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깼습니다. 얼른 일어나 주방으로 가서 유부초밥을 싸기 시작했습니다. 냉장고에서 재료를 꺼내 재빠르게 손을 움직이며 도시락을 만들었습니다. 사과도 하나 깍아 통에 넣고 생수 두 병과 어제밤 사다놓은 과자도 몇 봉지 챙겼습니다.
준비를 마친 시각은 5시 40분. 남편은 벌써 가자고 서두르기 시작했습니다. 집을 나서 전날 길가에 주차해 둔 차를 타고 친정으로 향했습니다. 오늘은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서울 병원에 다녀오기로 한 날입니다.
5시 50분에 친정에 도착했습니다. 6시까지 가기로 했는데 엄마는 벌써 대문을 열어두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친정 어머니를 태우고 서울로 향했습니다. 톨게이트를 지나 고속도로로 진입을 해서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엄마는 몇 달 전부터 허리 통증이 있었습니다. 동네 병원에 가서 침을 맞아도 소용없고 시내 큰 병원에 갔지만 그 곳도 소용 없었습니다. 또 지인의의 소개로 다른 병원을 가서 진찰을 받고 주사를 맞았지만 차도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병원에 모시고 가야겠가고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마음을 먹기가 쉽지 않아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지요. 더는 안되겠다 싶어 병원 예약부터 했습니다. 엄마는 과거에도 허리 시술을 한 적이 있습니다. 척추전문병원이라고 알려진 우리들병원에서 했었습니다.
우리들병원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주민번호와 이름을 대자 과거 기록이 바로 나왔습니다. 그렇게 확인을 하고 쉽게 예약 날짜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전화 한통화면 해결될 일을 시간을 오래 끌었습니다.
병원에 도착해서 검사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의사와 간단한 면담을 하고 CT와 MRI를 찍은 후 다시 질료실로 들어가서 의사 앞에 앉았습니다. “먼저 전체적으로 척추가 휘었고, 4번 5번 척추가 보시다시피 붙었고, 이쪽 인대가 커져서 신경을 눌러서 아팠던 겁니다. 이것을 제거하고 인공 인대를 넣고...” 화면을 보면의 의사 선생님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결론은 수술을 해야한다는 소리였습니다. 수술을 하면 완전히는 아니지만 덜 아플수 있다고 했습니다. 일단 진료실을 나와서 남편과 나 엄마 셋이서 의논을 했습니다.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있었던 일이었지요.
엄마는 올해 여든셋입니다. 혹시라도 연세가 많아서 수술이 곤란하다고 하면 어쩔까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다행히 수술이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조금이라도 고통을 덜 수 있다면 수술을 하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간호사가 수술비 상담을 받으라고 해서 창구로 갔갔습니다. 2~3일 입원과 수술에 드는 비용만만치 않았습니다. 엄마는 비용을 듣고는 주춤했습니다. 비용이 생각보다 많이 들었습니다. 남편과 나는 당연히 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했지요. 엄마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냥 이대로 아파도 좀 참으며 살아도 되는데...”
남편은 무슨 소리냐고 수술을 해야 한다고 강력히 말했습니다. 앞으로 사는 동안 좀 편하게 살아야한다고 말이지요. 아무리 연세가 많다고해도 아픈 것은 고치고 안 아프게 사셔야하는게 마땅합니다.
진작 모시고 와야했는데 몇 달을 미룬 것도 미안했습니다. 수술 날짜를 잡고 수술 전 필요한 사항들에 대해 다시 상담을 받고 안내를 받았습니다. 약 이주 뒤 수술 날짜를 잡았습니다.
모든 검사와 절차를 마치고 나니 12시가 넘었습니다. 점심 시간이었지만 집으로 돌아온 다음 밥을 먹기로 했습니다. 병원을 나와 약 3시간 정도를 달려 영주로 돌아왔습니다. 오는 길에 식당에 들러 식사를 했습니다.
늦은 점심을 정신없이 먹고 어머니를 친정에 모셔다 드리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엄마는 계속해서 딸과 사위 애먹인다며, 몇 번이나 서울을 왔다갔다 해야 한다고 미안해하셨습니다. 엄마는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신세지는 일을 몹시 싫어하십니다.
딸로서 당연한 일을 한 것 뿐이고, 별로 힘든 일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엄마는 자꾸만 미안해 하십니다.
누군가는 그 연세에 왜 수술을 하려고 하냐고도 합니다. 아무리 연세가 많아도 수술을 받아 나아질 수 있으면 수술을 하는 것이 마땅하겠지요. 엄마는 남은 삶을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사실 권리가 있습니다. 늦었다는 건 없다고 봅니다. 훗날 수술 안한 것을 후회하게 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