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 틀렸다고, 끝까지 틀릴 순 없잖아.

실패 같았던 첫 단추.

by ClaireH


나는 영주권을 목표로 매일 풀타임으로

기술학교를 다녔다.

그중에서도 ‘네임벨류’ 있는 미용학교를 선택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는 말처럼,

시드니에서 수업을 듣고도 영국 학위증서를 받을 수 있다는 말에 솔깃했기 때문이다.


그 학교는 막 개교한 1기였고,

이사장이 한국인이었다.

자연스레 학생들도 대부분 한국인이었고,

이미 국내에서 미용 기술을 익힌 분들이 많았다.


나는 처음으로 어른들과 같은 공간에서 수업을 들었다.

마치 진짜 대학생이 된 것 같았다.

점심시간, 수업이 끝난 뒤 언니 오빠들과 나누는 대화는 나에겐 새로운 세상이었다.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 같았다.

그들이 멋있어 보였고, 나는 그들을 동경했다.


그 시기, 내 연애도 조용히 시작되고 있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이 흐릿하다.

친구의 모임에 우연히 나온 한 사람.

그가 내 친구에게 연락처를 물어봤고,

내 친군 나에게 전해줬다.

일단 친구처럼 지내봐. 괜찮은 애야.”

그 말 한마디에 가볍게 시작했던 관계였다.


그 사람은 중국인이었고, 나보다 네 살 많은 오빠였다.

다정다감했고, 매일같이 나를 만나주었다.

IT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이었고, 형과 누나들과 함께

시드니 시티에 자가 주택에서 살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우리 엄마에게 진심을 다해 다가와 주었다.

그들은 서로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그의 마음이 전해졌다. 그 따뜻함이, 고마웠다.


나는 늘 무언가를 쫓기듯 살고 있었는데

그와 함께 있는 시간만큼은,

나도 괜찮은 사람인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는 그의 다정함에 기대 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마저도 나중엔 스스로 놓아버렸지만.


우리는 그렇게 3년 가까이 연애를 이어갔다.


그 무렵,

시드니는 말 그대로 ‘’했다.

환율은 고공행진 중이었고,

워킹홀리데이, 유학, 이민 등으로

한국인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2008년.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터지며

호주의 영주권 정책이 급작스럽게 바뀌었다.


호주는 언제나 그렇다.

정책을 바꾸겠다고 하면 예고 없이

오늘부터’, ‘다음 주부터’ 적용이다.

그야말로 자비가 없다.


내 친구는 발 빠르게 움직여

디플로마 과정까지 빠르게 이수했고,

커트라인에 간신히 들어가

영주권 신청을 할 수 있었다.


나는?

멀었다.

아무리 달려도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 기회는, 애초에 내 것이 아니었던 걸까.

간절히 원한다고 해서

가질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걸

그때 처음 뼈저리게 알았다.

영주권은 무조건 적으로 발 빠른 사람에게 간다는 걸.


새로 바뀐 정책은

고용주가 필요한 인력’에게만

영주권 신청 자격을 부여했다.


이제 선택해야 했다.

지방으로 갈 것인가, 말 것인가.


그쪽에 더 많은 기회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나는 나 스스로를 믿지 못했다.

지방이라는 낯선 땅에 혼자 내려가

또 버텨 낼 수 있을까?

아니, 시작조차 할 용기가 없었다.


그렇다고 모든 걸

포기할 각오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이렇게 까지 해서

내가 정말 이민을 해야 하는 걸까??


나… 한국에 가는 게 낫지 않을까?”


그때의 나는

어렸고,

무지했고,

겁이 많았다.


부모님은 얼마나 상실감이 크셨을까..

그 오랜 시간, 학비를 감당하고

말없이 기다려주셨던 그 마음을 떠올리면

차마 포기란 결정을 내리기도 어려웠다.


영주권은

나에겐 너무 높은 산처럼 느껴졌다.

애초에 나와는 맞지 않는 길 같았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지금에서야 깨닫는다.

그때의 나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래서 부끄럽고,

가장 후회스럽다.


도전이라도 해봤으면 어땠을까,

무너졌더라도

끝까지 가보았더라면.


그때의 나는 아쉬움을 뒤로하며

영주권의 욕심은 내려놓았고

나의 학생 비자는

거의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이대로 끝내기엔

너무 아쉬운 마음에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1년을 더 살아보기로 했다.


천천히 시드니 삶을 정리하면서 준비해서

한국으로 들어가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나의 20대 초반

첫 좌절과 선택을 마주한

작고도 큰 사건이었다.


그 선택을 한 무렵

뜻밖의 연락이 도착했다

친구였다.




다음 편.

나의 첫 일터, 그리고 화려한 20대의 시작!

다음 이야기를 기대해 주세요 :)


“그 선택이 실수였을 수도 있어.
하지만 아직, 내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어.”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는지 아닌지는,
마지막 단추를 껴봐야 알 수 있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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