집에서 낚시터까지 가는데는 거의 1시간이 걸릴때도 있었다.
그렇다고 그게 귀찮아서 아무 대답없이 고개를 푹 숙인 채 장대를 들고 저수지까지 논스탑으로 뛰어갈 수는 없었다.
그렇게 저수지에 도착하면 어디가 포인트 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저수지를 쭉 한바퀴 돌아보게 된다. 돌아보는 중에는 물고기를 잡아 올리는 장면과 입질이 와서 찌가 막 물속으로 내리 꽂히는 장면도 목격하게 된다.
이런 저런 볼거리를 보면서 저수지를 한 바퀴 돌면서 나만의 낚시 포인트를 찾는데 또 1시간이 걸렸다. 막상 자리를 잡고 앉아서 낚시를 시작하면 그 다음부터는 시간가는 줄 모른다.
배가 고픈지? 해가 중천을 언제 지나 갔는지? 몇시인지? 살림망에 고기가 몇마리 있는지? 모른다.
찌에 집중하다 보면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어느덧 해가 뉘엇뉘엇 서산으로 넘어가기 시작하면 집에 갈 준비를 한다.
모자도 썬크림도 없이 여름 뙤약볕에서 온종일을 보낸 모습은 어떻겠는가?
얼굴은 벌겋게 익었고, 팔과 목은 새까맣게 탔고, 배는 연신 꼬르륵 소리를 내고, 딱딱한 돌 위에 앉아 있어서 엉덩이와 다리는 쥐가 내릴 정도로 뻐근했다.
겨우 걸어서 집에 올 정도의 힘만 남아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자 마자 잡았던 물고기는 큰 대야에 풀어 놓았다. 반쯤은 죽어 있었고, 반에 반쯤은 기절 상태였고, 반에 반쯤은 겨우 차가운 물속에서 생기를 찾아갔다.
비린내 나는 손과 벌겋게 탄 얼굴만 대충 씻고, 저녁은 먹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숫가락을 놓자 마자 그 자리에서 뻗어버렸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대야에 넣어 두었던 물고기는 한마리도 없었다. 밤새 도둑 고양이가 다 먹어 버린 것으로 추정했다. 더 이상의 조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어머니께서 그렇다고 하니까 그런 줄 알았다.
내가 하루종일 뙤약볕에서 낚시해서 잡은 물고기는 결국 도둑 고양이의 하루저녁 포식거리에 불과했다. 어린심정에 다소 억울하고, 허무한 생각이 들었었다.
지금도 한여름 소나기가 오고 날이 개면, 그때 시골마을에서의 저수지 낚시하던 내 어릴 적 모습이 떠오른다. 그때의 평화스런 마음과 운치있는 풍경이 그리워진다. 이 비 그치면 강나루 긴 언덕에 긴 장대 들고 낚시하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