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기가 필요한 수학 수업

우리의 벤치, 도시락, 그리고 파란 하늘

by Claire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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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학교에 들어갈 수 있던 한 가지 조건이 있었다. 영어가 완벽하지 않은 학생을 위해 학교에서 진행하는 영어 집중 수업 프로그램(ESL)을 병행하면서 다른 과목도 같은 학년 친구들과 함께 수업을 듣는 수업 방식이다.


나는 그렇게 입학을 허락받았다.


이 학교는 아담한 가톨릭 준사립학교였다.

넓은 잔디 운동장엔 미식축구 골대가 양쪽에 있었고,

주변은 큰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건물은 벽돌로 지어진 2층짜리였고,

교실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왠지 모를 따뜻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학교 전체에 한국 학생은 스무 명 정도였다.

학년은 달랐지만,

점심시간이면 우리 모두 모여 도시락을 펼쳤다.

서로 몇 학년인지 물으며 인사를 나눴고

각자 싸 온 반찬을 서로 주고받았다.

매일 소풍에 온 그런 기분이었다.

서로의 도시락을 기대하며 웃고 떠들던 시간들.


지금도 그 풍경이 떠오른다.

긴 벤치 위에 도시락을 펼치던,

마음까지 나눠 먹던 그 시절이.


외국 드라마에서 보던 장면처럼,

학교에는 개인 사물함이 있다.

우리는 거기서 책을 꺼내 들고,

각 과목 선생님이 있는 교실로 이동했다.

각 수업은 수준별로 편성되어

과목이 바뀔 때마다 친구들도 함께 바뀌었다.

누군가는 그걸 계기로 친구를 넓혀갔다.

어떤 한국인 친구는 영어도 잘하고 성격도 좋아

항상 친구들 무리에 둘러싸여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쪽은 아니었다.


영어가 잘 안 들려서 수업을 따라가는 게 힘들었다.

그래도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자존심 있게 잘하는 과목,

수학만큼은 자신 있었다.

그게 내가 잘하는 아이들과 같은 반이 되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 수업엔 한국인이 많았다.


수학 수업 첫날,

모든 친구들이 책상 위에

똑같은 길쭉한 기계를 꺼내놨다.

버튼이 한가득 달린, 낯선 전자기기.


나는 놀라서 물었다.

“저걸로 문제를 푼다고?”

그건 바로 ‘공학용 계산기’였다.


한국에서는 시험 시간에 몰래

숨겨서 쓰던 물건이었는데, 이곳에선 선생님이 아예

계산기를 꺼내세요” 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내 눈은 토끼눈처럼 커졌고,

그 이상한 물건이 너무나 생소하게 느껴졌다.


물론 나중엔 잘 사용하게 되었지만,

초반에는 오히려 계산기 없이 문제를 푸는 일이 많았다

왜냐면…

계산기 쓰는 법을 잘 몰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솔직히,

내용 자체는 한국에서 이미 배운 것들이라 너무 쉬웠다.

그 쉬움이 오히려 자만으로 이어졌고,

때로는 수업이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에 반해, 내가 정말 좋아했던 건 체육 시간이었다.

사립학교였던 덕분인지,

매주 금요일은 야외 수업이었다.

버스를 타고 외부 선생님들과 함께

양궁, 체스, 골프 등 다양한 스포츠를 배울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쉽게 접하지 못했던 활동들이라

늘 기대하고 기다렸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즐거움엔 대가가 있었다.

학비였다.


어느 날, 함께 다니던 친구가 말했다.

“나, 전학 가. 국립학교로.

여기 학비도 부담되고, 이 프로그램 언제까지 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 말이 내 귀에 계속 맴돌았다.


그래서 물어봤다.

“국립학교는 학비가 싼 거야?”

“그 학교는 ESL 같은 프로그램이 없데,

그래서 일반 학비만 내면 된데.”

“그럼 레벨 테스트는?”

“없어. 그냥 수업만 잘 따라가면 돼.”


맞다.

아무리 수업을 잘해도,

영어가 완벽하지 않다는 이유로

계속 시험을 봐야 하고,

프로그램에 묶인 신세가 되는 건…

생각보다 지치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말했다.


“그럼 나도 갈래. 너 가는 곳으로.”

그렇게, 내가 다니던 학교 생활은

즐거움과 현실 사이 어딘가에서 마무리되었다.

더 이상은 미뤄둘 수 없었다.


나는 나를 시험만 보는 존재로 남겨두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결심했다.

더 낯설지만, 더 자유로운 곳으로 가보자.


다음 학교,

그곳은 국립학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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