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외계인
호주는 만 18세가 되면 술을 살 수 있다.
펍, 클럽, 주류 판매점(Liquor Store) 모두 입장 가능.
한국과는 다른 문화였다.
시드니에 막 도착한 18살의 나는,
법적으로 술을 마실 수 있었지만 마시지 않았다.
딱히 마실 일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
술을 마실 친구가 없었다.
그랬다.
나는 안 마신 게 아니었다.
마실 친구가 없었던 것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친구가 생겼다.
… 술고래인 친구가.
영주권 준비를 위해 기술학교 등록을 마치고,
개강일까지 텀이 좀 남아 있었다.
그 사이 나는 생애 첫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스트라스필드의 ‘카도 카페’.
그 시절 스트라스필드를 거쳐 간 사람이라면
이 카페를 모를 리 없다.
카페이자 레스토랑,
동네에서 제일 크고, 제일 바쁜,
핫플레이스였다.
그날도 정신없이 바빴다.
마감 시간이 가까워졌을 무렵,
어느 여자가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뭐지? 뭐 볼 일 있나?
워낙 늦게까지 문을 여는 가게라
화장실만 쓰려는 손님도 종종 있었다.
“화장실 찾으세요?”
내가 먼저 말을 건넸다.
그녀가 말했다.
“너… 나 알지??”
잠깐.
뭐지, 쟨
내가 널 알아야 하는 건가??
어디서 봤더라? 낯이 익다.
아— OT에서 본 그 얼굴!
“학교?”
“응!!! 나랑 동갑인 거 맞지?
너랑 친해지고 싶었는데… 혹시 전화번호 알려줄 수 있어?”
순간 얼떨떨했다.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친구 하자고 연락처를 따인 건 처음이었다.
그러고 보니 OT 때도,
뒤통수가 따갑긴 했던 것 같다.
그녀는 키가 컸다. 172cm.
성격은 쿨했다.
요즘처럼 MBTI를 따지던 시절은 아니었고,
그때는 혈액형이 대세였다.
그녀는 AB형.
그렇게 우리는,
베스트 프렌드가 되었다.
그녀는 기독교인이었다.
나중에 알게 됐다.
정말 착. 실. 한 기독교인이란 걸.
하지만 그녀는 단 한 번도
“교회 가자”는 말을 내게 하지 않았다.
나는 그 덕에 우리 사이가 오래갈 수 있었다고,
농담처럼 말하곤 했다.
그녀는 술을 잘 마신다.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 술을 배웠다.
그 시절 스트라스필드에는
‘K2’라는 한국식 주점이 있었다.
우리는 거기서 첫 술약속을 잡았다.
너무 바빴는지,
안주보다 술이 먼저 나왔다.
술병과 잔만 덩그러니 놓인 테이블.
그녀는 늘,
첫 잔은 마시지 않는다고 했다.
“첫 잔 마시면 빨리 취하거든.”
그리고는 내게 말했다.
“너 그렇게 홀짝홀짝 마실래??”
“그럼 넌 어떻게 그렇게 쫙 마셔?”
“자! 날 보고 따라 해. 목구멍을 열고 털어 넣는 거야.”
“… 뭐?!”
나는 호기롭게 그녀를 따라 했다.
그리고…
안주가 나오기도 전에
한 병을 비워버렸다.
기억이 흐릿해졌다.
왜… 나는 그녀에게 화를 내고 있는 거지?
여긴 어디?
우리 집?
… 엄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왜 내가 여기에 있는 거지?
그날 나는 처음 알게 됐다.
내가 갈매기 소리를 낼 줄 안다는 것.
그리고
내 안에 얼마나 많은 화가 쌓여 있었는지.
술은 나를 무장 해제시켰고,
쌓인 화를 필터 없이 쏟아 낸 거 같다.
그녀는 그날 이후 나에게 선언했다.
“다시는 아무에게도 술 부심 부리지 않겠어.”
“각자의 술 취향은 존중받아야 해.”
그날 이후,
엄마는 나를
“망할 년”으로 등극시켰다.
그녀와의 술 에피소드는
정말 넘치고 넘치지만
도덕성과 프라이버시 문제로,
귀여운 첫 만남까지만 공개하겠습니다.
그녀와의 첫 만남은
이렇게 웃기고,
조금은 아찔했지만—
우리는 같은 학교에서
같은 목표를 향해
함께 걸었다.
내가 방황하던 시절,
그녀는 매일같이
학교 가기 전에 우리 집 앞에 찾아와
나를 이끌고 학교로 데리고 갔다.
울고 웃으며
모든 것을 나눈 단 하나의 친구.
내 인생을 많이 바꿔준 사람.
이 글을 쓰며 다시금 생각한다.
정말 감사한 사람이라고.
정말 소중한 인연이었다고.
지금은 함께 술 한잔할 수 없지만,
저는 여전히 멀리서 그녀를 응원합니다.
[다음 에피소드 프롤로그…#]
“아니… 나는 아기를 원하지 않아.”
그게, 우리의 어긋남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다음 회차를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