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K-장녀의 이민

이민의 시작, 불효의 시작

by ClaireH


나의 이민생활을 이야기하려면

부모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이민을 결심하게 된 계기 역시,

아빠의 권유였다.


아빠는 어느 날 도피성 여행을 떠났고,

그 여정 속에 시드니가 있었다.

그곳이 너무 여유롭고 좋았다고 한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엄마는 작은 집 하나 남은 전 재산을 팔아

우리를 보내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나의 불효의 시작이었다.




어렸을 적, 우리 아빠는 참 멋있었다.

기억 속의 첫 집은 아빠가 청와대에 근무를 시작하면서

직원들에게 제공된 연립주택이었는데,

나는 그저 그 집이 좋았고, 자주 청와대에

가곤 했던 일이 별다른 의미 없이

당연한 줄로만 알았다.

그때 나는 유치원,

국민학교 1~2학년을 다녔던 것 같다.


그 좋은 공무원 자리를 왜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하셨을까.

지금도 가끔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사업을 시작한 이후 우리 집은 점점 넓어졌고,

그 힘들다는 IMF 시절에도

우리는 마치 정점을 찍은 듯한 삶을 살았다.


그 정점이 그렇게 짧을 줄은 몰랐다.

어느 날, 집 대문에 빨간딱지가 붙었고

돈을 받으러 온 사람들이 들이닥쳐

집 안은 아수라장이 됐다.

나는 경찰차에 타고 있었던 것 같다.

무섭고, 이 사실이 믿겨지지가 않아

펑펑 울기만 했던거 같다.


그때 이미 아빠는 사라졌다.


어린 나이에 느낀 감정은

‘우리를 버리고 혼자 도망친 사람’이라는 원망이었다.

지금은 웃으며 말할 수 있지만,

아빠를 이해하게 된 건 불과 몇 년 전부터다.



큰 집을 팔고,

엄마와 나는 리어카에 짐을 싣고

작은 집으로 이사를 했다.

진짜 멀었다.

그 리어카는 앞으로 내가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삶의 조세처럼 느껴졌다.

그 더운 날, 엄마는 몇 번을 왔다 갔다 하셨을까.

땀을 뻘뻘 흘리며 무거운 짐을 옮기시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더 도와드릴걸 아직도 후회한다..


그리고 결국, 그 작은 집마저 팔고

우리는 이민에 올인했다.

엄마는 혼자 생계를 책임지셨고,

나는 하필 그때 사춘기를 맞이했다.


도움은커녕, 속 썩이는 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녀, 그러니까 엄마 이야기는 따로 한 편 써야 할 만큼 길고 깊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가족이 정점일 때 이민 온 줄 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 정점은 이미 한번 무너졌고,

남은 마지막 재산 하나로 나를 떠나보낸 것이었다.


엄마에게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미안하다는 말보다 먼저 화를 냈다.

억울하고 분해서 눈물이 났다.

엄마의 그 표정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가슴을 꿰뚫는 말을 내가 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그리고 엄마가 된 지금, 그 모든 것이 이해된다.


아빠가 쏘아 올린 작은 공,

그 공을 딸이 홈런으로 받아쳤을 때

그걸 막을 수 있는 부모가 어디 있었을까.



그렇게 내 이민의 시작은

희망이 아닌, 희생이었고

나는 그 무게를 나도 모르는 사이 짊어졌던 거 같다.


그 희생을 헛되게 하지 않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조용히 다짐했다.

도망치지 않겠다고.

낯설고 어색해도, 이곳에서 내 자리를 찾겠다고.

묵묵히 나는 내가 해야 하는 일들을 해내기로 했다.


그 첫 번째는,

학교 가는 길을 혼자 찾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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