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ᐟ 엄마도 엄마의 인생이 있단다. 아름다운 내 인생, 나를 사랑해
Prologue : 찬란한 내 인생, 나는 아직 익어가는 중이다.
아들아.ᐟ 엄마도 엄마의 인생이 있단다. 아름다운 내 인생, 나를 사랑해.ᐟ
이 글은 브런치북으로 썼던 “위대한 엄마 가엾은 엄마”의 이후 이야기인 Epilogue 이면서
새롭게 시작하는 브런치북 “나는 온전히 나로 채워가고 있는 중“의 Prologue입니다.
삶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에 우리의 삶은 늘 지금까지 채우지 못했던 아쉬움의 끝인 동시에 새로운 시작인 것입니다.
오랜만에 전화를 걸고, “잘 지내시냐?”는 안부에
“나는 잘 살고 있다.”는 말로 안부를 전하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며,
오늘도 별일 없이. 별 탈 없이. 엄마의 고단했을 하루가 그럭저럭 잘 마무리되었음을 알고 잠시나마 안도해 봅니다.
아들의 걱정 어린 안부에
‘엄마도 엄마의 인생이 있음’을.
그리고 ‘스스로 온전히 잘 살아내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말하는 엄마의 말을 들으며,
어떻게든 자식의 걱정을. 자식의 부담을. 끝끝내 덜어내주려는 엄마의 사랑을 느껴봅니다.
엄마라는 이름.
당신이 오늘따라 더 위대해 보입니다.
얼마 전 엄마는 오랜만에 우리 집을 찾아오셨다.
가족을 데리고 엄마에게 가는 것도 좋아하셨겠지만,
큰 이모라는 숲과 같았던 배경이 베어지고 난 일을 겪은 후라
나는 혼자 쓸쓸히 가라앉을 엄마가 걱정되었다.
그래서 잠시나마 여행을 제안했다.
“엄마.ᐟ 우리 집에 오세요. 아니 포항에 놀러 오세요!”
매일 지내던 곳을 떠나 혼자 지내는 엄마집이 아닌 우리 집으로.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약간의 설렘이 내게도 느껴졌다.
사실 계획된 것은 없었다.
그냥 즉흥적인 결정이었다.
아내에게는 큰 이모의 빈자리가 엄마에게는 엄마의 자리와 같았음을.
그리하여 상실감이 컸을 것임을 이야기하며,
양해를 구했다.
아내는 흔쾌히 ‘잘했다’고 말했다.
내 입장에서는 다행이었고,
아내 입장에서는 사전 협의되지 않은
불쾌한 일이었으나 아내는 엄마를 먼저 생각했다.
아내는 늘 좋은 어른이다.
효자노릇해보려는 남편 덕분에
엄마는 설렜고, 아내는 분주해졌다.
엄마는 버스를 타고 부산을 잠시 떠나 포항으로 오셨다.
결혼한 이후로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면서
특별한 이벤트가 있지 않는 한,
부산에 갈 일이 드물어지면서 엄마를 볼 일도 차츰 줄어들었다.
그래서인지 어제 통화를 했음에도
약간의 어색함이 생기는 엄마와의 만남.
버스터미널에 나타난 엄마의 실루엣을 보며,
안도감과 반가움이 교차했다.
오랜만에 버스를 타고 여행이라 생각하니
설렜다는 말로 미소를 전하는 엄마를 보니 다행이었다.
빨리 도착하려고,
정말 어지간하면 타지 않는 택시도 탔다며,
만칠천사백 원을 썼다는 엄마의 말에 괜히 웃음이 났다.
밝은 웃음 뒤에 보이는 엄마의 주름
일하느라 고생한 손은 윤기를 잃고 더 앙상해졌다.
어떻게 지내셨냐는 안부에
“아들! 나는 잘 살고 있지!” 라며
입안에 ‘그간에 있었던 많은 일들’을 머금은 채
웃음을 지어 보이셨다.
“진짜 괜찮지?”
“또 안 괜찮을 것도 없잖아!”
내 예상대로 엄마는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보조석에 앉은 엄마의 손을 잡았다.
“우리 엄마 손이 이제 뼈에 가죽만 남았네.”
“내 손 못생겼다.”며 너스레를 떠는 엄마는
내심 좋은 눈치였다.
나도 좋았다.
제일 맛있는 밥은 ‘남이 해준 밥’
제일 맛없는 밥은 ‘내가 차려서 나 혼자 먹는 밥’
엄마에게 여행을 온 기분을 내기 위해
포항에 계시는 동안
전 일정 외식을 하기로 결정했다.
대신 아주 맛있는 맛집으로만.
미리 예약했던 초밥집에서 초밥을 먹으며,
엄마는 정말 맛있게 열심히 드셨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뭐가 제일 입에 맞으셨냐?” 물어본 질문에
단연 초밥이 최고였다는 말씀에 나는 또 한 번 엄마의 입맛과 취향을 알아갔다.
어릴 적 푸짐하게 먹었던 하얀 소면은
돈 없는 시절, 배고픔을 달래기 위한 음식이었을 뿐
당신이 정말로 좋아하신 음식은 아니었음을 알게 되자
좀 더 맛있는 식당에서 근사하게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포항 하면 소고기와 물회도 맛있고 유명하지만,
엄마는 소고기나 물회보다 초밥을 좋아하셨다.
그리 길지 않은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풍요롭진 않지만 그럭저럭 나만의 방식으로
엄마도 엄마의 인생을 즐기고 있음을.
일흔을 바라보는 지금도 아직 일할 힘과 의지가 있고,
스스로의 힘으로 홀로서기를 하고 있음을.
엄마는 엄마의 하루하루를
엄마의 인생을 온전히 엄마가 하고 싶은 것들로 채워나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다행이었다.
엄마가 참 좋아하는 노래가사가 있다.
바로 노사연 선생님의 바램.
(물론 요즘은 포항의 딸, 전유진의 노래를 좋아한다고 하셨다. 얼마 전까진 동원이 우리 동원이 했었던 것 같은데…)
어릴 때에는 가사가 마음에 와닿지 않아
원로가수들의 노래는 그저 귀에 익은 멜로디의 노래였을 뿐이었는데
나 또한 나이가 들어가는지 가사가 곱씹어진다.
내가 힘들고 외로워질 때
내 얘길 조금만 들어준다면
어느 날 갑자기 세월의 한복판에
덩그러니 혼자 있진 않겠죠
큰 것도 아니고 아주 작은 한 마디
지친 나를 안아 주면서
사 랑 한 다
정말 사랑한다는
그 말을 해 준다면
나는 사막을 걷는다 해도
꽃길이라 생각할 겁니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엄마를 보고 있으면, 정말로 노래가사처럼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중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살아가고 있는 현재는
지나간 과거가 아닌 소중한 내 인생이며,
엄마도 나처럼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오늘을 치열하게 살아내고 계셨다.
찬란한 엄마 인생,
오늘도 스스로를 사랑하는 시간이길 바라본다.
Brava.ᐟ Mommy 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