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컨트롤 할 수 없는 독립적 인격체
자녀는 부모의 의지에 따라 낳아 길러지는 피동적 생명체로 시작된다. 그러나 점차 자라나면서 자아가 형성되고, 자기 결정권을 갖고 자기 책임하에 독자적 인생을 살아가려는 독립적 인격체로 변화하게 된다.
대다수 부모들은 자녀를 독립적 인격체로 대우해 주지 않는다. 보살핌의 대상을 뛰어 넘어 그들의 영혼을 투영한 인생 작품으로 완성시키고 싶어 한다.
완벽한 인생 작품 완성을 위해 부모들은 그들이 가진 경제력과 역량을 총동원한다.
어떤 부모들은 그들이 가진 능력보다 훨씬 넘어선 것을 과다하게 투자하면서 가정경제가 무너지고 부부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특히, 자녀에게 특별히 물려줄 재산이 없는 월급쟁이 부모들은 자녀 공부에 모든 것을 건다. 자녀의 바램과 상관없이 한줄기 숨도 자녀 공부를 위해 아끼며 생활한다.
그리고 직장에서의 힘듦, 고통 등을 참아가며 자녀 공부에 올인한다. 부모들은 그들의 부모들한테 지원받지 못한 불만과 서러움에 대한 반대급부로 그들의 자녀들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때로는 자신이 못다 이룬 소원을 자녀들을 통해 관철시키려고 온갖 지원을 쏟아 붓는다. 자녀는 이런 눈물어린 부모의 과도한 사랑에 당연히 고마움을 느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고학년이 되면서 부모의 지원에 비해 자녀들이 보답할 수 있는 성적향상은 한계가 있다. 공부에 재능이 있는 자녀는 부모의 지원에 비례하여 성적이 향상된다.
하지만 적지 않은 자녀들은 자기 생각대로 오르지 않는 성적으로 인해 힘들어 하게 된다. 부모가 고생하면서 학원비 등 지원을 해주는데 비해 자신의 능력에 한계를 느끼는 것은 물론 그로 인해 미안한 감정이 점점 커지게 된다.
중학교 또는 고등학교 시기부터 이러한 문제 때문에 부모-자식간 갈등과 충돌이 시작된다.
이 문제 또한 자녀보다는 부모들에게 책임 또는 원인이 있다. 자녀를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인식하지 않고, 그들이 낳은 단순한 피조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자녀는 부모들의 희망과 울분을 투영하여 완성시키는 그들의 인생작품이 절대 될 수 없다.
자녀는 오로지 독립적 인격체로 자기 삶을 스스로 디자인하고 살아가는 가장 가까운 타인으로 인정해 줄 때 자녀는 그들의 생각대로 제대로 된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과도한 내리 사랑은 부모도 힘들겠지만, 자녀들도 버거워한다. 우리는 화초와 금붕어가 수분 부족이나 영양 결핍으로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두발 자전거 뒤를 계속 잡아주면 영원히 자녀는 스스로 자전거 타는 법을 익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