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멍을 먼저 본 사람은 누구였을까?

학교가 싫어진 게 아니라, 나도 나를 모르겠던 시절

by ClaireH


시끌벅적.

소리 지르는 아이들, 틀어놓은 음악 소리,

복도를 뛰어다니는 발자국 소리,

여기저기 들려오는 다양한 언어들…


여기가 학교인지, 시장통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Hey!! Cut it out! Stop!!”



그래, 조용히 하래잖아.

머리는 지끈거리고, 귀는 먹먹했다.

아침 조회 시간, 쉬는 시간, 점심시간…

학교 전체가 마치 작은 지진이라도 난 듯

들썩들썩 흔들렸다.


선생님들도 참 힘들겠다 싶었다.

내가 이전에 다녔던 조용한 사립학교와는

너무, 너무 달랐다.


무엇보다 학교가 정말 컸다.

쉬는 시간 내내 뛰어다녀야 겨우 다음 교실에 도착할 수 있을 정도로.


국립학교엔 다양한 인종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자신과 같은 언어, 같은 인종끼리 무리를 지었다.

한국인도 많았다.

어쩌면 더 외로웠다.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친구들과 친해질 기회도,

용기도, 필요성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특별할 것 없는 하루하루가 흘렀다.


학교는 점점 무료해졌고,

공부에 대한 흥미는 자연스레 사라졌다.

다른 친구들은 열심히 수업을 듣고 필기도 하는데,

나는 자꾸만 딴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나마 흥미를 느꼈던 건 쿠킹 시간과 미술 수업.

색과 냄새, 감각을 쓰는 시간이었기에 조금은 설렜다.


하지만 머릿속엔 자꾸만

학교 밖 세상이 궁금해졌다.





어느 날, 나와 모든 수업을 함께 듣던

한국인 친구가 말했다.


“저기 뒷문에 개구멍 같은 거 있대”


누가 먼저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미술 교실 뒤편 복도를 지나

학교 외곽 담장 근처로 향했다.

잡초 사이로 삐뚤게 열린 작은 철망

누군가 미리 알아둔 듯 살짝 비켜난 틈—

개구멍’ 같은 작은 출입구를 발견했다.


처음엔 긴장됐다.

괜히 들키면 큰일 나는 거 아냐?

그런데 신기하게도

누구 하나 관심을 갖지 않았고,

그 틈은 마치 아무도 우리를 찾지 않을 거라는 듯

고요하게 열려 있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점점 자주 그 틈을 지나갔다.

처음엔 “가끔”, 나중엔 “습관처럼

쉬는 시간에 슬쩍 눈빛만 주고받아도

우리는 알아차렸다.


책상 앞에 앉아 있어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수업 내용보다

우리가 그 틈을 통해 마주하게 될

자유가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 작은 개구멍은,

마치 누군가 나만을 위해 마련해 둔 비밀통로처럼.

문을 넘을 때마다,

나는 조금씩 현실로부터 멀어졌고,

그게 잘못이라는 생각조차 점점 희미해져 갔다.



점점 우리 성적은 뒤에서 두 번째와 세 번째 사이.

그 첫 번째 자리는

아예 학교에 오지 않는 아이의 자리였다.


누군가와 ‘같이’ 꼴찌를 하고 있다는 안도감.

마치 도둑이 되어 잡히지 않고 도망 다니는 듯한 기분이지 않을까.


호기롭게 시작했던 학교생활은

어느새 방향을 잃어가고 있었다.

나도 나 자신이 너무 걱정되었다.

‘이래도 되는 걸까?’


내 친구들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이민자 친구들은 부모님과 함께 영주권 취득을 준비했고, 유학생 친구들은 본인이 원하는 학과 진학을 위해 노력했다.


나는 18세가 넘은 상태였다.

법적으로 독립된 이민자였지만,

영주권이라는 단어가 아직 낯설고 부담스러웠다.


‘호주가 과연 나와 맞는 곳일까?’

스스로 질문을 던질 시간도 없이,

주변 사람들의 걱정과 조언에 휩쓸렸다.


결국, 나도 그 거센 파도 속에 몸을 던졌다.

그 당시엔 학과 수료만으로

비교적 쉽게 영주권 신청이 가능했다.

그 기회가 남아있을 때 도전해 보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과감히 학교를 중도에 그만두었다.



더 큰 파도를 넘기 위한 나의 험난한 선택이었다.



호주에서는 10학년까지가 의무교육이며,
이후에는 고등학교(11~12학년) 진학,
직업교육(TAFE) 또는 정식 취업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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