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새벽녘 엄마의 웃음소리에 놀라서 깼다.
명절 연휴를 보내던 시간이었다.
여느 때처럼 엄마는 자식과 손주들에게 먹일 음식을 잔뜩 해서 하루를 분주히 보냈다.
다이소와 아트박스를 사랑하는 손주들 손을 이끌고
하루를 아주 알뜰하게 보낸 그런 하루였다.
지칠 법도 하지만, 어디서 나오는지도 모를 큰 에너지가
그 작은 몸에서 뿜어져 나오고, 하루를 하얗게 불태운 시간들이었다.
모두가 잠이 든 시간,
엄마가 계신 방에서는 숨이 넘어갈 정도로 큰 웃음소리가 들렸다.
하루종일 엄마가 해준 음식만 넙죽넙죽 받아먹고도
피곤했던지 코를 골아가며 잠을 잤는데
엄마의 호탕한 웃음소리에 눈이 번쩍 뜨였다.
얼마가 지났을까?
다시 웃음소리가 크게 들렸다.
“하~ 하~ 하~”
나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몸을 기울였고,
어두운 방을 밝히는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침대에 누운 채 휴대폰을 보고 있는
엄마의 얼굴이 슬며시 보였다.
휴대폰에서 나오는 불빛이
밝아졌다가 어두워졌다가를 반복했다.
그러던 중 엄마는 다시
크게 웃음을 보이셨다.
“하~ 하~ 하~ 흐~ 흐~ 흐~”
이번엔 거의 깔깔 넘어가는 소리.
엄마의 눈과 마음을 훔쳐간 영상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어두운 방에서 휴대폰 불빛에 어렴풋이
보이는 엄마의 얼굴은 누구보다 행복했다.
새벽녘 늦은 시간임에도
아랑곳 않고 혼자만의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엄마를 보며 많은 생각이 스쳤다.
난 잠에서 깼고,
나는 엄마를 멀찌감치서 보았다.
내가 잠에서 깼다는 사실 보다
엄마는 늘 저렇게 새벽에 혼자 깨서
휴대폰을 보며 저렇게 시간을 보내셨구나.
“우리 엄마, 이렇게 외로우셨구나.”
싶은 생각에 이르자 뺨에 눈물이 흘렀다.
미안했고, 짠했고, 또 한편으론 고마웠다.
늘 내가 어깨에 진 짐이 제일 무겁고,
나 혼자 마음 쓰며 세상에 도와줄 놈 없이 참 외롭다며 징징거렸는데
엄마는 저렇게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해졌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아직도 엄마는 하루종일 일해도 괜찮은 체력이기에.
국민연금에 스스로의 근로능력으로 버는 경제능력이 있으셨기에.
나는 그저 나만 내가 책임져야 할 가장 작은 테두리의 가족에게만
가장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고 살았다.
그리고 그 이상은 책임질 능력도 없다.
그래서 엄마에게 미안했고, 감사했다.
평생을 엄마라는 이유로 먹여 살리고 배움의 기회를 주셨건만,
이제 제 한 몸 건사하며 제 식구 챙기기에도 급급한 자식을 보며,
나는 괜찮다며, 나는 오히려 혼자여서 더 좋다는 엄마의 거짓말을
나는 그저 믿었다.
순진하게.
그러던 사이 엄마의 친구는 어느새 휴대폰이 그 자리를 차지했고,
나는 어쩌다 가끔 엄마가 생각나면 무심결에 전화 한 통 정도 하는
무심한 아들임을 알아차렸다.
간단한 금융 결제 하나 휴대폰으로 못하는 엄마가
휴대폰에 나오는 영상을 보며 깔깔 웃는 모습을 보고
그동안 친구로도 있어주지 못한 내 모습이 곱씹어졌다.
휴대폰 보다도 못한 자식.
부모에게 효도를 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라고 하나
예전처럼 부모를 봉양하며 사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 되어버린 지금,
나는 엄마에게 어떻게 효도해야 할지 막막했다.
내가 그간 해온 일들은 효도가 아닌
그저 내 자랑은 아니었을까? 그런 자식의 자랑마저도
귀엽게 봐준 엄마의 마음을 이제야 헤아려 본다.
부모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말을 하지만,
나는 엄마의 사랑을 그런 진부한 표현으로 대신하고 싶지 않다.
내 모든 것을 내어주어도
절대 아깝지 않은 너,
이런 마음만 알아주어도
엄마는 언제나 그걸로도 충분히 만족했다.
비가 많이 내려 부산이 물바다로 변했다는 뉴스를 보고도
나는 엄마에게 전화할 생각을 못했다.
(뒤늦게 엄마와 전화통화를 했다.
물난리로 아파트 엘리베이터는 가동이 중단되었고,
꽤 큰 불편이 계속되었고 이제는 괜찮다고 하셨다.)
오늘따라 엄마에게 더 미안한 밤이다.
그리고 자식보다 더 나은 휴대폰에게 감사한 밤이다.
모두에게 Sorry
모든 것에 Than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