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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an de TJ Sep 16. 2024

엄마는 무슨 재미로 그렇게 오래도록 일을 했을까?

나는 그저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냈을 뿐인데 이제는 늙었네.

명절 연휴라 오랜만에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아내는 엄마가 좋아할 만한 선물들을 미리 준비했고,

나 역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부족해 보일까 싶어

이것저것 챙기기 바빴다.


아내는 늘 친정을 가기 전에 어머니를 먼저 뵈어야

자기 마음이 편안하다고 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겉치레 인사가 아니라 진심으로.




물론 결혼경력으로는 이제 어디 가서도

꿀릴 일이 없는 며느리 경력이기에

어머니 앞이라도 ‘어머니, 저 좀 누울게요.’하는

대담함(?)도 갖추었다.


그만큼 편해졌다는 것이니

아들로서도 남편으로서도

매우 뿌듯한 순간을 맞이했다.


얼마 전 집으로 오셨을 때

위스키가 나쁘지 않았던 점을 고려해

이번 명절에도 나름 괜찮을 것 같은

위스키 한 병을 가지고 내려갔다.


엄마와 함께 하는 식사시간,

엄마는 LA갈비와 한 솥 가득한 탕국,

나물반찬을 종류별로 무쳐내어 상을 차려놓으셨고,


우리는 차려놓은 밥상을 아주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준비해 간 위스키로 하이볼을 만들어서

함께 마셨다.


“와~ 이거 진짜 음료수 같네.” 라며

연신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 엄마 얼굴을 보고 있자니

참으로 행복한 순간임을 알아차리게 된다.


  



고된 직장살이로 매일매일

손에 관절이 아파 부어오르면서도

괜찮다 괜찮다며 손사래를 치는 엄마를 보며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계속해서 일만 하고 있는 엄마가 안타까워 물었다.


“엄마는 일할 때 어떤 마음으로 일했어요? “

“어? 그야.. 그냥 매일매일 그냥 하는 거지.”

마치 김연아가 매일매일 그냥 아무 생각하지 않고,

그냥 킵고잉! 계속 하는거지라는 말처럼 들렸다.


“그래도 힘들 때도 많고, 지금은 나이도 있는데

이제는 좀 쉬고 싶을 것 같기도 한데…“


“그래 근데 이 나이에 누가 내를 써주는 게 안 고맙나? “라며

싱긋이 웃음을 지으신다.


그리고 잠시 생각이 나셨는지 말을 이어갔다.

“그냥 일하다 보면 이것만 해야지 또 이거 다음에 이거 해야지 하다 보면,

하루가 그냥 훅 지나가버린다. 그리고 몸이 힘들면 또 자고 일어나면 반복이지. 근데 그게 또 재밌어. “


천상 워커홀릭 직장인이고,

내 눈에는 그저 “일하는 소”처럼 보였다.


하지만 일이 즐거운 삶이라니

한편으론 이것 또한 복이다 싶었다.


내가 하는 일에 의미를 찾고,

그 일을 무사히 완수했을 때 찾아오는 성취감.

그리고 그걸 조직이나 상사가 알아줄 때 오는 자기 효능감까지.


엄마는 그런 사람이었다.

대한민국의 여느 직장인처럼

엄마는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워커홀릭이었다.




하지만 엄마도 사람인지라 일이 겁날 때도 있었고,

무엇보다 힘이 드는 건 같이 일하는 사람과의 관계가 힘들다고 하셨다.


칠순 근처에 가있는 나이임에도

두려울 것 하나 없어 보이는 나이임에도

엄마에게는 인간관계가 힘든 것이었다.


나는 그저 “그럼 그만 두면 되지.ᐟ

엄마 나이에 이제 일 안 해도 연금 나오고 하는데.. “라고 말씀드려도

엄마는 다 계획이 있으신 듯 말을 하셨다.


“사람관계 때문에 힘들고 그래도

또 그 사람 입장도 있는 거고 이런 걸로 그만두면 쪽 팔리잖아.ᐟ“라고

하시는데 참으로 진정한 여장부다 싶었다.  


그리고 삶의 고민은 나이가 얼마가 되었든

쉽지 않은 문제가 늘 눈앞에 나타나기 마련이고,

그때마다 새로운 문제를 푸는 늙은 나 자신만 남아있음을

간접적으로나마 알게 되었다.


나이가 들면, 뭔가 더 익숙해지고 멋지게 해결하겠지?라는

생각은 애당초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 지금의 나보다는 잘 해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어설픈 착각은 역시나 아님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엄마처럼 이제는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없을 것 같은

일흔의 삶에도 언제나 사람과의 관계는 어려운 일이며,

이제는 과거의 나보다는 조금 더 성숙하고 나은 내가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마음을 쓰고 있다니.


엄마와 이야기를 하는 내내 많은 생각을 했다.



“엄마는 그럼 젊을 때에도 일할 때 죽을똥 살똥 그렇게 열심히 한 거야? “

“그래 그때는 그냥 그렇게 살았지 뭐.”

“뭐 때문에?”라며 되묻는 내게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근데 그렇게 일하는 게 나는 속이 편했어. 하루에 할 일을 다하면 그걸로 된 거니까.”


일에 중독된 노동자의 삶.

그리고 그게 마음이 편했다는 엄마의 말을 들으니

한편으론 짠하고 한편으론 참 다행이다 싶었다.


엄마의 어린 시절은 그저 시골에서 태어난 막내로

그야말로 집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학교를 다녀오면 동네 친구들과 놀려고

집에는 소를 끌고 뒷산에 가서 풀을 먹이려고 풀어놓고,

동네 아이들과 공기놀이나 하다가 해가 저무는

저녁시간이 되면 소를 찾아 데려오는 일이 전부였다고 했다.


그랬던 아이가 커서 일에 중독되다니.

과연 엄마는 일하는 게 정말 좋았을까?


아닐 것이다.

어쩔 수 없는 경제논리 속에

자신을 갈아 넣었을 것이다.


지금도 누군가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몸이 부서져라 일하는 것일 거라 생각한다.


순간 불안함이 엄습했다.

“이렇게 열심히 일만 하던 사람이 갑자기 돌아가신다면?”

생각이 급발진하다 보니 얼른 다시 생각을 지웠다.


그런 일은 없어야지.ᐟ 암…




엄마는 늘 준비성이 철저한 사람이어서

늘 끼니를 걱정하며, 내일 아침도 걱정을 하시는 편이다.


나 역시 이런 점을 잘 알기에 아침부터 부산을 떨 엄마의 모습을 상상하니

차라리 내가 직접 내 손으로 밥상을 차리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언제나 맛있는 곰삭은 엄마의 김장김치와

담백 고소한 참치 캔 두 개로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김치찌개를 끓였다.


명목은 “아들이 먹고 싶은 그리고 잘 만드는 김치찌개.ᐟ.ᐟ”


엄마는 내심 손을 걷어붙이는 아들의 모습이 듬직하고 좋게 보였는지

“오늘은 그럼 내가 어시 해준다.”며 양파와 대파, 마늘을 손질하셨다.


내가 하는 요리인데 엄마가 다 하는 셈.

물론 나 역시 한 요리하는 편이지만, 역시나 엄마는 엄마의 주방에선 주방장이었다.


‘사설 야매 요리사’의 귀찮은 요청에도 이것저것 챙기면서도

“잘한다! 아들”이라며 추임새를 넣어주시는데 참 행복했다.


간을 보며, 간 마늘을 좀 더 넣으라는 조언까지

참견을 하시기에 “가만 놔뚜라. 알아서 할게 “라며

고집을 세우는 아들이 되었다.


엄마와 요리를 함께하는 명절이라니..

그 예전 대식구들이 마치 빗받으러 오듯

몰려오던 피곤덩어리 명절이 아니어서 좋았다.


이번 명절은 참 따숩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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