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의 사소한 결정시에도 자녀의 의견을 반영한다
【집안의 사소한 결정은 물론 자신의 미래와 관련된 것은 자녀의 의견에 항상 귀 기울인다】
어릴 때부터 자율적인 사고와 판단력을 기르기 위해 외식을 할때도 어디를 갈건지? 무엇을 먹을건지? 등에 대한 의견을 각자 내게 하고, 자녀들간 의견이 상충할 때는 서로 조율 또는 양보하는 절차를 거쳐 최종 결정을 하게 했다.
그러다 보니, 매번 외식갈 때 자녀들이 서로 많이 싸우기도 했고, 처가 부모님들이 “그냥 어른들이 정해서 먹으러 가면 돼지, 왜 애들한테 물어보느냐?”고 핀잔을 한 적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 판단력, 의견 조율법을 어릴때부터 생활습관으로 길들여 주는 것은 아주 중요하고, 기초적인 작업이다. 이러한 프로세스는 자녀들이 초등학교 전학, 고등학교 선택, 문과/이과 선택, 학원 선택, 학원 끊기, 학교시험 준비 및 계획세우기, 집이사 등 모든 분야에서 자녀들의 의견을 들었고, 가급적 전부 반영하려 해왔다.
딸이 대학교를 졸업한 이후 직업 선택, 취업준비 과정에도 똑같이 적용하고 있다. 부모는 자녀의 미래를 전적으로 책임져 줄 수 없다. 단지, 미래설계를 하는데 조언이나 가능한 한도내 재정적 지원을 해 줄 수 있을 뿐이다.
하나씩 실제 사례를 들어보겠다.
자녀들이 초등학교 저학년때 저의 직장 때문에 부산에서 용인시 수지구로 이사왔다. 수지에서 4년정도 살다가 첫째 자녀가 6학년 1학기 마치고 여름방학기간 중학교 진학을 앞둔 시점에서, 좀 더 교육여건이 좋은 분당으로 이사여부를 검토했다.
처음에는 자녀들이 친구들과 헤어지기 싫어 분당 이사를 반대했다. 그러다가 자녀들이 분당이사의 장단점에 대한 우리 설명을 듣고, 분당이사를 동의했고, 수지 친구들은 주말과 방학기간중 만나기로 했다.
자녀들과 우리들은 기숙사 생활 등으로 가족과 헤어지게 되는 외고, 과고 등 특목고는 가지 않고, 일반고 진학을 하는데 의견일치를 보았다.
그래서 중학교도 아파트 단지내 있는 별로 유명하지 않는 학교를 다녔다. 당연히 특목고 목표를 하지 않았기에 공부도 빡세게 시키지 않았고, 친구들과 재밌게 보냈다. 가장 좋은 학교는 집에서 가까운 학교라고 생각한다. 공부 자체는 본인이 하기 나름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둘째 자녀는 본인의 요청에 따라 초등학교 6학년 부터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때까지 국영수 등 학업 관련 학원은 전혀 다니지 않았다. 물론 계기가 있었다.
그 당시 분당에서 유명한 영어학원을 다녔는데, 숙제가 너무 많아 아들은 더 다니면 죽을 수 있다고 몇일을 하소연하였다. 그래서 아들 보는 앞에서 학원에 전화해 그 자리에서 학원을 끊어주었다.
이후 둘째 자녀는 영어학원을 다니지 않게 되어 가슴이 후련하고, 마음이 편해졌다고 만족해했다. 그 이후로 아무 학원도 다니지 않고, 그야 말로 ‘대학생 같은 중학생’으로 즐거운 학교생활을 보냈다. 중학교 같은반 친구들이 우리 아들의 ‘학원 끊기’에 대해 꽤나 부러워 했다.
학교 시험기간중에는 친구들이 모두 학원의 시험대비 수업 때문에 모두들 학원에 가서 함께 놀 친구가 없었다. 그래서 주로 아들은 영화관에 영화를 보러 다녔다.
둘째는 지금도 그때 영화를 많이 봐서 영화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다. 중학교 다닐때는 30명중에 20등 쯤 한 것 같다. 덕분에 영어는 열등반에 편성되었다.
아이들 어머니는 중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다. 동료 선생님들이 아무 학원도 다니지 않는 우리 둘째 아이를 많이 걱정해 주었다. 제 직장 동료들도 가끔 걱정해 주었다.
사실, 우리도 걱정이 되었다. 아들이 영영 공부를 하지 않고, 대학도 못가면 어떻게 하지하고 우리들은 남몰래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겉으로는 둘째에게 표출하지 않았다.
나름 우리에게는 최악의 대비책이 있었다. 지금부터 공부를 하지 않아 취직도 못하고 빌빌대면 우리가 죽을때까지 잘해 주지는 못해도 삼시세끼 먹이고 데리고 살면 된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걱정이 심했는데 차츰 시간이 지나니까 아들도 우리도 익숙해 지기 시작했다. 주변의 걱정과 달리 우리가족은 평온을 유지했다.
공부든 뭐든 자녀들이 하고 싶은데로 지원해 주는 우리가족의 자녀양육 시스템은 주변 사람들에게 도리어 걱정을 끼치는 것이었다.
자녀들에게 물려줄 재산도 없는 사람들이 애가 공부하기 싫다고 학원을 끊고 자유롭게 놀리는 것은 자녀들을 방치하고, 자녀에 대한 책임감이 없다고 비난 받을 소지가 큰 것은 우리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둘째 아이가 더 이상 학원다니면 죽을 수 있다고 하소연 하는데 어떻게 死地로 몰아넣을 수 있겠는가? 지금도 그 결정은 잘 한 것으로 믿고 있다.
첫째는 초등생부터 모범생이라 알아서 공부하고, 중학교 부터는 별다른 학원을 다니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 고등학교는 자녀들과 상의해 집에서 통학하기 제일 가까운 곳으로 지원했다. 집에서 버스 두 정거장 정도 되는 일반고에 진학하였다.
고등학교 1학년말 문이과반 선택시 의과대학 진학을 목표로 이과반을 선택했다. 그러나, 첫째 아이는 “사람의 피를 보는 것은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하여 2학년 시작전 문과반으로 다시 바꾸었다. 그래서 대학은 문과에서 지원가능하고 본인이 하고 싶어 했던 학과에 진학하였다.
그리고 대학을 다니다가 중간에 친구와 사업을 한다고 해서 1년 휴학하고, 세무서에 업체 등록, 자체 브랜드 상품 제작, 인터넷 판매 사이트 개설 등 일련의 사업을 하였다.
물론 사업은 성공하지 못해 다시 복학하여 졸업했다. 지금은 전공과 별로 관계가 없지만 본인이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하여 열심히 취업준비하고, 인턴을 거쳐 본인이 희망하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무슨 일이든 모든 사람들은 자기가 하고 싶어하는 일은 열심히 한다. 뭐가 되든 언제가는 한번은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가능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부모세대는 하기 싫은 일도 하고, 적성과 관계 없는 직업도 정년때 까지 해오고 있지만, 자녀 세대들은 하고 싶은 일, 본인이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살게 하고 싶은 생각이다.
자녀들은 자율적인 직업 선택의 자유도 보장받지만 그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 그래서 대학 졸업후 자녀들은 경제적으로 독립하여 그들의 삶을 책임져야 한다.
적어도 30세가 되기 전에는 모든 것에서 독립적 삶을 살아야 한다. 대학 졸업하고 바로 취업해서 돈을 벌고, 경제적 독립을 하는 자녀는 효자다.
그러나 무조건 빨리 취업한다고 해서 좋은 것은 아니다. 너무 서둘러 취업하면서 본인의 적성과 맞지 않는 직업을 선택한 경우는 발전가능성도 없고, 적응도 힘들어 얼마 못가서 직업을 바꾸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으면서도 장래에 자녀들이 무슨 직업을 갖고 어떻게 살아갈까?하는 걱정반 기대반이 있기도 하다.
20살 넘은 자녀들한테 헌법상 보장된 ‘직업선택의 자유’는 보장해 주고 싶다. 모두 잘되길 기대하면서 말이다.
둘째 아이는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 끝날 무렵부터 공부를 시작하였기에 고등학교 2학년 1학기까지 참 힘든 생활을 했다.
중학교 기초 지식이 없어, 중학교 교과서를 구입해 모르는 부분을 찾아가며 악전고투 했다. 친구들이 고등학교 공부에 올인할 때 둘째는 중학교 교과서를 구입해 공부를 같이 병행하면서 3년간 갭을 따라 잡았다.
2학년 중간고사 이후부터 학교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지만, 워낙 늦게 시작한 공부라서 수능시험에서 자녀가 바라는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수능 시험장에서 나오면서 아들은 “강남00 가겠다”고 했다. 그날 저녁 밥도 먹지 않겠다고 하는 둘째를 겨우 설득해서 힘든 격려 만찬을 했다.
이듬해 봄, 당연히 본인이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했다. 그래서 본인 뜻에 따라 마포에 있는 00대학교 경영학과를 다니면서 반수를 시작했다.
서울대학교를 제외한 대학은 1학년1학기 휴학을 할 수가 없다는 점도 다소 불합리해 보이기는 했지만, 반수후 좋은 성적이 나온다는 보장이 없어 대학생활과 수능공부를 병행했다.
저는 개인적으로 “재수는 필수, 삼수는 선택”이라는 N수생들이 하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왜냐하면 제가 삼수 및 대학 휴학 등 학사일정에 있는 거의 모든 것을 경험 했고, 그때의 시련과 극복과정이 인생 전반에 큰 도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20대 초반에 개고생하면서 인생의 쓴맛을 한번 맛보아야 인간이 성숙해지고 겸손해 진다. 고교 졸업후 바로 본인이 원하는 대학, 특히 모두가 가고 싶어하는 SKY 대학에 진학한 애들은 자만심이 하늘을 찌른다.
한번도 실패없이 잘 나가다 인생후반에 닥친 역경에 굴복하면서 인생이 끝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에 일부러 재수를 할 필요는 없겠지만,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차게 한번 부딪쳐 보는 것도 괜찮은 것이라고 본다.
저는 재수를 해서 들어간 학교를 1년 다니고, 군대를 갔고, 군 제대후 다시 삼수를 해서 대학을 들어갔다. 85년도 고교 졸업후 96년 2월에 학사모를 썼다. 남들은 4년, 군대 갔다와도 7년이면 졸업하는 대학을 11년이 걸려 졸업했다.
학력고사를 세 번 쳤는데, 칠 때 마다 학력고사 제도가 변경되었다. 재수할 때는 논술이 추가되었고, 삼수할때는 시험과목이 대폭 변경되었다.
제처는 농담삼아 무슨시험을 여러번 치느냐? 모든 시험은 한번에 합격해야지하며 놀려댄다. 저는 제 처를 “쉽게 선택한 직업은 인생후반에 고통을 안겨주는 경우가 더러 있다”고 반격한다.
저는 20대 초반에 산전, 수전, 공중전까지 겪었기에 입사하여 회사생활을 하면서 남들이 어려워하는 어려움도 별로 힘들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워낙 20대 초반에 갖은 인생 역경을 겪어보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재수종합반에서 정말 죽을 힘을 다해 공부했다. 삼수생 형들보다 모의고사 점수가 나오지 않으면 점심도 걸렀다고 했다.
고진감래라고 했던가? 반수결과, 문과 출신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대학의 학과에 정시합격 했다. 합격자 발표일날 고생한 아들을 한번 안아주었다.
코로나로 신입생 환영식, 오리엔테이션, 입학식, 대면수업 등 모든 캠퍼스 생활이 올 스톱되었다.
꿈에 그리던 대학을 들어갔지만 1학기 대다수가 비대면 인강수업이어서 재미없고, 공부도 하기 싫어 휴학하고 싶다고 했다.
휴학기간중에는 온종일 롤게임, 피파게임 등 그간 공부하는라 하지 못했던 것을 진종일 하면서 보냈다. 사실 걱정도 없지 않았다.
낮에는 자고, 밤새워 게임하는 것이 일상화되다 보니 건강도 걱정되고, 너무 게임만 하는 것이 정신건강에도 좋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어 내심 걱정이 많았다.
6개월 정도 지나니까 게임도 노는 것도 시들해 졌다. 지금은 복학해서 학과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 20살 넘은 자녀들은 본인들이 알아서 할 거라고 믿는다. 자기 인생 자기가 사는 것이다.
부모가 대신 살아 줄 수 없다. 그냥 곁에서 형편대로 지원해 주는 것이 전부다. 하고 안하고는 모두 본인 선택사항이다.
앞으로도 알아서 잘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자녀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데 있어 가정 형편에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측면지원 원칙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